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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묵살 보안요원 대신 신고했더라면..." 쿠팡 노동자의 자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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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묵살 보안요원 대신 신고했더라면..." 쿠팡 노동자의 자책

입력
2021.06.21 16:30
수정
2021.06.21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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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신고자보다 10분 전 발견" 노동자, 청와대 청원
"양치기 소년 취급하던 관계자 얼굴 떠올라"

20일 오전 경기 이천시 마장면 쿠팡 덕평물류센터에서 발생한 화재로 건물이 검게 그을려 있다. 이천=뉴시스

20일 오전 경기 이천시 마장면 쿠팡 덕평물류센터에서 발생한 화재로 건물이 검게 그을려 있다. 이천=뉴시스

경기 이천시 쿠팡 덕평물류센터의 화재를 최초로 목격했던 노동자를 자처한 네티즌이 화재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고 안전불감증을 지적하는 글을 청와대 청원으로 올렸다.

20일 스스로를 "최초 신고자보다도 10분 더 빨리 화재 발견한 노동자"라고 밝힌 청원인은 청와대 청원 홈페이지에 '덕평 쿠팡물류센터 화재는 처음이 아니었습니다'라는 글을 올리고 사고 당시 경험을 풀어냈다.

청원인은 "17일 당시 1층에서 근무했다"며 "(오전)5시 10분∼15분경부터 화재 경보가 울렸지만 하던 일을 멈출 수 없었다"며 "잦은 화재 경보 오작동을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다른 날과 같이 화재 경보가 오작동이라고 인식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5시 26분쯤 퇴근하던 도중 1.5층으로 이어지는 층계 밑쪽 가득찬 연기와 아래로부터 솟아오르는 연기를 발견하고, 화재 경보로 센터 셔터문이 차단되고 있는 것 또한 발견했다"고 밝혔다. 이 청원대로라면 공식적으로 화재 발생 신고가 접수된 시점은 5시 36분인데 화재 발생과 최소 10여 분의 시차가 있었던 셈이다.

청와대 청원 홈페이지 캡처

청와대 청원 홈페이지 캡처

그는 "화재가 난 것을 인식하고 심야조 근무자들과 함께 입구 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는데, 입구 쪽으로 가는 길에 허브 쪽을 보니 많은 분들이 아직도 화재를 인식하지 못하고 일하시는 모습을 보게 됐다"며 가던 길을 멈추고 "허브 쪽 동료들을 향해 미친 듯이 뛰어가 "불 오작동 아닙니다, 진짜 불났어요"라고 소리쳤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먼저 나간 동료들이 신고나 제보 조치를 해줄 것으로 생각했기에 입구 검색대 보안요원이라면 더 빠른 조치가 가능할 수 있다 생각하고 화재 경보가 오작동이 아니라고 화재 제보와 조치 요청을 드렸다"고 밝혔다.

하지만 청원인에 따르면, 입구 보안요원은 "불난 거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말고 알아서 할 테니 퇴근이나 하시라"고 반응했다. 다른 관계자를 찾아 다시 조치 요청을 했지만, 크게 웃으며 "원래 오작동이 잦아서 불났다고 하면 양치기 소년 돼요"라고 반응했다.


"오작동 잦은 스프링클러, 노동자 빠져나올 때까지 작동 안 해"

이천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현장에서 진화 작업 중 순직한 고(故) 김동식 구조대장의 영결식이 21일 오전 경기 광주시민체육관에서 경기도청장(葬)으로 엄수된 가운데 운구 행렬이 국립대전현충원으로 향하고 있다. 경기도는 고인에게 소방경에서 소방령으로 1계급 특진과 녹조근정훈장을 추서했다. 광주=뉴시스

이천 쿠팡 덕평물류센터 화재현장에서 진화 작업 중 순직한 고(故) 김동식 구조대장의 영결식이 21일 오전 경기 광주시민체육관에서 경기도청장(葬)으로 엄수된 가운데 운구 행렬이 국립대전현충원으로 향하고 있다. 경기도는 고인에게 소방경에서 소방령으로 1계급 특진과 녹조근정훈장을 추서했다. 광주=뉴시스

청원인은 "(관계자들이) 마치 제가 정신이상자인 것처럼 대하고 끝까지 웃기만 하며 제보를 묵살했다"며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대응에 수치스러움마저 느꼈다. 눈 감을 때마다 그 얼굴이 떠올라 힘들다"고 밝혔다.

그는 "17일 화재 당일부터 (김동식) 소방대장님의 참사 소식을 들을 때까지 제 자신을 원망하고 자책했다"고 토로했다.

"관계자들을 믿고 화재 제보와 조치 요청을 하던 그 시간에 차라리 핸드폰을 찾으러 가서 전원 켜고 신고를 했더라면 초기에 (화재가) 진압되어 부상자 없이 무사히 끝나지 않았을까. 화재 발견 직후 내 행동이 최선을 다했다 말할 수 있나. 별별 생각이 (들었다)"라고 했다.

청원인은 "평소에도 정전과 화재 경보 오작동 등 문제가 빈번하게 일어났지만 쿠팡의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되거나 실행된 적은 없었으며, 오작동이 많다며 꺼둔 스프링클러는 화재 당일에도 대피 방송이 아닌 노동자들 스스로 모두 빠져나올 때까지 작동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덕평 쿠팡물류센터는 이미 3년 전 담뱃불로 인한 화재 사고가 있었다"며 "3년 전 화재사고에 대한 책임 규명과 재발방지 대책, 관리가 허술했고 변화 없는 심각한 안전불감증까지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사고가 돼 버렸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고의 정확한 책임 규명과 강력한 처벌 외에 이번만큼은 올바른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고 이를 꼭 실행시켜 (화재 대응이) 개선될 수 있도록 끝까지 힘써 주시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인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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