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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 12년… 여전히 옥상에 사람이 있다

입력
2021.06.11 04:30
수정
2021.06.11 09:55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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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천국에 사는 사람들은 지옥을 생각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우리 다섯 식구는 지옥에 살면서 천국을 생각했다. 단 하루라도 천국을 생각해보지 않은 날이 없다.' 조세희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는 철거민 가족의 삶을 설명하는 이런 대목이 있지요. 주택 공급, 주거 환경 개선을 표방한 신도시, 뉴타운, 재개발은 가진 사람들에게는 천국입니다. 여전히 폭력적인 개발 제도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 사회. 브랜드 아파트에 삶의 터전을 내어주고 떠나야 하는 사람들, 혹은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는 사람들. 이들의 마지막 흔적을 기록합니다.


4일 경기 구리 인창C구역 재개발정비사업 지역 내에 위치한 여관 성일장. 주변 건물의 철거가 끝난 상황에서도 철거민 4명이 옥상에 옥탑을 설치하고 농성 중이다. 전혼잎 기자

4일 경기 구리 인창C구역 재개발정비사업 지역 내에 위치한 여관 성일장. 주변 건물의 철거가 끝난 상황에서도 철거민 4명이 옥상에 옥탑을 설치하고 농성 중이다. 전혼잎 기자

철거된 건물들 사이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한참 헤집고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2층짜리 여관. 4일 찾은 경기 구리 인창C구역 재개발정비사업 지역 내에 위치한 여관 성일장이다.

옥상에는 합판으로 얼기설기 엮은 옥탑이 설치돼 있었다. 여관의 출입구는 콘크리트와 차량 등으로 단단히 막혀 올라갈 수도, 내려올 수도 없는 상황이다.

폐쇄된 옥상에는 13년째 해당 여관을 운영해온 이해옥(60)씨와 뇌병변 1급 장애를 가진 딸 조상지(44)씨, 그리고 인근에서 식당 '전주밥상 전라도정식'을 꾸려가던 김경석(가명·62)·김수연(가명·60)씨 부부가 5일째(4일 기준) 농성을 이어가고 있었다. 같은 재개발 구역에 있던 공업사, 택배 집배점 등은 버티고 버티다 결국 떠나갔지만 이들은 옥상까지 내몰린 상황에서도 이곳을 벗어나지 못한다.

농성 강제진압 과정에서 철거민 5명과 경찰관 1명이 숨진 용산참사가 발생한 지 12년이 흘렀다. 당시 망루에 올랐던 사람들은 철거를 앞둔 상가의 세입자들이었다. 이후 정부가 두 번 바뀌었고, 기존의 재개발 방식의 뉴타운이 아닌 주민 참여 도시재생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겠다는 선언이 나왔다. 그러나 여전히 옥상에 사람이 있다.

건물 아래에서는 아무리 목소리를 키워도 옥상에 있는 이들과 긴 대화를 나누긴 어려웠다. 결국 얼굴을 마주 대한 채 전화를 걸었다.

"(여관 일은) 몸이 불편한 딸을 돌보면서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이 거든요. 식당, 공사장에서 일해서 겨우겨우 보증금 8,000만 원에 권리금 3,500만 원을 마련해서 세를 들어왔죠." 해옥씨는 집이자 일터였던 성일장을 포기한다면 어디로 가야 할 지 알 수 없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옥상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신용카드 빚을 내 보증금과 권리금을 마련, 식당을 열었던 김씨 부부 역시 막막하긴 마찬가지다. 수연씨는 "5년간 뼈빠지게 일해 이제 겨우 식당이 자리를 잡아 가려는데 갑자기 나가라고 한다"면서 "어쩌다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철거가 진행 중인 경기 구리 인창C구역의 한 민가 모습.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이 살았을 집에는 이제 철거 쓰레기만이 가득하다. 전혼잎 기자

철거가 진행 중인 경기 구리 인창C구역의 한 민가 모습.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이 살았을 집에는 이제 철거 쓰레기만이 가득하다. 전혼잎 기자

성일장과 전주밥상에 재개발 조합 측이 제시한 보상금은 각각 6,000만 원과 4,400만 원. 해옥씨가 딸과 몸을 의지할 방 한 칸 전세로 얻기 빠듯한 금액이다. 여관이나 식당을 새로 차리기에는 당연히 턱도 없다.

예순이 넘은 이들이 이제 와 다른 일자리를 얻는 일은 또 어떤가. "시위니 투쟁이니 하는 것들 평생 모르고 살았다"는 수연씨는 당장 합의가 이뤄진다고 해도 난생처음 받게 될 경찰 조사 등 이후의 일들을 생각하면 두렵기만 하다. 하지만 '그냥 장사를 계속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오늘도 옥상에 있다.

인창C구역에서 벌어지는 일은 새삼스럽지 않다. 거의 매년 비슷한 일이 곳곳에서 벌어진다. 4월에도 서울 서대문구 영천재개발 구역 내 건물 안에서 과일과 떡, 김밥을 팔던 인근 상인들이 한 달 이상 농성을 벌였다. 소액의 영업손실 보상금을 받거나, 그마저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철거지역 상가 세입자들이 용산참사 이후에도 옥상에 오르는 이유는 뭘까. 참사로 이들의 보상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으나, 재건축·재개발 지역 상가 세입자에 대한 휴업보상금이 3개월치에서 4개월치로 늘어난 것 외에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또 2015년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으로 임차인이 상가 권리금을 일부 보호받게 됐지만, 재개발·재건축으로 나와야 하는 경우는 제외다.

권리금과 시설투자비를 들여 가게를 열었다가 재개발로 얼마 되지 않는 휴업보상금만 들고 쫓겨나는 세입자들이 저항하다 강제철거로 이어지는 잔혹사가 오늘도 반복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21세기 난·쏘·공 : 글 싣는 순서

<1>살 곳 없는 세입자들

<2>생계 잃은 농민들

<3>내몰리는 상인들

<4>한국식 폭력적 개발 언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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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혼잎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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