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과 바람이 키운 포도로 만든 교황의 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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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과 바람이 키운 포도로 만든 교황의 와인

입력
2021.05.22 09:40
수정
2021.05.22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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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토뇌프 뒤 파프

편집자주

와인만큼 역사와 문화가 깊이 깃든 술이 있을까요. 역사 속 와인, 와인 속 역사 이야기가 격주 토요일 <한국일보>에 찾아옵니다. 2018년 소펙사(Sopexaㆍ프랑스 농수산공사) 소믈리에대회 어드바이저 부문 우승자인 출판사 시대의창 김성실 대표가 씁니다.


바티칸 교황청.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 바티칸 시국 안에 있다. 바티칸 시국은 2015년 기준 1인당 와인 소비량 1위다. 게티이미지뱅크


퀴즈 하나. 세계에서 1인당 와인 소비량이 가장 많은 나라는?

놀랍게도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 바티칸시국이다. 바티칸은 교황청이 있는 자치국으로 교황을 비롯해 추기경과 대내외 교황청 직무를 맡은 성직자, 100여 명의 스위스 용병 근위대와 소수의 평신도가 그곳의 시민권자이다.


바티칸시국이 세계 와인 소비 1위 된 이유

도대체 얼마나 와인을 마시기에 가장 작은 나라가 수년간 1인당 와인 소비량 1위를 기록했을까. 성찬례용 와인만으로는 불가능하리라. 다만 바티칸이 면세 지역이라 하니 그 덕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하긴 예로부터 교회 있는 곳에 와인이 있었으니, 하물며 교황청이 있는 곳이야 말해 무엇할까.

교황청 소재지는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이었다가 14세기 말 현재의 바티칸 언덕으로 옮겼다. 그런데 14세기 초에 교황청이 지금의 프랑스 남부 아비뇽으로 옮겨 간 적이 있다. 바로 아비뇽 유수 시기다. 유수란 ‘잡아 가두다’라는 뜻으로 바빌론 유수에서 따온 표현이다. 1309년부터 1377년까지 68년 동안 7명의 교황이 아비뇽에 머물렀다.

교황청 이동은 권력의 축이 움직이는 크나큰 사건이다. 사회문화적이고 경제적인 여건 또한 덩달아 변할 수밖에 없음은 당연하다. 교황청은 성찬례 등 여러 행사에 사용할 와인이 필요하다. 어디 행사뿐인가. 교황은 물론 사제단을 포함한 교황청 사람들도 와인을 마셔야 할 게 아닌가. 갑자기 아비뇽에 자리잡은 교황청은 이 와인을 어떻게 조달했을까.

기록을 근거로 유추해 보자면, 당장 필요한 와인은 론강을 따라 북쪽에서 운반해 와 사용했을 것이다. 이미 갈로로만 시대 이전부터 론강 하류에 자리잡은 알로브로게스족이 그곳의 가파른 강가 언덕에 테라스형 포도밭을 조성해 와인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코트 로티와 에르미타주에 포도밭을 만들었다. 이 지역은 오늘날 북부 론에서 가장 유명한 와인 산지로 당시에는 시라와 비오니에의 조상 품종으로 추정되는 (몽되즈나 듀레자와 같은) 포도를 재배한 것으로 보인다. 로마의 시인 마르티알리스는 코트 로티 인근 도시인 비엔느를 두고 ‘비티페라 비엔나(와인의 도시 비엔느)’라고 칭했다고 한다.

아비뇽 교황청. 1309~1377년까지 7명의 교황이 이곳에 머물렀다. 이 시기를 아비뇽 유수라 한다. 게티이미지뱅크


지역구에서 전국구 와인으로 거듭난 '교황 와인'

그런데 아비뇽 교황청 1대 교황인 클레멘스 5세가 좋아하는 와인은 따로 있었다. 시토회 수도원에서 만든 본(부르고뉴) 와인이었다. 후임 교황들도 마찬가지였다. 교황청이 로마에 있었다면 꿈도 못 꾸었겠지만, 아비뇽에 왔으니 본 와인은 그야말로 ‘바람을 탄 연’처럼 훨훨 날았다. 사실 부르고뉴 지역은 깊숙한 내륙인 데다가 수로도 발달하지 않았다. 이 탓에 와인 맛이 좋았음에도 불구하고 로컬 와인에 머물렀다. 이런 와인을 당대 최고의 ‘셀럽’ 교황이 좋아하니 그 인기가 어땠을까. 곧 본 와인은 파리의 왕과 귀족들의 식탁에도 올랐다. 소위 ‘지역구’에서 ‘전국구’ 와인으로 거듭난 셈이다.

문제는 여전했다. 교황을 포함한 상층부 사람들은 값비싼 본 와인을 가져다 마신다지만, 교황을 따라온 사제단까지 그럴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론강 북쪽에서 와인을 계속 가져오는 것도 골치였다. 교황청은 이를 어떻게든 해결해야 했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아비뇽 유수 이전으로 다시 거슬러 가보자.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4세가 카노사성에서 교황에게 무릎을 꿇은 뒤 왕권은 추락하고 교황권은 치솟았다. 그런데 십자군 전쟁이 이를 뒤바꿔놓았다. 2세기 동안 지속한 이 전쟁으로 왕권이 크게 신장했다. 전쟁에 참전해 후사 없이 전사한 영주들의 땅을 몰수하여 왕실 직할지를 넓혔고 정복 전쟁을 벌여 영토를 확장한 덕분이었다. 십자군 전쟁에 가장 열성적으로 참여한 나라가 프랑스였기에 프랑스 왕권이 특히 더 강화되었다.

권력의 다른 한 축 교황권은 갈수록 추락했다. 실패한 십자군 전쟁을 애초에 제창한 장본인이 교황인 데다가 전쟁으로 문화와 문화가 교섭하면서 동방의 선진 문물과 사상을 사람들이 접했기 때문이다. 이 영향으로 사람들은 그리스도교 중심의 세계관에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또한 상업과 무역이 활발해지자 중산층 장인과 상인 계급이 생겼다. 이들은 ‘좁은’ 장원보다는 도시에 거주하면서 중앙집권화되어 힘이 강해진 왕의 보호를 받기 원했다.

이런 시대적 변화를 교황이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 프랑스의 왕 필리프 4세의 힘은 유럽 최강이 됐다. 그런데 그것도 빛 좋은 개살구였다. 잦은 전쟁을 벌인 탓에 필리프 4세는 전쟁 비용으로 진 빚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권력은 마치 시소 같은 것 아닌가. ‘사건’이 터지기에 좋은 조짐이었다.

필리프 4세는 교회에 과세하여 빚을 해결하고 전쟁 비용도 마련하려고 했다. 이 꼴을 보고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지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가 교회에 과세할 수 없다는 칙령을 발포하며 필리프 4세를 공개적으로 비난했다. 기가 찬 필리프 4세는 자국 물자의 국외 반출을 금하여 교황청으로 들어가는 돈줄을 끊어버렸다. 프랑스 최초로 삼부회(성직자, 귀족, 제3신분인 도시 평민 대표자로 구성된 신분제 의회)를 소집해 교회 과세를 만장일치로 통과시키기도 했다.

두 권력의 갈등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필리프 4세의 고문 기욤 드 노가레는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가 휴가차 머무르던 아나니를 습격해 그를 납치했다. 이 과정에서 노가레는 교황의 뺨을 때리는 등 교황을 거칠게 다루었다. 이를 알게 된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 교황은 3일 만에 풀려나 로마로 돌아갔다. 그러나 마음속 깊이 병을 얻어 곧 숨을 거두었다. 아나니 사건은 곧 교황권의 몰락을 뜻했다.

클레멘스 5세(재위 1305~1324)는 아비뇽에 머문 첫 번째 교황이다. 위키미디어

뒤를 이어 베네딕토 11세가 교황이 되었으나, 그 역시 1년도 안 되어 선종했다. 1305년 새 교황에 프랑스 출신 클레멘스 5세가 선출되었다. 그런데 그는 로마가 아닌 프랑스 리옹에서 즉위식을 치러야 했다. 필리프 4세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 탓이었다. 필리프 4세가 1309년 클레멘스 5세에게 로마 교황청으로 가지 말고 아비뇽으로 거처를 옮기라고 압박하자, 클레멘스 5세는 이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아비뇽유수가 시작된 것이다.


아비뇽유수, 교황권의 추락

교황권을 꺾어버린 필리프 4세는 두 번째 계획을 실행한다. 클레멘스 5세에게 ‘템플기사단(성전기사단)’을 해체하게끔 한 것이다. 성전기사단은 제1차 십자군 전쟁에서 십자군이 승리를 거두고 세운 예루살렘 왕국을 지키고 성지순례를 온 그리스도교도들을 보호하기 위해 프랑스 출신 기사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기사단이었다. 이들은 점점 막대한 부를 쌓으면서 금융업에도 손을 댔다. 필리프 4세도 이들에게 막대한 전쟁 비용을 빌렸다. 필리프 4세에게 압박받은 교황은 기사단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이들을 이단으로 몰았고 그들은 모두 처형됐다. 필리프 4세는 단박에 빚도 해결했고, 기사단 재산까지 압수해 절대왕정의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아비뇽유수 기간의 일곱 교황이 모두 프랑스 출신이었고, 추기경들 또한 대부분이 프랑스 출신이었다. 1377년에 이르러 아비뇽의 일곱 번째 교황 그레고리오 11세가 로마 교황청으로 돌아간 뒤에야 비로소 아비뇽유수가 끝난다.

하지만 뒤를 이어 이탈리아 출신 우르바노 6세가 교황이 됐다. 교황좌가 다시 아비뇽으로 돌아갈 것을 우려해 서둘러 선출했다고 한다. 이에 화가 난 친 프랑스파 추기경들은 클레멘스 7세를 ‘대립 교황’으로 세웠다. 로마와 아비뇽 두 곳에 교황이 따로 동시에 존재하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양측 추기경들이 제3의 교황을 선출했고, 결국 세 명의 교황이 존재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빚고 말았다. 이 시기를 가리켜 ‘교회의 대분열’이라 한다. 결국 1414년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세 명의 교황을 퇴진시키고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면서 수습됐지만 말이다.

다시 와인 이야기로 돌아가자. 아비뇽유수를 길게 설명한 데에는 아비뇽 교황청과 관련된 와인이 있기 때문이다. 아비뇽 1대 교황 클레멘스 5세는 자신은 본(부르고뉴) 와인을 마셨지만 교황청에 필요한 와인을 조달하기 위해 포도나무 묘목을 심게 했다고 전해진다. 사실 그는 와인 명산지 보르도 출신이다. 보르도 페삭레오냥 그랑크뤼클라세 와인에는 샤토 파프 클레망이라는 와인이 있다. 클레멘스 5세의 이름을 딴 것으로 그가 보르도 대주교 시절 소유한 포도밭에서 만든 와인이다. 아무튼 클레멘스 5세는 와인 조달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하고 선종했다.


요한 22세가 쌓은 '교황 와인' 역사

포도나무를 재배하고 와인을 양조해 발전시킨 교황은 2대 교황 요한 22세다. 그는 아비뇽에서 북쪽으로 약 11마일 떨어진 지금의 샤토뇌프 뒤 파프 마을에 교황의 여름 별장을 짓고는 그곳의 와인 산지로서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포도나무를 심어 와인을 만들게 했다. 그는 프랑스 남서부 카오르 출신이었다. 카오르는 4~5세기부터 대주교가 있었던 곳이라 와인 양조가 발전할 수 있었다. 이러한 내력을 보면, 요한 22세가 와인에 관한 관심과 조예가 깊은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요한 22세 덕분에 생산된 와인은 뱅 뒤 파프(Vins du Pape), 즉 교황의 와인으로 불렸다. 그러다가 훗날 교황의 새로운 성을 뜻하는 샤토뇌프 뒤 파프(CDP, Châteauneuf-du-Pape)라는 이름을 얻었다.

샤토뇌프 뒤 파프 와인에 사용할 수 있는 13가지(클론 포함 18까지) 품종들. 와인폴리 홈페이지 캡처

샤토뇌프 뒤 파프는 와인 이름이자 마을 이름이다. 이곳은 남부 론에 속하는 만큼 주품종은 GSM이라 불리는 그레나슈, 시라, 무르베드르 품종이다. 이 마을에서는 최대 13가지(클론 포함 18가지) 품종을 블렌딩해 와인을 빚을 수 있도록 허용한다. 생산자에 따라 단일 품종으로 빚기도 하고 GSM 품종 중심으로 또는 허용된 모든 품종을 블렌딩하기도 한다. 생산자와 빈티지에 따라 다른 개성을 지닌 특색 있는 와인이 빚어지는 이유이다.

프랑스 샤토뇌프 뒤 파프 마을 돌밭에서 자라고 있는 포도나무. 샤토뇌프뒤파프 홈페이지 캡처


교황 와인 마을 가보니

필자는 몇 해 전 샤토뇌프 뒤 파프 마을을 방문했다가 적잖이 놀랐다. ‘갈레’라는 돌덩이로 온통 뒤덮인 포도밭과 ‘미스트랄’이라는 강한 바람 때문이었다. 갈레는 배수가 좋을 뿐만 아니라 낮에 태양열을 머금었다가 밤이 되면 열기를 뿜어내 포도가 완숙하도록 돕는다. 최대 시속 100㎞로 부는 미스트랄은 온도를 조절해 포도의 과숙을 방지하고 습기를 날려 포도나무의 병충해를 예방한다.

마을에서는 그레나슈 품종을 가장 많이 재배하는데, 강한 바람 탓에 포도나무를 고블릿 잔 모양으로 낮게 키운다. 언뜻 보면 포도나무가 키 작은 지리산 고사목 같기도 했다. 돌과 바람, 이 덕분에 잘 익은 포도로 만든 이곳의 와인은 대부분이 장기숙성형(Vin de garde)으로 남부 론 와인 가운데 가장 고급이다. 1936년 프랑스 최초로 AOC를 받은 곳에도 속한다. 현재 생산되는 와인 중 레드가 93%, 화이트가 7%를 차지한다. 샤토뇌프 뒤 파프 와인병을 자세히 보면 교황을 상징하는 문장이 양각돼 있다.(“바람 부는 날이면 샤토뇌프 뒤 파프로 가야 한다” 칼럼 참조)

그나저나, 어차피 정치싸움이 되어버린 교황권 다툼을 해야 했다면, 차라리 와인 대결이나 한판 벌였다면 어땠을까.

시대의창 대표ㆍ와인 어드바이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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