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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 문화 훔쳤다? 박재범이 이틀 만에 신곡 뮤비 지운 까닭은

입력
2021.06.27 15:00
수정
2021.06.27 15:10
0 0

신곡 뮤직비디오서 논란된 박재범 드레드 헤어
"흑인 문화 훔쳤다" 누리꾼들 비난에 영상도 삭제
박재범 "흑인 문화 존경의 표현"이라며 심경 밝혀
"K콘텐츠 글로벌화...다른 문화 더 많이 이해해야"

14일 유튜브에 업로드된 신곡 DNA Remix 뮤직비디오에서 드레드 헤어를 하고 있는 박재범. 유튜브 캡처

14일 유튜브에 업로드된 신곡 DNA Remix 뮤직비디오에서 드레드 헤어를 하고 있는 박재범. 유튜브 캡처

가수 박재범이 신곡 'DNA Remix' 뮤직비디오를 유튜브에 게시한 지 이틀 만에 삭제했다. 영상 속 박재범의 '드레드 헤어'(레게 머리)가 '흑인 문화를 훔쳤다'는 비판 때문이다.

뮤직비디오 댓글 창엔 "우리 문화를 훔치지 말라", "한국인이면서 왜 흑인 흉내를 내느냐"는 등 누리꾼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한 해외 시청자는 "한국인에 대한 곡인데 비디오는 흑인 문화를 잘못 사용한 것뿐"이라며 조롱하기도 했다.

박재범은 유튜브 댓글로 존경의 표현이라고 해명했으나 논란이 사그라들지 않자 게시 이틀 만인 16일 영상을 비공개 전환했다.

특히 이번 곡은 한국 힙합을 소개하는 자리이기도 해서 팬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DNA Remix는 래퍼 이정운(YLN Foreign)이 엠넷(Mnet) '고등래퍼4'에서 선보인 음원의 리믹스 버전으로 박재범, 이영지, 릴보이(lIlBOI) 등 국내 실력파 아티스트들이 대거 참여했다.

이에 대해 영국 BBC의 한국어판은 21일 보도에서 해외 누리꾼들의 분노가 '문화 전유'(Cultural Appropriation)와 관련 있다고 설명했다. 문화 전유란 다른 문화를 충분히 이해하지 않은 채 흉내내거나 몰래 베끼는 것을 뜻한다.

흑인이 아닌 아티스트가 드레드 헤어를 한 것을 두고 '문화를 훔졌다'는 비판이 나오는 것도 이런 문화 전유에 대한 정서를 바탕에 두고 있다.

드레드가 뭐길래

드레드 헤어 스타일을 한 밥 말리. 인스타그램 캡처

드레드 헤어 스타일을 한 밥 말리. 인스타그램 캡처

드레드에 대한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NCT U '메이크 어 위시(Make A Wish)'(2020)의 루카스, 엑소 '코코밥(Ko Ko Bop)'(2017)의 카이 등 K팝 스타들이 드레드 헤어를 할 때마다 해외 팬들 사이에선 '흑인 문화를 훔쳤다'는 비판이 나오곤 했다.

그렇다면 '드레드' 헤어는 흑인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레게 머리'로도 잘 알려진 드레드는 아프리카 흑인들 특유의 곱슬거리는 머리를 길게 길러 여러 갈래로 땋거나 뭉쳐 만든 스타일이다. 이러한 드레드가 인종 차별의 상징이자 흑인 문화의 일부분이 된 것은 노예 역사 때문이다.

머리 역사를 연구하는 로리 타르프스 미국 템플대 교수는 "드레드(dread)라는 용어자체가 백인의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며 "19세기 말 백인들이 케냐 흑인들의 머리를 보고 '끔찍하다'(dreadful)고 표현했는데 여기서 (그 용어가) 유래했다"고 설명했다.

1960년대엔 흑인 인권 운동의 일환으로 '흑인의 머리는 아름답다'는 민족주의적 인식이 유행하는가 하면 1970년대엔 레게 음악의 전설 밥 말리를 기점으로 트렌디한 스타일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다른 인종이 아닌 흑인의 드레드는 여전히 일상에서 차별받았다. 2010년 흑인 여성 채스티티 존스는 콜센터 매니저를 뽑는 면접 자리에 갔다가 인사 담당자로부터 머리를 자르라고 요구 받았다. 이유는 그의 드레드가 '더러워지기 쉽기 때문'이었다.

이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존스는 담당자의 요구를 거절했고 결국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

이처럼 드레드엔 인종차별 역사가 깃들어 있기 때문에 다른 인종이 가져다 쓸 경우 문화 전유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문화 전유는 어떻게 이뤄지나

드레드 헤어를 한 저스틴 비버. 인스타그램 캡처

드레드 헤어를 한 저스틴 비버. 인스타그램 캡처

영국의 옥스퍼드 사전은 '문화 전유'를 권력적으로 우월한 사회 구성원이 비주류(소수)의 문화를 마구잡이로 가져다 쓰는 것으로 정의한다. 다른 말로는 다른 문화를 충분히 이해하지 않은 채 멋을 내거나 상업적 목적을 위해 흉내내는 것을 의미한다.

문화 전유에 대한 논쟁은 인종 구성이 다양한 서양에서 더 자주 일어난다. 4월 26일 유명 가수 저스틴 비버는 드레드 헤어를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비판받았고, 케이티 페리는 2013년 AMA(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 게이샤 퍼포먼스를 선보여 문화 전유 논란에 휩싸였다.

또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는 2016년 뉴욕 패션쇼에서 백인 모델들의 머리를 색색의 드레드로 꾸몄다 논란이 불거지자 사과하기도 했다.

2018년 5월 1일 미국 유타주 고등학생 케지아가 치파오를 입고 친구들과 졸업사진을 찍고 있다. 케지아 트위터

2018년 5월 1일 미국 유타주 고등학생 케지아가 치파오를 입고 친구들과 졸업사진을 찍고 있다. 케지아 트위터

일상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2016년엔 한 흑인 여학생이 드레드 머리를 한 백인 남학생과 설전을 벌여 해당 영상이 유튜브에서 300만 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2018년엔 미국 백인 고등학생 케지아가 졸업 파티를 위해 치파오(중국 전통 의상)를 입은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다 비난받았다.

한 트위터 사용자는 "아시아 여성에 대한 억압의 역사를 담고 있는 치파오가 그저 맥락 없이 백인들의 소비 대상이 된 것은 식민 지배 이데올로기와 다를 바 없다"고 케지아를 비판했다. 이 트윗은 한때 '좋아요' 16만7,000번, 리트윗 4만2,000번을 기록하며 온라인에서 빠르게 퍼졌다.

타문화 이해하고 소통하려는 노력 필요

박재범이 DNA Remix 뮤직비디오에 올린 장문의 심경 댓글. 커뮤니티 캡처

박재범이 DNA Remix 뮤직비디오에 올린 장문의 심경 댓글. 커뮤니티 캡처

하지만 국내 누리꾼들은 드레드 헤어의 인종 차별적 역사를 이해하면서도 박재범의 뮤직 비디오를 향한 비난은 정당하지 않다고 비판했다.

국내 커뮤니티 사용자들은 "힙합이 애초에 흑인문화고 모두가 음악의 한 장르로써 좋아하는데 이를 인종차별로 모는 것은 잘못됐다"고 입을 모았다.

박재범도 뮤직비디오 댓글에서 자신의 심경을 밝혔다. 그는 "힙합은 이제 전 세계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는 세계적 장르"라며 "우린 피부 색깔을 보지 않는다. 힙합 안에서는 모두 형제자매처럼 느껴진다"고 썼다.

또 "우린 소수 집단을 괴롭히는 다수 집단이 아니고 문화를 훔치려고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우리는 동료이고 문화에 대해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 얕은 지식으로 힙합과 흑인 문화를 재단하는 사람들을 바로잡을 수 있는 힘이 있다"고도 덧붙였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드레드가 흑인 문화에 대한 박재범만의) 존경의 표현일 수 있다"며 "고통의 역사를 표현함으로써 오히려 이를 알리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평했다.

다만 "어떤 창작물이든 그 의도는 보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비판이 있다면 소통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아티스트(박재범)가 해외 콘텐츠 소비자와 댓글을 통해 적극적으로 대화에 나선 것은 건강한 시도"라며 "오히려 충돌을 겪으며 서로의 문화를 더 잘 알아갈 수 있다"고 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한국의 다양한 문화 콘텐츠 영향력이 커지고 전 세계를 무대로 큰 인기를 누릴수록 다른 문화를 더 알고 감수성을 더 높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덕현 평론가는 드라마 '펜트하우스3'에서 로건 리의 친형이 레게 머리로 등장한 것에 대해 "이러한 표현이야말로 흑인 문화 희화화처럼 보일 수 있다"며 "국내 창작물에서 다른 문화에 대한 이해를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홍승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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