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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미국을 선택했다는 오해

입력
2021.06.13 17: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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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병제
조병제전 국립외교원장

한미정상회담 미·중 택일 ‘제로섬’ 아냐
빠른 변화 국제정치 의제 삼았을 뿐
코로나 위기 속 한국 새 역할 자리매김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한미정상회담을 두고 “한국이 미중 대결에서 미국을 선택했다”는 평가가 있지만, 동의하기 어렵다. 한미관계의 접촉면이 확대되었으나, 그렇다고 중국의 이익이 손상된 것은 아니다. 공동성명을 비롯한 어느 자료에도 ‘한미동맹을 근간으로 중국과 전략적 협력동반자관계를 추구한다’는 외교 기조가 바뀌었다는 근거가 없다.

안보 중심의 동맹 의제를 반도체, 2차전지, 인공지능 등 4차산업 분야로 확장·강화한 것은 시대적 흐름에 부합한다. 더구나 정부가 방향을 제시하더라도 이를 구체화하려면 민간 차원에서 투자가 필요하다. 기업은 이익과 위험부담을 가늠하여 결정을 내린다. 중국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미사일 사거리를 800㎞ 이내로 제한하던 지침을 없앤 것을 두고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의도가 있었다’고 한다. 터무니없다. 미사일 지침 폐기는 늦어도 많이 늦었다. 한국이 기술 불모지였던 42년 전, 미사일 사거리를 국제표준보다 짧은 180㎞로 제한하면서 미국 기술을 들여왔지만, 그 후 한국 기술은 연장된 사거리 800㎞를 넘은 지 오래다. 더구나 북한이 1만5,000㎞ 대륙간탄도탄을 쏘는 마당에 한국을 사거리 800㎞에 묶어둘 명분이 없다.

‘대만해협의 평화·안정 유지가 중요하다’고 한 부분도 주목을 받았지만, 세계의 많은 나라가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바란다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한국은 여전히 ‘하나의 중국’을 지지한다. 나아가 이 문제를 보는 중국의 눈에 한국과 일본은 다르게 보인다. 일본은 대만 인근에서 중국과 영토분쟁이 있다. 또한, 일본은 1997년 미·일방위협력지침을 통해 ‘주변 지역 유사시’ 행동계획을 마련했으며, ‘주변 지역’에는 대만이 포함된다. 만일 주한미군이 대만해협 사태에 투입되고 그 과정에 한국이 일정한 역할을 한다는 시나리오가 나온다면, 중국의 반응은 다를 수 있을 것이다.

공동성명은, 쿼드(QUAD)에 대해 ‘개방적이고 투명하며 포용적인 지역 다자주의’라는 열린 시각을 보였다. 나는 지난해 10월 칼럼에서 ‘쿼드를 흑백논리로 보지 말자(본보 10월 26일자)’고 했으며, 3월에는 바이든 행정부가 쿼드를 ‘지정학적 도구’가 아니라 ‘인류 공동과제 논의의 장’으로 보는 만큼, 한국도 실질 협력을 모색하는 것이 좋겠다(3월 22일자)고 했다. 쿼드가 이 목표를 벗어나지 않는 한, 한국은 기후변화, 감염병, 신기술 등 핵심과제에서 협력을 피할 이유가 없다. 일정한 조건에서는 중국도 참여를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한미정상회담 결과를 두고, ‘한국이 미국을 선택했느냐’, ‘회담 결과에 중국이 왜 절제된 반응을 보이느냐’고 묻는 것은 지나치게 단선적이다. 미·중관계가 시대의 화두라는 데 의문이 없지만, 친미 아니면 친중이라는 이분법이나 흑백논리로 접근할 일은 아니다. 당사자들도 제로섬(zero-sum) 게임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블링컨 국무장관도 미·중관계에 대결(confront), 경쟁(compete), 협력(cooperate)의 세 요소(3C)가 복합적으로 작용한다고 했다.

정작 주목할 부분은 코로나 위기를 거치면서 국제정치의 의제가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3월의 쿼드정상회의, 4월 미일정상회담, 5월 G7 외교장관회의와 한미정상회담, 그리고 주말에 열린 G7 정상회의를 관통하는 의제는 기후변화, 감염병, 신기술, 민주주의, 인권, 성 평등, 투명성, 열린 사회 등이다.

이번 한미정상회담은 이들 의제를 논의하는 곳에 한국의 자리가 자연스럽게 매겨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 국민이 이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조병제 전 국립외교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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