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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유대주의가 깨어났다"... 서구사회 인종 혐오로 불똥 튄 이·팔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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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反유대주의가 깨어났다"... 서구사회 인종 혐오로 불똥 튄 이·팔 갈등

입력
2021.05.2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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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간 미국서 유대인 관련 범죄 63% 증가
이스라엘 민간인 공격 책임 유대인에 물어
각국 수장·?정치권 "유대인 공격 중단" 호소

독일에서 유대인 혐오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16일 베를린 유대교 회당 앞에서 시민들이 반유대주의를 비난하며 유대인 보호를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베를린=EPA 연합뉴스

독일에서 유대인 혐오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가운데 16일 베를린 유대교 회당 앞에서 시민들이 반유대주의를 비난하며 유대인 보호를 촉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 베를린=EPA 연합뉴스

가자지구의 포성은 멈췄지만 열흘 넘게 이어진 무차별 공격은 ‘인종 혐오’란 새로운 숙제를 남겼다. 이스라엘이 국제사회의 만류에도 대규모 공습을 통해 팔레스타인 민간인 수백 명을 숨지게 하자 서구사회에서 ‘반(反)유대주의’ 움직임이 꿈틀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정치 지도자들이 자제를 촉구할 정도로 상황이 심상치 않다.

美·유럽서 유대인 혐오범죄 급증

24일(현지시간) 외신에 따르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 유혈 분쟁이 시작된 이후 미국과 유럽 곳곳에서 유대인을 겨냥한 각종 폭력 행위가 빈발하고 있다. 20일 미국 뉴욕에서는 ‘야물커(유대인 남성 모자)’를 착용하고 이스라엘 지지 집회에 참석한 20대 남성이 낯선 남성들에게 구타를 당했다. 피해자는 일간 워싱턴포스트에 “그들은 나를 ‘추잡한 유대인’이라 부르며 하마스가 우리를 다 죽일 것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용의자 중 한 명을 ‘증오범죄’ 혐의로 기소하는 한편, 폭행 가담자들을 추적하고 있다.

유대인들에게 모욕과 성적 조롱을 일삼고, 유대교 회당(시나고그)을 훼손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히틀러가 옳았다”는 혐오 발언도 쏟아지고 있다. “미국 내 반유대주의 공격이 산불처럼 번지고 있다(미 공영방송 PBS)”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20일 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 앞에서 열린 반유대주의 반대 집회에 참석한 한 랍비가 이스라엘 국기를 들고 서 있다. 베를린=EPA 연합뉴스

20일 독일 베를린 브란덴부르크문 앞에서 열린 반유대주의 반대 집회에 참석한 한 랍비가 이스라엘 국기를 들고 서 있다. 베를린=EPA 연합뉴스

유럽 주요 도시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아 이스라엘 규탄 시위가 유대인 혐오로 변질됐다. 독일 베를린에서는 일부 시위대가 이스라엘 국기를 불태우거나 유대교 회당에 돌을 던지다 경찰에 제지 당했다. 영국 런던의 유대인 밀집 지역에서도 증오와 경멸이 담긴 언사를 퍼부은 남성들과 종교 지도자 랍비를 공격한 청소년들이 잇따라 체포됐다. BBC방송은 유대인보호단체를 인용, “8일부터 17일까지 열흘 간 영국에서 86건의 반유대주의 폭력 사건이 발생했다”며 “이전보다 5배나 늘어난 수치”라고 전했다. 이스라엘의 공습 기간(10~20일)과 대체로 일치한다.

민간 희생 화살 유대계로 돌려

사실 서방국가에서 반유대주의는 단어 자체를 쓰는 것조차 금기에 가깝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저지른 ‘홀로코스트(유대인 대학살)’에 대한 끔찍한 기억이 여전히 살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동에서 유혈사태가 불거질 때마다 이슬람 과격주의자와 백인 우월주의자들은 기다렸다는 듯 유대인 혐오를 공격 소재로 삼았다. 이번 이ㆍ팔 충돌 사태도 마찬가지였다. 11일 동안 쉴새 없이 이어진 무력 공방으로 팔레스타인에서만 어린이 61명을 포함, 232명이 숨지자 어김없이 반유대주의가 고개를 들었다.

16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가자시티에서 한 남성이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 더미에서 구해낸 딸을 옮기고 있다. 가자시티=EPA 연합뉴스

16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가자시티에서 한 남성이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 더미에서 구해낸 딸을 옮기고 있다. 가자시티=EPA 연합뉴스

우려되는 건 과거보다 혐오 수위가 훨씬 세지고 광범위해졌다는 점이다. 미 유대계 인종차별철폐 단체 반명예훼손연맹(ADL)의 조너선 그린블랫 대표는 “이ㆍ팔 분쟁이 계속된 지난 2주 동안 미국 내 유대인 관련 범죄가 63% 급증했다”며 “이전에도 중동지역에 긴장이 조성되면 반유대주의 움직임이 일었지만 이번엔 월등히 위험하고 극단적”이라고 지적했다. 제러드 베이커 전 월스트리트저널 편집국장은 “일부 정치인의 편향적 발언도 사회적 분노와 편견을 키우는 데 일조했다”면서 “반유대주의가 깨어났다”고 단언했다.

각국 지도자 "유대인 공격 중단하라"

폭력이 위험수위에 다다르자 각국 수장까지 직접 나서 유대인 공격 중단을 호소하며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에 “증오에 피난처를 주지 말아야 한다”고 촉구했고,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우리 사회에 반유대주의가 있을 자리는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독일 정부 안에서는 유대인 혐오를 범죄로 규정하고 처벌 기준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팔레스타인에 우호적인 인사들도 반유대주의 규탄에는 한 목소리다. 팔레스타인 권리를 지지해온 영국의 유명 칼럼니스트 오웬 존스는 “국가가 저지른 범죄 때문에 유대인을 공포에 떨게 하면 당신은 팔레스타인에 연대하는 게 아니라 그저 구역질 나는 인종차별주의자일 뿐”이라고 일갈했다.

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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