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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한센병 환자입니다" 죽음 앞둔 아내의 눈물로 쓴 편지

입력
2021.06.01 21:00
수정
2021.06.08 22:16
25면
0 0

<14> 김종필 피부과 전문의

편집자주

의사라면 평생 잊지 못할 환자에 대한 기억 하나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생명을 구한 환자일 수도 있고, 반대로 자신에게 각별한 의미를 일깨워준 환자일 수도 있다. 아픈 사람, 아픈 사연과 매일 마주하는 의료종사자들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천형(天刑). 옛 사람들은 한센병을 하늘이 내린 형벌이라 불렀다. 왜 걸리는지, 어떻게 치료하는지 속 시원한 답이 없었다. 환자들은 제때 치료받지 못해 손, 발, 얼굴 등 신체에 변형이 생기곤 했다. 사람들은 그런 환자를 보면 혹시라도 내게 옮을까, 공격적으로 돌변하기 일쑤였다. 환자와 가족들은 병력을 비밀로 품은 채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일반 병의원들도 한센병 환자라면 치료를 꺼리던 시절, 한국한센복지협회는 환자들이 마음 놓고 비밀을 이야기할 수 있는 곳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진료를 보는 내게 환자들은 자신들의 숨은 사연을 들려주곤 했다. 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A씨의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A씨가 한센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안 것은 1960년대 후반, 스물한 살 때였다. 왼쪽 팔에 감각이 느껴지지 않아 찾아간 보건소에서 한센병이라는 사실을 처음 들었다. 앞이 캄캄했고, 끝없는 공포감이 밀려왔다.

“손발이 없어지는 것보다 함께 사는 가족이 없어질까, 그게 더 무서웠어요. 그래서 식구들에게 비밀로 한 채 답손(치료약)을 먹었지요.”

A씨는 3년간 성실하게 치료를 받았고 병세는 눈에 띄게 좋아졌다. 일찍 약을 먹기 시작한 덕에 겉모습도 일반인과 같았다. 완치됐다고 믿고 결혼도 했다. 그러나 행복한 삶 속에서도, 그는 늘 재발이 불안했다. 그래서 치료약을 완전히 끊진 않고 생각나면 두세 달에 한 번씩 먹었다.

안타깝게도 걱정은 현실이 됐다. 1990년대 후반 A씨는 전신에 붉은 반점이 돋아난 채 한센복지협회를 찾아왔다. 홍반은 한센병 주요 증상 중 하나. 재발한 것이었다. 나는 요즘에도 적용되는 답손, 리팜피신, 클로파지민 3중 복합요법을 처방했다. A씨의 상태는 금방 좋아졌지만 꾸준히 치료해오지 않은 탓에 후유증이 남았다. 온몸 관절 마디마디를 바늘로 찌르는 것 같은 신경통과 뜨거움이나 아픔을 느끼지 못해 자신도 모르게 생기는 온갖 상처를 갖고 살아가게 됐다. 부인이 남편의 병을 알게 된 것도 이때였다.

A씨는 병원에 올 때 부인과 자주 동행했다. 그는 아프다는 말조차 쉽게 이야기하지 않을 만큼 소심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진료는 항상 이런 식으로 흘러갔다.

나 : "발에 상처가 새로 생겼네요. 어디 더 아픈 곳은 없으세요?"

A씨 : "없어요..."

부인 : "아니, 잘 때 계속 아프다 아프다 앓으면서 왜 말을 안 해요! 신경통에 듣는 약 좀 주세요."

나 : "신경통 약 처방해드릴까요?"

A씨 : "저… 그렇게 해주세요."

부인 : "아픈 사람이 아프다고 말을 해야지. 아이고 답답해! 정말!”

부인은 핀잔을 주면서도 항상 남편을 먼저 챙겼다.

A씨는 60대에 접어들면서 오른팔에 말썽이 생겼다. 근력이 없어져 무엇도 쥐기 힘들게 됐다. 한센병과 연관성은 찾을 수 없었다. 신경외과, 신경과, 재활의학과 어디에서도 원인을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 더 큰 불행이 더해졌다. 부인이 먼저 암으로 떠난 것이다. 이런 상황을 몰랐던 나는 오랜만에 진료를 보러 온 A씨에게 물었다.

“오른팔은 어떠세요? 부인은 바쁘신가요?”

“..."

A씨의 침묵은 으레 있던 일이지만, 눈물은 처음이었다. 그는 울음을 삼키며 아내의 소식을 나지막이 전했다. 그날의 진료는 짧고도 길었다. 그리고 2년 뒤인 2009년, A씨는 텅 빈 집에서 쓸쓸하게 눈을 감았다.

얼마 후 A씨와 친분이 있던 환자를 통해 부인이 남긴 편지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수신인은 A씨의 누나였다. 전해 들은 내용은 이랬다.

"형님, 갑작스런 편지에 놀라셨죠? 꼭 해야 할 이야기가 있어서요. 사실 그이는 한센병 환자랍니다. 알려지면 혈육에게조차 버림받을까 봐 여태껏 말하지 못했네요. 이제라도 얘기를 털어놓는 건 제가 얼마 살지 못할 것 같아서입니다. 의사도 마음의 준비를 하라네요. 그런데 요즘 저 사람 건강이 눈에 띄게 안 좋아져서 걱정이에요. 다발성 근병증이란 병이 와서 수저조차 쥘 수 없는데, 혼자 두고 가려니 너무 걱정이 되네요. 그래서 형님께 부탁드려요. 제가 없더라도 저 사람 병 겁내지 마시고, 식사라도 챙겨먹을 수 있게 꼭 도와주세요. 그이 가족 중에서 가장 마음 따뜻한 형님께 드리는 제 마지막 부탁입니다."

편지에는 눈물이 번진 자국이 여러 곳 남아 있었다고 한다. 쓰면서 흘린 부인의 눈물, 그리고 그 위를 적신 누나의 눈물.

사실 누나는 동생이 한센병에 걸렸단 사실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고 한다. 무섭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동생을 버릴 수는 없었다. 동생이 결혼할 사람을 데려왔을 땐 덜컥 겁부터 났다. 사실이 드러나면 동생이 상대에게 버림받고 혼자 남게 될까 봐 평생 비밀로 간직했던 것이다. 그런데 올케가 그 비밀을 알고도 동생을 사랑했고, 비밀 때문에 혼자 끙끙 앓다 자신의 죽음이 임박해서야 시누이에게 그 사실을 털어놨다는 게 너무 미안하고 고마워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서로가 사랑해서, 걱정해서 말할 수 없는 비밀이었다. 서로의 진심은 같은 방향을 향해 있었지만 끝내 닿지 못한 채 슬픔에 젖은 편지만 남았다.

한센병은 완치 가능한 질병이다. 빨리 치료하면 후유장애도 없고, 전염도 되지 않는다. 유전도 아니다. 하지만 무지와 오해, 편견 때문에 한센병 환자들은 온갖 차별과 멸시를 받아야 했다. 얼마나 많은 한센병 환자와 가족들이 애끓는 삶을 살아왔던가. 한센병이 완치되어도 이 삶의 상처는 낫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에게 아픔을 주는 편견과 오해는 어떻게 보면 한센병보다 더 무서운 것이다.

차별 없는 하늘에서 A씨 부부가 영원히 행복하길 기원한다.

한국한센복지협회 연구원장

한국한센복지협회 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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