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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의 반작용

입력
2021.06.09 04:30
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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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부터), 김종천 과천시장, 유동수 정책위 수석부의장, 윤성원 국토부 1차관이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과천청사 주택사업부지 계획변경 당정협의에 입장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이소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부터), 김종천 과천시장, 유동수 정책위 수석부의장, 윤성원 국토부 1차관이 지난 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과천청사 주택사업부지 계획변경 당정협의에 입장하고 있다. 오대근 기자


함께 피 흘려야 할 국난은 견딜지언정, 내 집 앞이 아닌 곳으로만 촘촘해지는 철도망과 내 집만 빼놓고 치솟는 아파트값은 두고 보기 힘들다. 경쟁주의와 계층 상승을 돕는 사다리가 유난히 귀한 대접을 받는 한국 사회에서 부인하기 힘든 대다수의 속마음, 민심이다.

'민심'이 선거철을 앞두면 '표심'으로 포장되기 때문에 '내 집 앞 인프라'와 '내 아파트값'은 여의도 정가의 산술을 풀어내는 중요 변수가 된다. 그래서 코로나19에 맞서는 올해 예산안에도 어김없이 국회의원들의 '쪽지예산'이 대거 등장했다. 정부안보다 최소 100억 원 이상 증액된 수많은 '내 집 앞' 고속도로와 지하철 관련 예산은 국가 채무 폭증의 쓴소리를 감내하고라도 지역구를 놓칠 수 없다는 정치적 본능의 결과물인 셈이다. 제한된 포퓰리즘의 형태를 띠는 이 같은 메커니즘은 치명적 단점이 있다. '표심이 원하면 산이라도 옮길 수 있다'는 맹목적인 믿음에 불을 지핀다는 것이다.

교통망이 듬성듬성한 수도권 주민들에게 최근 뜨거운 이슈 중 하나는 GTX다. 최소 판교급 부동산값 상승률을 보장한다고 알려진 GTX 역사를 지자체와 지역구 의원들이 얼마나 정치력을 발휘해 끌어올 수 있는지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들의 관심은 곳곳에서 기대감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중이다. 일례로 C노선 입찰에 참여한 기업들이 추가 역사를 제안했다는 경기 의왕지역에선 중소형 아파트가 초고가주택 기준선(15억 원)을 넘겨 실거래됐다. GTX역이 '우리 동네'로 온다는 관측이 6개월 새 이 지역 아파트값을 20% 가까이 끌어올렸다는 말도 들린다.

정부·여당의 가덕도신공항 확정과 GTX D노선 수정 가능성 확대, 그리고 각종 개발 계획의 변경이 부동산에 미친 영향을 보면서 '내 집 앞' 유치에 자신감을 드러내는 여론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대선과 지방선거가 다가오는 가운데 부동산 정책실패와 LH 투기로 위기에 몰린 정부·여당 주변부를 표심으로 압박한다면 못 이룰 게 없다는 계산이 중론이 된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지난 4일 정부가 정부과천청사 자리에 예정했던 주택 4,000호 건설 계획을 수정하는 일이 벌어졌다. 8·4 대책으로 제시했던 정부 계획이 10개월 만에 어그러진 것이다. 부동산 정책기조에 흠집 나는 리스크를 감내하면서까지 정부가 과천 주택공급 계획을 변경한 이유는 선명하다. 번잡해지는 주택 건설 대신 쾌적한 공원 조성을 원하는 표심, 그리고 이를 두려워하는 지자체의 요구다.

공항·철도·택지개발 등 대규모 인프라 건설은 최소 10년 이상 여론과 경제성을 면밀히 검토하는 숙려를 필요로 한다. 이 과정에서 직주접근성 증대, 집값 안정과 같은 핵심 기조가 충분히 착근한다. 하지만 표심에 흔들려 개발계획이 쉽게 움직일 수 있다는 이미지가 짙어진다면 기대할 수 있는 건 혼란뿐이다. 너도나도 내 집 앞 역사와 노선을 요구하는 탓에 GTX의 불확실성은 하루하루 더해지고 있다. 과천 사례는 현 정부의 공급대책 큰 틀을 망가뜨릴 여지를 제공했다. 과천뿐 아니라 용산, 노원 등에서 개발계획 변경을 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표심의 바람 따라 흔들리는 정부 당국을 국민은 신뢰할 수 있을까. 포퓰리즘의 반작용으로 돌아올 부메랑을 떠올리자니 목덜미가 서늘하다.












양홍주 디지털기획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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