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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부천시민 100여 명, 미얀마 응원 책 만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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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부천시민 100여 명, 미얀마 응원 책 만들다

입력
2021.05.23 09:00
수정
2021.05.23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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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천 유네스코 책쓰기 교육 연구회
한 달 만 미얀마 응원하는 그림책 제작
출간만 앞둬...인세 전액은 미얀마에 기부

어린이부터 70대까지 시민도 참여
"한국의 민주주의를 되짚는 기회도 돼"
"미얀마의 평화 부르는 작은 파동 됐으면"

부천 유네스코 책쓰기 교육 연구회가 군부 쿠데타가 발생한 미얀마 시민을 응원하는 그림책을 냈다. 사진은 그림책 표지 이미지. 부천 유네스코 책쓰기 교육 연구회 제공

부천 유네스코 책쓰기 교육 연구회가 군부 쿠데타가 발생한 미얀마 시민을 응원하는 그림책을 냈다. 사진은 그림책 표지 이미지. 부천 유네스코 책쓰기 교육 연구회 제공

경기 부천시민 100여 명이 미얀마를 응원하는 170페이지 분량의 그림책을 만들었다.

'미얀마 시민들이 군부의 폭정에서 벗어나 하루빨리 평화를 되찾길 바란다'는 소망이 책을 관통하는 공동주제다. 그런데 어린이부터 70대 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세대의 저자들이 미얀마를 각자의 경험에 투영하는게 독특하다.

민주화 운동 세대는 1970, 1980년대의 기억 또는 '그때 나는 물러나 있었다'는 부채 의식을 말한다. 그리고 민주화 이후 세대는 그들이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자란 인권과 평화라는 보편가치를 강조한다.

정리하면, 미얀마를 보며 우리의 민주주의를 되짚고, 그를 통해 다시 미얀마에 공감하는 책이 시민의 손으로 탄생했다는 얘기다.

"미얀마를 기록해서 알려주는 것도 책의 힘입니다"

'부천 유네스코 책쓰기 교육 연구회(책연)' 산하 미얀마 프로젝트 팀원들이 지난달 30일 비대면 회의를 하고 있다. 왼쪽 위부터 오른쪽 방향으로 김정이 책연 부회장, 김문경씨, 유동우씨, 노원화씨, 조승희 부천 심곡초 전문상담교사, 허병두 서울 숭문고 국어교사, 전정숙 작가. 부천 유네스코 책쓰기 교육 연구회 제공

'부천 유네스코 책쓰기 교육 연구회(책연)' 산하 미얀마 프로젝트 팀원들이 지난달 30일 비대면 회의를 하고 있다. 왼쪽 위부터 오른쪽 방향으로 김정이 책연 부회장, 김문경씨, 유동우씨, 노원화씨, 조승희 부천 심곡초 전문상담교사, 허병두 서울 숭문고 국어교사, 전정숙 작가. 부천 유네스코 책쓰기 교육 연구회 제공

'함께해요, 미얀마'는 '부천 유네스코 책쓰기 교육 연구회(책연)' 산하 미얀마 프로젝트팀의 기획으로 만들어졌다. 책연은 부천시가 유네스코 문학창의도시 사업으로 시행하는 '일인일저(一人一著) 책쓰기 지도자 양성 과정' 수료자들의 모임이다.

각자 꾸준히 책이나 글을 쓰고 있지만 공동으로 책을 펴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책연 회원들의 스승이자 자문위원인 허병두(60) 서울 숭문고 국어 교사는 "제작 과정이 꼭 '돌멩이 수프'를 끓이는 것 같았다"고 비유했다.

돌멩이 수프배고픈 주인공이 마을 사람들에게 "돌멩이 수프를 끓여주겠다"면서 이것저것 필요한 식재료를 얻어 진짜 수프를 만들어 나눠 먹었다는 스위스 전래동화다.

즉, 돌멩이로 수프를 끓이는 것처럼 '미얀마를 위해 책을 만든다'는 자칫 불가능해 보일 수 있는 구상에 여러 사람의 힘이 모이니 정말로 책 한 권이 뚝딱 만들어졌다는 게 허 교사의 설명이다.

미얀마의 지방 도시 만달레이에서 13일 시위대가 거리를 행진하며 군부 쿠데타를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만달레이=EPA·연합뉴스

미얀마의 지방 도시 만달레이에서 13일 시위대가 거리를 행진하며 군부 쿠데타를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만달레이=EPA·연합뉴스

허 교사는 지난 2월 미얀마 사람들이 주 미얀마 한국대사관 앞에서 한국어로 "도와주세요" 하고 호소하는 장면을 보고 울었다. 그는 "35년째 국어를, 25년째 책쓰기 교육을 가르치는 교사의 입장에서 한국말을 배운 미얀마인의 호소를 도저히 외면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민주화 운동 세대인 그에겐 광주를 뒤늦게 알았다는 부채감까지 되살아났다.

미얀마인을 실질적으로 도울 방법이 없어 좌절하던 찰나, 허 교사는 지난달 7일 책연 회원 김문경(45)씨의 질문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책 '내가 책이라면'으로 수업했는데 좋은 것 같아요. 훈장님(허 교사)이 책이라면 어떤 책인 것 같으세요?"

중학교에서 책쓰기 수업을 하는 김씨는 당시 허 교사의 대답이 당황스러웠다고 했다. "내가 책이라면 눈앞의 참상을 알고도 겨우 돈이나 보내는 정도로 무력한가 하는 자문..."이라는 답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김씨는 "내가 '책으로 기록해서 다시 알려주는 것도 책의 역할입니다'라고 답하자, 훈장님이 조금 고민하시더니 '내가 미얀마인이라면'으로 질문을 바꿔 책을 만들자고 하시더라"고 전했다. 그렇게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여러 사람의 힘이 모이니 책 한 권이 뚝딱 만들어지더라"

부천 유네스코 책쓰기 교육 연구회의 미얀마 프로젝트 홍보 이미지. 부천 유네스코 책쓰기 교육 연구회 제공

부천 유네스코 책쓰기 교육 연구회의 미얀마 프로젝트 홍보 이미지. 부천 유네스코 책쓰기 교육 연구회 제공

'응원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전해야 한다'는 마음에 허 교사는 서둘렀다. 김씨와 문자를 주고받은 다음날 미얀마 프로젝트를 주도할 책연 회원(허 교사, 자문 역할을 맡은 전정숙 작가 포함 총 7명)들을 모았고 작품을 제출할 시민을 모집한다는 홍보물도 제작했다. 모든 게 사흘 만에 일어난 일이다.

처음엔 한 명당 그림 하나, 글 하나를 받기로 기획했다. 그러다 책연 회원들의 릴레이 글쓰기도 추가하기로 했다. 허 교사가 프로젝트 단체 채팅방에 '이렇게 써봤다'며 세 문장을 올리자, 김정이 책연 부회장이 그에 이어지는 글을 쓰고, 누군가가 또 자연스럽게 이어 썼던 게 계기가 됐다.

허 교사는 "점점 좋은 글이 나오더라. 글이 이어지는 모양이 조각보 같아서 '조각보 글쓰기'로 이름 붙였다. 우연이 집단창작을 이끌어 낸 셈"이라고 말했다.

책 '함께해요, 미얀마'에 수록된 부천 유네스코 책쓰기 교육 연구회 회원들의 조각보 글쓰기 중 일부. 부천 유네스코 책쓰기 교육 연구회 제공

책 '함께해요, 미얀마'에 수록된 부천 유네스코 책쓰기 교육 연구회 회원들의 조각보 글쓰기 중 일부. 부천 유네스코 책쓰기 교육 연구회 제공

그로부터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편집본이 완성됐다. 미얀마 프로젝트 팀원 7명의 추진력과 부천시민들의 열성적인 참여의 결과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대면 회의는 없었다. 모든 회의는 단체 채팅방에서 했고, 만나야 할 땐 비대면 화상 회의를 했다. 김씨의 말대로 "코로나를 이긴 열정"이다.

자료 취합을 담당했던 노원화(53)씨는 "한 달 동안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주말과 휴일 없이 문자를 주고받았다"며 "가족여행 가서도 문자를 하거나 전화를 하거나 피곤해서 조는 바람에 부부싸움 날 뻔했다"는 우스갯소리로 팀원들의 열정을 전했다.

"민주주의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는 기회도 돼"

책 '함께해요, 미얀마'에 수록된 강정규 아동문학 작가의 글. 부천 유네스코 책쓰기 교육 연구회 제공

책 '함께해요, 미얀마'에 수록된 강정규 아동문학 작가의 글. 부천 유네스코 책쓰기 교육 연구회 제공

허 교사는 "책쓰기는 곧 자기 정체성을 정립하는 과정인데, 미얀마로 책을 쓰다 보니 민주주의나 평화, 인권에 대한 각자의 생각과 주장을 정리하는 기회도 되더라"고 책을 소개했다.

당장 허 교사와 같은 민주화 운동 세대는 미얀마에서 우리의 과거를 떠올렸다. 노씨도 그랬다. 노씨도 1980년 5월 광주의 기억을 갖고 살기 때문이다.

전남 장흥이 고향인 노씨는 41년 전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 6학년 때, 교련복 바지에 하얀 러닝셔츠를 입고 하얀 띠를 두른 오빠들이 달리는 트럭 위에서 무언가를 외치는 장면을 보았다. 노씨는 나중에야 그 오빠들이 시민들을 돕기 위해 광주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노씨는 "뉴스에 나오는 미얀마의 장면 하나하나가 그때의 기억을 되살렸다. 어린 내가 어른들에게 전해 들었던 광주와 너무나도 똑같았다"며 울먹였다.

부천 유네스코 책쓰기 교육 연구회 소속 조승희 교사의 딸 류재영양이 미얀마 민주주의를 표현한 그림(위쪽)과 시아버지 류근영씨의 서예 작품. 부천 유네스코 책쓰기 교육 연구회 제공

부천 유네스코 책쓰기 교육 연구회 소속 조승희 교사의 딸 류재영양이 미얀마 민주주의를 표현한 그림(위쪽)과 시아버지 류근영씨의 서예 작품. 부천 유네스코 책쓰기 교육 연구회 제공

민주화 이후 세대의 민주주의에 대한 감각도 읽을 수 있었다. 미얀마 프로젝트 일원인 조승희(42) 부천 심곡초 전문상담교사는 그 예로 자신의 딸 얘기를 전했다. 엄마가 미얀마 군부의 탱크를 그리는 것을 본 딸 류재영(10)양이 "엄마, 미얀마 사람들이라면 할아버지도, 장애인도, 다같은 마음이겠지?"라고 물었단다.

조씨는 "그러더니 딸 아이가 휠체어에 앉은 사람, 지팡이를 든 할아버지 등 다양한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원한다'는 큰 푯말을 들고 있는 그림을 그렸다"고 했다. 손녀가 그린 그림을 본 조씨의 시아버지도 서예로 미얀마에 대한 마음을 표현했다.

부천 유네스코 책쓰기 교육 연구회 김문경씨의 시아버지 이희철씨가 그린 그림. 그는 그림과 함께 "미얀마의 민주화 항해를 응원합니다"라고 적었다. 부천 유네스코 책쓰기 교육 연구회 제공

부천 유네스코 책쓰기 교육 연구회 김문경씨의 시아버지 이희철씨가 그린 그림. 그는 그림과 함께 "미얀마의 민주화 항해를 응원합니다"라고 적었다. 부천 유네스코 책쓰기 교육 연구회 제공

물론 김씨처럼 남의 나라에서 일어나는 무거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게 낯선 사람도 있었다. 김씨는 "처음엔 그저 뜻있는 동료들에게 힘을 보태자는 마음에 시작했다가, 점점 미얀마 아이들이 보였다"고 했다.

그는 "그러더니 나중엔 '알기 싫다고 거부하는 나 같은 사람이 많아지면 누가 관심을 가져줄까' 하는 생각에 이르렀다"고 했다.

김씨가 동료들 때문에 관심을 갖게 된 것처럼, 김씨 때문에 김씨의 가족들과 그의 학생들도 미얀마를 알게 됐다. 미얀마에 대해 "듣기도, 생각하기도 싫다"던 시아버지도 결국 '민주화를 좇아 항해하는 배'를 그렸다. 시아버지의 고향도 전라도였다.

"미얀마의 평화를 위한 작은 파동이라도 됐으면"

책 '함께해요, 미얀마'에 수록된 부천 유네스코 책쓰기 교육 연구회 회원 안용민씨의 글과 그림. 그림 위로 "엄마, 내가 어른이 되면 봄날의 물 축제를 즐겁게 즐길 수 있겠지요?", "그럼 그래야지. 잘 될 거야"라는 미얀마인 모녀의 문답이 적혀 있다. 부천 유네스코 책쓰기 교육 연구회 제공

책 '함께해요, 미얀마'에 수록된 부천 유네스코 책쓰기 교육 연구회 회원 안용민씨의 글과 그림. 그림 위로 "엄마, 내가 어른이 되면 봄날의 물 축제를 즐겁게 즐길 수 있겠지요?", "그럼 그래야지. 잘 될 거야"라는 미얀마인 모녀의 문답이 적혀 있다. 부천 유네스코 책쓰기 교육 연구회 제공

허 교사는 지난 한 달에 대해 "괴로웠지만 유쾌했다. 우리 시민사회가 이 정도로 폭발력 있게 지식생산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췄음을 깨달았다"고 회고했다.

미얀마 프로젝트는 마지막 출간 작업만을 앞두고 있다. 지난 3주간 협업할 출판사를 찾다가 다행히 최근 뜻이 맞는 좋은 곳을 만나 구체적인 사안을 논의 중이다.

책이 출간되면 수익금은 모두 미얀마에 기부할 계획이다. 미얀마 시민들에게 직접적인 힘이 되고 싶어서 미얀마어 번역자도 수소문하는 중이다.

노씨는 "부천에서 시작했으면 다른 도시의 뜻있는 분들도 시작하지 않겠나. 국제적으로 알려지게 된다면 강 건너 불구경하는 강대국들은 부끄러워하지 않을까"라며 "이 책이 미얀마의 평화를 부를 미약한 파동이라도 됐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밝혔다.



윤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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