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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가 보여준 새 남성상...맥도널드가 증명한 세계화 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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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TS가 보여준 새 남성상...맥도널드가 증명한 세계화 표준

입력
2021.06.12 04:3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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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표준 된 한국 대중문화]?①

지난 9일 인도네시아 서부자바 보고르 맥도널드 매장에 몰려든 배달원들. 이날 현지에 첫 출시된 방탄소년단 세트 주문이 폭주하면서 매장이 꽉 찼다. 보고르=AFP 연합뉴스

지난 9일 인도네시아 서부자바 보고르 맥도널드 매장에 몰려든 배달원들. 이날 현지에 첫 출시된 방탄소년단 세트 주문이 폭주하면서 매장이 꽉 찼다. 보고르=AFP 연합뉴스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로스앤젤레스에 사는 사만다 프레드버그(19)씨는 지난달 26일(현지시간) 맥도널드에서 '방탄소년단(BTS) 세트'가 출시되자마자 집 근처 매장으로 달려갔다. 프레드버그씨는 10일 본보와 국제전화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등으로 맥도널드에 간 게 거의 1년 만"이라며 "주위에 방탄소년단 세트를 사 먹은 뒤 창문 모양의 보라색 방탄소년단 로고가 찍힌 세트 포장지뿐 아니라 한글이 적힌 음료컵과 소스 용기를 씻어서 보관하는 아미(방탄소년단 팬)들이 많다"며 웃었다.

방탄소년단 해외 팬이 방탄소년단 로고가 적힌 맥도널드 방탄소년단 세트 포장 용기를 씻어 건조대에 널어놓았다. 트위터 캡처

방탄소년단 해외 팬이 방탄소년단 로고가 적힌 맥도널드 방탄소년단 세트 포장 용기를 씻어 건조대에 널어놓았다. 트위터 캡처


BTS세트 상륙에 긴급 휴점... 포장용기 386달러 중고 거래

샌프란시스코의 한 맥도널드 매장은 미국 아미들의 성지로 통한다. 매장 입구엔 방탄소년단 영어 이름 모양의 금색 풍선이 걸려 있고, 더 들어가면 곳곳에 방탄소년단 사진들이 붙어 있다. 맥도널드는 미국식 생활 양식의 표본으로 통한다. 가장 미국적인 곳에서 한글이 적힌 음식을 내놓고 K팝 아이돌그룹 사진을 붙여 놓다니. 방탄소년단이 미국인의 식생활 문화까지 파고들어 연출한 이색 풍경이다.

중고 거래 사이트인 이베이에서 거래되고 있는 방탄소년단 맥도날드 세트 포장 용기. 386달러에 내놨다. 이베이 캡처

중고 거래 사이트인 이베이에서 거래되고 있는 방탄소년단 맥도날드 세트 포장 용기. 386달러에 내놨다. 이베이 캡처


중고 거래 사이트인 이베이에서 거래되고 있는 방탄소년단 맥도날드 세트 포장 용기. 이베이 캡처

중고 거래 사이트인 이베이에서 거래되고 있는 방탄소년단 맥도날드 세트 포장 용기. 이베이 캡처

맥도널드는 한국시간으로 지난달 27일부터 미국을 비롯해 캐나다, 브라질, 그리스, 말레이시아 등 6개 대륙 50개국에서 감자튀김과 치킨 너겟 등으로 구성된 방탄소년단 세트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세계 최대 프랜차이즈 업체인 맥도널드가 연예인을 내세운 세트 메뉴를 해외에서 판매하기는 1955년 창사 이래 66년 만에 처음. 인도네시아는 방탄소년단 세트 상륙으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AF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9일부터 방탄소년단 세트 판매를 시작한 인도네시아의 맥도널드 매장 최소 10여 곳은 이날 갑자기 문을 닫았다. 방탄소년단 세트를 사기 위해 손님과 배달 기사들이 매장으로 발 디딜 틈 없이 몰리면서 코로나19 확산 우려가 커진 탓이다. 중고거래 사이트인 이베이엔 방탄소년단 세트 포장지를 386달러(약 42만 원)에 내놓은 매물도 나왔다.

미국 샌프란스시코의 한 맥도널드 매장에 'BTS' 모양의 금색 풍선이 걸려 있다. 방탄소년단(BTS) 세트 메뉴 출시를 기념한 장식이다. 유튜브 캡처

미국 샌프란스시코의 한 맥도널드 매장에 'BTS' 모양의 금색 풍선이 걸려 있다. 방탄소년단(BTS) 세트 메뉴 출시를 기념한 장식이다. 유튜브 캡처


방탄소년단이 보여준 세계적 지역화

방탄소년단이 맥도널드와의 협업으로 세계 곳곳을 뒤흔들고 있다. 글로벌 자본주의의 상징이자 미국식 세계화의 전진 기지 즉 맥도널드가 방탄소년단 세트를 발판으로 세력 확장에 나섰다는 건 방탄소년단이 세계화의 상징으로 떠올랐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K팝이 지역성을 넘어 세계 시장에서 표준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김헌식 카이스트 미래세대행복위원회 위원은 "방탄소년단 세트는 세계적 지역화 즉 글로컬리즘의 성공을 보여준 이벤트"라고 말했다. 서구에서 제3세계로 문화 권력이 이동하는 게 아니라 그 반대 현상을 보여준 사례라는 설명이다.

방탄소년단과 맥도널드의 협업은 뉴노멀 시대의 상징과 과거 유산의 조우다. 이 낯선 만남으로 방탄소년단은 세계화의 중심에 한발 더 다가가고, 맥도널드는 낡은 브랜드 이미지를 털어낸다.

세계 곳곳에서 방탄소년단 세트를 즐기는 체험으로 그룹은 K팝의 특수성을 지우고 대신 보편성을 얻는다. 김성환 음악평론가는 "버거를 뺀 방탄소년단 세트는 세계인들이 공히 즐길 수 있는 음식 메뉴처럼 보편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아이돌의 존재가 방탄소년단임을 확인시켜준 것"이라 해석했다. 방탄소년단 세트엔 햄버거가 없다. 소고기를 먹지 않는 힌두교 문화권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룹 방탄소년단이 2018년 미국 뉴욕 유엔(UN) 본부 회의장에서 '너를 사랑하라'를 주제로 연설하고 있다. UN 제공

그룹 방탄소년단이 2018년 미국 뉴욕 유엔(UN) 본부 회의장에서 '너를 사랑하라'를 주제로 연설하고 있다. UN 제공


공동체·윤리... 패스트푸드의 노림수

그렇다면 맥도널드는 왜 숱한 미국 스타 대신 아시아의 방탄소년단을 메뉴의 모델로 택했을까.

방탄소년단은 여느 영미권 팝스타와 달리 개인의 즐거움보다 사회 공동체적 연대를 강조하고, 일탈 대신 음악을 통한 치유를 중시하며 선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로 인해 방탄소년단은 쾌락을 중시하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되레 윤리적으로 소비됐다. K팝 아이돌그룹의 무해함을 통해 맥도널드가 패스트푸드의 유해함을 희석하고, 소비자의 반감을 지우려는 전략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택광 경희대 글로벌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방탄소년단은 부모가 될 미래세대에 지속가능성의 표상"이라며 "맥도널드가 방탄소년단 세트를 내놓은 건 예전보다 퇴색한 브랜드 이미지를 고급화하고, 주고객인 가족을 묶는 새 끈으로 방탄소년단을 미끼 삼아 잃어버린 소비자를 잡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룹 방탄소년단이 지난달 미국 로스앤젤레스 마이크로소프트 시어터에서 열린 빌보드 뮤직 어워즈에서 '톱 듀오/그룹' 등 4개 부문에서 수상자로 선정돼 트로피를 들고 사진을 찍고 있다. 빅히트 제공

그룹 방탄소년단이 지난달 미국 로스앤젤레스 마이크로소프트 시어터에서 열린 빌보드 뮤직 어워즈에서 '톱 듀오/그룹' 등 4개 부문에서 수상자로 선정돼 트로피를 들고 사진을 찍고 있다. 빅히트 제공


소통의 젠더리스... 가부장적 남성성 세계적 균열

방탄소년단과 맥도널드의 만남으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점은 아시아 신체성의 조명이다.

그간 서구에선 백인 '말보로맨'과 젠틀맨으로 남성성이 양분됐다. 이런 흐름을 깨고 아시아 청년들인 방탄소년단이 맥도널드 모델이 됐다는 건, 방탄소년단이 제시한 새로운 남성성이 주류 MZ세대(1980~2000년대 초반 출생)들에 이상적인 남성상으로 비친다는 뜻이다.

K팝 남성 아이돌그룹은 성의 경계를 허무는 젠더리스 스타일과 팬들과의 적극적인 소통으로 주목받았다. 김성윤 문화사회연구소 연구원은 "맥도널드가 방탄소년단을 모델로 택했다는 건 K팝 남성 아이돌의 이미지를 소비하는 계층이 많이 늘었다는 뜻"이라며 "메트로 섹슈얼 요소와 특유의 따뜻함으로 '게이팝'으로 불리며 일각에서 눈총을 받았던 K팝 남성 아이돌그룹이 가부장적 남성성에 균열을 내고, 주류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른 사건"이라고 의미를 뒀다. 미국 텍사스주에 사는 교육학자 라프란즈 데이비스는 본보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주고받은 인터뷰에서 "이전까지는 비욘세 노래와 드라마 '왕좌의 게임'이 있는데 굳이 다른 나라의, 다른 언어로 된 콘텐츠를 찾아볼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방탄소년단을 계기로 영어 중심 세계관에서 벗어났다"고 털어놨다.

외신도 이런 변화에 주목했다. 영국 BBC는 올초 "나인티원: K팝 영감받은 'Q팝'은 카자흐스탄을 어떻게 바꿨나"란 기사에서 K팝이 보수적인 나라에서 어떻게 전통적인 젠더 규범을 깨는 문화적 자극으로 작용했는지를 의미 있게 다뤘다.

그룹 방탄소년단이 2017년 미국 뉴욕 시티필드에서 연 공연을 보기 위해 몰린 현지 팬들. 양승준 기자

그룹 방탄소년단이 2017년 미국 뉴욕 시티필드에서 연 공연을 보기 위해 몰린 현지 팬들. 양승준 기자


시장의 새 큰손, 팬덤 경제학

더욱이 방탄소년단과 맥도널드의 협업은 팬덤을 통한 경제적 파급력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방탄소년단을 계기로 거대 취향 공동체 즉 팬덤은 세계 시장에서 큰손으로 떠올랐다. 미국 시사주간 타임은 지난 4월 방탄소년단 소속사 하이브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대 기업'으로 선정했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이 지난해 집계한 98개 국 한류 온라인 동호회 회원은 1억478만 명에 이른다. 사상 첫 한류 팬 1억 명 돌파로, 2014년(2,170만 명) 이후 6년 만에 그 규모가 5배 커졌다. 동호회 활동을 하지 않아 집계에 잡히지 않은 팬을 고려하면, 실제 한류 팬은 2억 명을 훌쩍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K팝 아이돌을 위해 듣지 못하는 CD 구매도 망설이지 않는다. 막강한 소비력을 지닌 거대 한류 팬덤은 방탄소년단과 하이브의 '가치 떡상(급등)'을 주도했다. 맥도널드가 낯선 한국의 K팝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과 손을 잡은 배경이다. 김헌식 미래세대행복위원회 위원은 "방탄소년단은 기존의 유통망 즉 대형기획사나 주류 미디어의 조명 없이 네티즌의 입소문으로 서구에 역수출됐다"며 "방탄소년단의 인기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국적을 뛰어넘은 팬들의 결집이 만들어 낸 하나의 현상으로, 지금 이 세계를 움직이는 게 과연 누구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팬덤 경제학에 맥도널드가 움직였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룹 방탄소년단 팬이라는 두 외국인이 지난달 27일 서울 강남구 맥도날드 코엑스점에서 방탄소년단 세트를 먹고 있다. 홍인기 기자

그룹 방탄소년단 팬이라는 두 외국인이 지난달 27일 서울 강남구 맥도날드 코엑스점에서 방탄소년단 세트를 먹고 있다. 홍인기 기자


양승준 기자
신현주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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