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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신에게만 알려진 그들의 이름... 무명용사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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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신에게만 알려진 그들의 이름... 무명용사의 묘

입력
2021.06.06 10:20
수정
2021.06.06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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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버지니아주 알링턴 국립묘지 '무명용사의 묘'를 지키는 제3보병연대 의장병이 미국 현충일인 지난달 31일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알링턴 국립묘지 제공

미국 버지니아주 알링턴 국립묘지 '무명용사의 묘'를 지키는 제3보병연대 의장병이 미국 현충일인 지난달 31일 경계근무를 서고 있다. 알링턴 국립묘지 제공

지난달 미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첫 일정으로 알링턴 국립묘지의 '무명용사의 묘'를 참배했다. 한 달 앞서 미국행에 올랐던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역시 조 바이든 대통령과 만나기 하루 전 이곳을 참배했다.

국가 원수 방문 시 주요 외교 관례 중 하나가 현충시설 참배다. 그중에서도 무명용사의 묘 참배는 당사국의 주권 수호 의지에 경의를 표하는 상징적인 절차로 통한다. '국민 주권' 국가에서 무명용사의 묘는 위대한 왕족이나 구국 위인들의 묘지와 차원이 다른 중대한 위상을 지닌다.

현대적 개념의 무명용사의 묘는 제1차 세계대전 종전 직후 영국과 프랑스에서 처음 등장했다. 당시 영국군 군목으로 1차 대전에 참전한 데이비드 레일턴 목사는 영국과 프랑스의 모든 전사자를 기리는 차원에서 신원불명의 병사들을 국가의 상징적인 장소에 안장할 것을 제안했다. 양국 정부는 이를 받아들여 휴전 협정 기념일인 1920년 11월 11일 무명용사의 묘를 처음 조성했다.

1차 대전은 국가의 모든 인력과 자원을 동원한 최초의 ‘총력전’이었던 만큼, 대규모로 발생한 전사자의 신원을 일일이 확인하는 게 불가능했다. 또한 인권의 개념이 정립돼 가던 시기였던 만큼 국민의 희생을 더 이상 ‘당연한 것’으로 덮어두기도 어려웠다. 국가를 위해 쓰러져간 무명의 영령들을 추모할 수 있는 상징적인 묘역이 필요해진 것이다.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 중앙 신랑 가운데 위치한 무명용사의 묘. 웨스트민스터 사원 제공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 중앙 신랑 가운데 위치한 무명용사의 묘. 웨스트민스터 사원 제공


이 비석 아래 이름도 계급도 알려지지 않은 영국의 용사가 잠들었다. 이 땅의 가장 위대한 이들과 함께 영면하기 위해 프랑스에서부터 건너와 휴전기념일인 1920년 11월 11일, 국왕 조지 5세, 국무대신, 장성들과 국민 일동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곳에 묻혔다. 1914~1918년 세계대전 당시 하느님을 위해, 국왕과 국가를 위해, 사랑하는 이와 제국을 위해, 세계의 자유를 위해 인간이 바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것인 생명 그 자체를 바친 수많은 이들을 기린다. 하느님과 교회를 위해 헌신했기에 그들을 왕들의 곁에 묻는다. 웨스트민스터 사원 제공

이 비석 아래 이름도 계급도 알려지지 않은 영국의 용사가 잠들었다. 이 땅의 가장 위대한 이들과 함께 영면하기 위해 프랑스에서부터 건너와 휴전기념일인 1920년 11월 11일, 국왕 조지 5세, 국무대신, 장성들과 국민 일동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곳에 묻혔다. 1914~1918년 세계대전 당시 하느님을 위해, 국왕과 국가를 위해, 사랑하는 이와 제국을 위해, 세계의 자유를 위해 인간이 바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것인 생명 그 자체를 바친 수많은 이들을 기린다. 하느님과 교회를 위해 헌신했기에 그들을 왕들의 곁에 묻는다. 웨스트민스터 사원 제공

영국은 무명용사의 묘를 왕립묘지 격인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조성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왕족 및 국가 원수, 또는 아이작 뉴턴, 스티븐 호킹과 같은 위인들만 안치되는 가장 성스러운 장소로 알려졌다. 프랑스 전선에서 전사한 것으로 알려진 최초의 ‘무명용사’는 국왕 조지 5세가 참석한 가운데 웨스트민스터 사원 신랑 중앙에 묻혔다. 추모 문구가 새겨진 검은 석판을 빨간 양귀비꽃이 둘러싸고 있는 무명용사의 묘는 사원 바닥에 안치된 묘 중 밟을 수 없는 유일한 묘소다.

프랑스는 파리의 심장 개선문에 무명용사의 묘를 조성했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프랑스 병사가 여기 잠들다’라고 적힌 석판 위에 ‘꺼지지 않는 불꽃’이 타고 있다. 평상시 훼손 방지를 위해 묘 주위에 접근 금지 사슬이 둘러쳐져 있다.

프랑스 파리 개선문 중앙에 위치한 무명용사의 묘를 하늘에서 촬영한 모습. 프랑스 국립기념물관리청 제공

프랑스 파리 개선문 중앙에 위치한 무명용사의 묘를 하늘에서 촬영한 모습. 프랑스 국립기념물관리청 제공


지난달 프랑스 파리 개선문 무명용사의 묘에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전승기념일을 맞아 헌화한 꽃다발이 놓여 있다. 프랑스 국립기념물관리청 제공

지난달 프랑스 파리 개선문 무명용사의 묘에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전승기념일을 맞아 헌화한 꽃다발이 놓여 있다. 프랑스 국립기념물관리청 제공



지난 4월 25일 해방기념일을 맞아 세르지오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이 로마 무명용사의 묘에 헌화하는 가운데 하늘 위로 축하 비행이 펼쳐지고 있다. 이탈리아 대통령 비서실 제공

지난 4월 25일 해방기념일을 맞아 세르지오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이 로마 무명용사의 묘에 헌화하는 가운데 하늘 위로 축하 비행이 펼쳐지고 있다. 이탈리아 대통령 비서실 제공

그 이듬해 이탈리아도 무명용사의 묘 조성 대열에 합류했다. 이탈리아 역시 무명용사의 묘를 수도의 심장에 조성했다. 로마 베네치아 광장의 상징 ‘조국의 제단(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기념관)’ 정중앙에 1차 대전 격전지에서 공수한 석재로 묘를 만들었다. 이탈리아를 통일한 왕과 ‘로마의 여신’이 용사들을 굽어살피는 듯한 구성이다. 묘의 양옆에는 역시 꺼지지 않는 불꽃이 타고 있다.


미국 알링턴 국립묘지 무명용사의 묘 뒷면과 옆면. 평화, 승리, 용기와 1차 세계대전 격전지 6곳을 상징하는 부조가 새겨져 있다. 알링턴 국립묘지 제공

미국 알링턴 국립묘지 무명용사의 묘 뒷면과 옆면. 평화, 승리, 용기와 1차 세계대전 격전지 6곳을 상징하는 부조가 새겨져 있다. 알링턴 국립묘지 제공


'오직 신에게만 (이름이) 알려진 미국 병사가 여기 영예롭게 잠들다'. 알링턴 국립묘지 제공

'오직 신에게만 (이름이) 알려진 미국 병사가 여기 영예롭게 잠들다'. 알링턴 국립묘지 제공

국내에도 잘 알려진 미국 알링턴 국립묘지의 무명용사의 묘는 1921년 최초로 조성된 뒤 증축을 거쳐 1931년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묘 정면에는 ‘오직 신에게만 (이름이) 알려진 미국 병사가 여기 영예롭게 잠들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 뒷면은 평화·승리·용기를 상징하는 부조가, 양옆에는 1차 대전 격전지 6곳을 상징하는 월계관 부조가 있다.


'꺼지지 않는 불꽃'이 환히 불타고 있는 러시아 모스크바 무명용사의 묘 앞에 승리의 날을 기념하는 꽃다발이 놓여 있다. 모스크바=타스 연합뉴스

'꺼지지 않는 불꽃'이 환히 불타고 있는 러시아 모스크바 무명용사의 묘 앞에 승리의 날을 기념하는 꽃다발이 놓여 있다. 모스크바=타스 연합뉴스


승리의 날을 4일 앞둔 지난달 5일 꺼지지 않는 불꽃 봉송 행사에 참가한 오토바이 협회원들이 놓고 간 꽃이 묘 앞에 놓여 있다. 모스크바=타스 연합뉴스

승리의 날을 4일 앞둔 지난달 5일 꺼지지 않는 불꽃 봉송 행사에 참가한 오토바이 협회원들이 놓고 간 꽃이 묘 앞에 놓여 있다. 모스크바=타스 연합뉴스


박병석 국회의장이 지난달 24일 모스크바 무명용사의 묘를 참배하고 있다. 국회 제공

박병석 국회의장이 지난달 24일 모스크바 무명용사의 묘를 참배하고 있다. 국회 제공

미·영·프의 무명용사의 묘가 1차 대전 이후 조성된 데 비해 러시아 모스크바에 있는 무명용사의 묘는 제2차 세계대전 전사자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러시아는 '모스크바 공방전' 25주년을 맞은 1966년 전사자 유해를 소련 최고의 국립묘지인 크렘린 벽 국립묘지에 이장해 이듬해 3월부터 추모객을 받기 시작했다. 깃발과 철모 동상이 올려진 비석 앞에 꺼지지 않는 불꽃이 타는 별이 있다. 비석에는 ‘그대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업적은 영원하다’는 문구가 적혀 있다.


이한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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