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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앞에서 정치가 착해졌다

입력
2021.06.21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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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이충재주필

태극기 도심 집회 사라지고 ‘문파’도 위축
문 대통령 野 자주 만나고, 여야 협치 다짐
대선 끝나도 진영싸움 멈추고 지금처럼만

더불어민주당 송영길(왼쪽) 대표가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를 접견하며 자신의 저서 '둥근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를 선물하며 반도세력 세계경영이라는 내용을 설명해주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왼쪽) 대표가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를 접견하며 자신의 저서 '둥근 것이 강한 것을 이긴다'를 선물하며 반도세력 세계경영이라는 내용을 설명해주고 있다.

지난 17일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 국회 연설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광경이 펼쳐졌다. 김 원내대표는 “경제는 폭망, 부동산은 자폭” “여권은 꼰대, 수구, 기득권” 등 문재인 정부를 향해 강도 높은 발언을 쏟아냈다. 그런데 여당 의석에서는 한마디의 야유나 비난도 나오지 않았다. 몇 달 전이었으면 김 대표 연설은 고함과 삿대질로 묻혔을 터다.

요즘 정치판의 모습이 달라졌다. 지난 4월의 보궐선거 이후 벌어진 풍경이다. 오만과 독주로 일관하던 더불어민주당은 반성과 함께 한껏 몸을 낮추고 있다. 국민의힘도 과분한 승리에 취하지 않으려 조심스러운 표정이다. 진짜 승부인 대선을 앞둔 터라 높아진 유권자들의 의식을 따라가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다. 다분히 여야의 전략적 의도가 내포돼있긴 하지만 어쨌든 이런 변화들은 신선하다.

가장 큰 변화는 ‘태극기’의 퇴조와 ‘문파’의 위축이다. 잊고 있었지만 어느새 주변에서 태극기 부대가 사라졌다. 생각해보면 고연령층 대부분의 백신 접종이 완료됐고 현 정부 성토 분위기가 최고조에 달한 지금이 태극기 집회가 도심을 휩쓸 적기다. 그런데도 이들이 나타나지 않는 건 극우에 대한 국민의 반대 정서가 크고, 이는 정권 교체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맹목적인 현 정부 충성 세력인 ‘문파’의 위축도 마찬가지다. 아직 일부가 좌표찍기와 집단공격에 열을 올리지만 보궐선거 패배 이후 민주당에 쇄신바람이 불면서 한풀 꺾였다. 이들 역시 자신들의 존재가 내년 대선에서 불리하게 작용한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또 다른 변화는 악성 포퓰리즘이 통하지 않을 만큼 국민의 의식이 높아졌다는 점이다. 지난 보궐선거에서 정부ㆍ여당은 가덕도신공항특별법만 통과시키면 선거 열세를 뒤집을 수 있다며 올인했지만 무위로 끝났다. 여권에서 거론되는 2차 전 국민재난지원금에 대한 시민들 반응도 부정적이다. 피해 업종에 대한 두터운 지원이 시급하다는 여론이 보수, 진보를 가리지 않는다. 복지의 제도적 접근이 아닌 단순한 선거용 돈 풀기에 국민이 넘어갈 거라고 보면 오산이다. 대선이 임박할수록 포퓰리즘 공약이 넘쳐나겠지만 투표에는 별 도움이 안 된다는 걸 후보들은 깨달을 때가 됐다.

여야 간 타협과 협치의 분위기가 무르익는 점도 고무적이다. 문 대통령이 야당 인사들을 요즘처럼 자주 만나고 축하 전화를 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었던가. 여야 대표가 만나 덕담을 하고 협치를 약속하는 광경은 국민에게 위안을 준다. 여야 양쪽의 강경파 의원들의 노출 빈도도 크게 줄었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30대, 국회 무경험 청년의 당대표 등장이다. 서구 선진국에서나 볼 수 있는 이런 장면이 당장 우리에게도 올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물론 안다. 내년 대선에서 어느 한쪽이 정권을 잡으면 또다시 진영이 갈려 죽기살기로 공격을 퍼부을 거라는 걸 말이다. 하지만 그런 모습이 한국 정치와 우리 사회의 선진국 진입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라는 건 정치인이나 국민 모두 뼈저리게 느끼고 있지 않은가.

한미정상회담과 G7 정상회의를 통해 확인된 사실은 한국이 우리 자신이 아는 것보다 훨씬 큰 나라가 돼있다는 점이다. 우리만 모를 뿐이지 세계 각국은 그렇게 인식하고 있다. 그러기에 사회 각 부분에서 가장 뒤처진 정치가 이젠 바뀌고 달라져야 한다. 그러니 지금의 정치권 모습을 잘 기억해두고 대선 후에도 그대로 재현해보자. 쇼라도 좋고, ‘만들어진 평화’라도 좋다. 더도 덜도 말고 한국 정치, 지금처럼만 하면 된다.

이충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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