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금보다 태양광' 바람에 마을 염전의 100%가 폐전??
폐염전엔 하얀 소금 대신 부유물 쌓여 '알록달록'?
태양광 패널·풍력 터빈 들어서며 그 마저도 사라질 판
아직 6월 초인데도 조금만 움직이면 온몸에 땀이 뱁니다. 지난달에는 비도 유난히 잦아서 ‘기후변화’라는 말을 실감하기도 했죠.
기후변화 탓인지, 때이른 무더위가 며칠째 이어진 지난 8일 전남 영광군 백수읍 하사리를 찾았습니다. 산, 들, 갯벌 할 것 없이 대형 풍력 터빈이 돌아가고, 드넓은 염전과 논밭을 태양광 패널이 뒤덮고 있는 마을입니다. 재생에너지는 인류가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탄소제로’라는 희망적 취지와 달리 마을은 이미 ‘마을’이 아닌 거대한 ‘공장’이 돼 있었습니다.
드론을 띄워 마을을 내려다보았습니다. 최대 비행고도까지 올려도 한 앵글에 들어오지 않을 만큼 발전 시설의 규모는 대단했습니다. 일정한 간격으로 줄지어 선 풍력 터빈 아래에 태양광 패널이 빼곡히 자리 잡았고, 바둑판 모양의 폐염전에선 하얀 소금 대신 오묘한 색깔의 부유물만 쌓이고 썩고 또 쌓여갑니다.
마을의 속사정은 겉모습보다 더 암울합니다. 땅 주인들이 재생에너지 발전 시설을 들일 경우 수익률이 더 높다는 소문에 일제히 염전을 포기하면서, 소금을 채취해 생계를 이어 오던 주민들은 일터를 잃고 말았습니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16개 소금 채취 업체가 주민들과 함께 염전에서 소금을 채취했지만, 지금 이 마을엔 단 1평의 염전도 남지 않았습니다. 물감을 푼 듯 알록달록한 폐염전마저 태양광 패널과 풍력 터빈에 의해 잠식당하고 있으니, 이 또한 얼마 안 가 사라지고 말 풍경입니다.
영광군 전체로 보면 연 3만3,000t의 소금을 생산하던 염전의 35% 정도가 '폐전'한 상태입니다. 이렇게 폐전한 염전부지는 이미 짭짤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재생에너지 발전 부지로 쓰이고 있거나, 쓰일 예정이라고 합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태양광과 풍력 발전 단지 조성을 꾸준히 추진 중입니다. 올해 초 영광군을 찾은 성윤모 당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2050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보급이 중추적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탄소중립’도 좋지만 그로 인해 주민들의 터전이 사라지는 광경은 보기 안쓰럽습니다. 정부가 추진 중인 탄소중립 정책이 우려와 기대의 소용돌이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드는 이유입니다. 하루라도 빨리 우려를 털어내고 환경과 사람 모두 '윈윈' 할 수 있을 거란 기대만 품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