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다던 아빠 몸엔 자상만… 미얀마 '거짓밀고' 고문사 속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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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다던 아빠 몸엔 자상만… 미얀마 '거짓밀고' 고문사 속출

입력
2021.06.11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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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비 두드리기·자경단 활동… 막무가내 이유
쿠데타 후 고문에 숨진 시민 '최소 21명' 추정

지난달 24일 미얀마 사가잉주에서 고문사한 오토바이 정비공 민 민(가운데)의 생전 모습. 그의 품에서 어린 두 아들이 해맑게 웃고 있다. 미얀마 나우 캡처

“다 괜찮아질 거야. 곧 집으로 돌아갈게.”

지난달 24일 미얀마 쿠데타군에 체포된 사가잉주(州) 칼라이 마을의 오토바이 정비공 민 민(39)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그는 칼라이 시민방위군 소속이 아니다. 심지어 그 흔한 반(反)군부 시위 현장에 나간 적도 없었다. 어린 두 아들을 키우기 위해 막 정비소를 확장 이전했기에 ‘민주화보단 ‘생존’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전화를 받은 가족도 군부가 착각해 체포된 것이라 여겼다.

그러나 이튿날 아침, 민은 차디 찬 주검이 된 채 가족 앞에 돌아왔다. 이마는 총구로 구타를 당한 멍 자국투성이였고, 온몸엔 흉기로 무참히 그려진 자상(刺傷) 흔적이 가득했다. 군 병력은 “폐질환으로 급사했다”고 밝혔지만, 민은 생전 호흡기 질환을 않은 적이 없었다. 고문사가 분명했다.

두 아이 아빠의 억울한 죽음 배후에는 친군부 세력인 이른바 ‘마을정보원’이 있었다. 악(군부)을 내쫓는 의미로 ‘냄비 두드리기’ 저항을 집 앞에서 종종 이어갔던 민을 한 정보원이 탐탁지 않게 여겼고, 그를 ‘시위 주동자’라고 군에 거짓 밀고했던 것이다. ‘제2의 민’은 전국 곳곳에서 속출했다. 양곤의 쿄 르윈 흐트웨(39)는 마을자경단 활동을 열심히 했다는 이유로, 타닌타리주의 아웅 마인 흘라잉(32)은 단지 전공이 전기공학이라는 이유만으로 고문 끝에 목숨을 잃었다. 이들은 모두 거짓 밀고에 근거해 당시 횡행하던 ‘관공서 폭탄테러 용의자’로 처리됐다.

지난 3월 군부에 잡혀 고문을 받다 사망한 말라 윈(오른쪽)의 가족 사진. 그 역시 세 아이의 엄마였다. 이라와디 캡처

군 병력의 마구잡이 체포로 인한 고문사도 넘쳐난다. 마궤주의 말라 윈(39)은 지난 3월 집 앞에서 난 총소리를 확인하러 나갔다가 체포됐고, 같은 달 양곤의 윈 토라는 찻집에서 이유도 모른 채 무작정 군에 끌려갔다. 양곤의 아웅 파잉 흐트웨는 지나가던 길에 구청에 불이 붙은 것을 보고 진화에 나섰는데 오히려 방화범으로 몰려 구금됐다. 세 사람은 모두 온몸엔 구타 흔적이 깊게 새겨진 채 사망했다.

민주인사들의 고문 사망 사례는 더 많다. 11일 미얀마 정치범지원협회(AAPP)와 이라와디 등 현지매체에 따르면, 양곤 파베단구(區) 민주주의 민족동맹(NLD) 의장인 킨 마웅 랏(58) 등 최소 3명의 문민정부 인사들이 군부에 협조하지 않아 결국 고문사했다. 마궤주 선거관리위원장 킨 마웅 치(47) 등 선관위 관계자 2명 역시 군부의 ‘총선 부정’ 주장을 부정하다가 고문을 받았고 끝내 숨졌다.

AAPP는 명백한 고문 증거가 남은 채로 사망한 시민이 최소 21명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미얀마 쿠데타 이후 시위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시민은 전날까지 860명, 체포된 인원은 5,965명에 각각 달한다.

현지매체 이라와디가 확보한 쿠데타 이후 고문을 받다 숨진 시민들의 생전 사진 모습들. 이라와디 캡처


하노이= 정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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