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강박증과 자기애에 빠진 사회, 괜찮나요"... 이야기꾼 정유정이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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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강박증과 자기애에 빠진 사회, 괜찮나요"... 이야기꾼 정유정이 묻는다

입력
2021.06.11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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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완전한 행복' 출간 이튿날인 9일 서울 마포구 은행나무출판사에서 만난 정유정 작가는 "'스릴러의 여왕' 같은 호칭보다는 재미난 이야기를 쓰는 진짜 이야기꾼으로 불리는 게 바람"이라고 말했다. 한진탁 인턴기자

“행복하기 위해 산다는 말을 들으면 갸우뚱하게 됩니다. 행복하기 위해 산다는 건 주객이 전도된 게 아닐까요.”

최근 신작 소설 ‘완전한 행복’을 내놓은 정유정 작가의 도발적 질문이다. 행복이 성적 순인 사회, 행복마저도 암묵적으로 성적을 매기는 행복지상주의 사회에 사는 지금, 이게 대체 무슨 말인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대한민국 헌법 10조를 정면으로 부정하려는 것인가.

정 작가가 지적하는 것은 행복추구권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지나친 ‘행복 강박증’이다. “행복은 삶에서 얻어지는 가치여야지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삼을 건 아니라고 봅니다. 인생을 살아가며 생기는 불행과 좌절까지 받아들여야 완전한 행복이지 않을까요.”

‘완전한 행복’의 주인공이 추구하는 ‘완전한 행복’의 모순을 이해한다면 정유정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주인공 유나는 ‘행복은 덧셈이 아닌 뺄셈’이라고 여기는 인물이다.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 불행의 요소를 모두 제거해야만 완전한 행복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부모도 언니도 이전의 연인들도 전 남편도 지금의 남편도 불행의 가능성이라면 뺄셈의 항목에 들어간다. 일곱 살 딸 지유가 이러한 엄마의 통제에 꽁꽁 묶여 있는 이유다.

행복과 자기애를 소재로 소설을 준비하던 정 작가는 2019년 전 남편을 살해한 뒤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체포돼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고유정 사건을 촉매제로 삼아 이야기를 완성했다. 전 남편 살해와 현 남편 아들의 의문스런 죽음 정도 외엔 캐릭터부터 인물 관계, 구체적 사건 등을 모두 새로 썼다. “모티브를 가져왔다는 건 사건을 그대로 가져왔다는 게 아니라 문학적 질문을 얻었다는 뜻입니다. 불행의 요소를 제거하면 완전한 행복이 가능할까, 하는 질문이 그 사건에 던져진 거죠.”

소설은 주인공 유나의 딸 서지유, 현 남편 차은호, 언니 신재인 3명의 관점을 교차하며 사건을 전개한다. 시작부터 범인을 드러낸 뒤 행복에 대한 유나의 욕망이 주변인물들을 어떻게 불행에 빠트리는지 보여준다. 반전을 숨겨놓은 게 아니어서 얼마든지 플롯 전개를 예측할 수 있는데도 긴장감이 팽팽하게 이어진다. 사건 이면에 숨겨진 인물들의 복잡한 내면, 그 인물들의 엇갈린 욕망과 이들 사이의 왜곡된 권력 관계로 인해 생기는 갈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결과다.

우리 주위 어딘가 있을 법한 인물 묘사는 독자의 감정이입을 심화시킨다. 허구의 인물을 입체적으로 그리기 위해 자료조사와 취재도 많이 했다. 3개월간 범죄 프로파일러, 약리학과 교수, 신문기자 등 다양한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마치 실존 인물 같은 사실성을 더했다.

비극을 다루지만 시종일관 심각한 분위기로 조이기만 하는 건 아니다. “독자를 웃기고 싶어 하는 유머 본능”이 있다는 작가는, 서늘하고 불길한 공기 사이로 곳곳에 유머러스한 문장을 끼워 넣어 긴장을 이완시킨다.

‘완전한 행복’은 ‘7년의 밤’ ‘28’ ‘종의 기원’으로 이어진 ‘악의 3부작’에 이어지는 ‘욕망 3부작’의 첫 작품이다. 선천적 악마인 사이코패스가 악의 3부작 주인공들이었던 반면 이번 소설의 주인공은 성장 과정에서 욕망으로 일그러진 후천적 나르시시스트다. 일상적인 삶을 주로 다룬다는 점도 이전 3부작과 차이점이다. “이번 소설에선 인간이 모순적인 감정을 갖고 있는 동물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누군가를 사랑하면서도 증오하는 등 서로 상충하는 감정을 함께 갖고 있는 것이 인간의 장점이자 약점이죠. 사랑하는 관계에선 덜 사랑하는 사람이 권력을 갖게 되는 구도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싶었죠. 젊은 부부 사이에서 특히 공감을 얻었으면 합니다.”

완전한 행복ㆍ정유정 지음ㆍ은행나무출판사 발행ㆍ524쪽ㆍ1만5,800원


‘완전한 행복’은 하나의 사건을 통해 현대사회가 앓고 있는 병리적 현상의 근원을 파고든다. 타인의 행복을 빼앗으면서까지 자신의 행복을 최고의 가치이자 목적으로 삼는 것이 옳은 일일까. ‘나는 특별한 사람’이라 여기는 자기애 과잉 현상은 바람직한 걸까. 이 소설은 작가가 사회에 보내는 경고 신호다. “자기애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성장 과정에서 생깁니다. ‘우리 아이는 특별해’ 하는 사고가 아이를 나르시시스트로 키우죠. 자기애가 집단화하면 얼마나 무서운지는 게르만 민족의 역사적 사례에서 알 수 있죠.”

‘욕망 3부작’의 두 번째 작품이 될 차기작은 디스토피아에 관한 소설이 될 듯하다. “다양한 성격장애를 다뤄보고 싶다”는 작가는 “소유 욕망에 이끌려 저지르는 일이 가져오는 불가피한 결과와 그 이후의 이야기를 다룰 예정"이라고 했다. "나이가 더 들기 전에 최대한 많이 쓸 것"이라는 그는 "다음 소설을 2년 뒤 내놓는 게 목표인데 내 소설들 중 세계관이 가장 큰 작품이 될 것 같아 벌써부터 어떻게 쓸지 한숨이 난다”면서 웃었다.

고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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