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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첩을 동생에게 보낸 까닭은…' 조선 편지에 담긴 은밀한 감정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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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첩을 동생에게 보낸 까닭은…' 조선 편지에 담긴 은밀한 감정들

입력
2021.05.21 04:3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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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이가 혼인한 지 4년이 되었는데 아직 태기가 없습니다. 또 며느리가 심한 배앓이를 해서 귀여운 손자를 얻을 것이라는 온 집안의 희망이 이제는 끊겼습니다. (중략) 소문으로 듣건대 김안주에게 서녀가 있다던데 만일 그녀를 얻어서 아들을 낳게 된다면 반드시 절의 높은 가문의 전통을 이어가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영감께서 좋은 말로 한번 주선해주실 수 있을지요? 만일 이 일이 절박한 것이 아니라면 어찌 제가 감히 영감님께 이런 말씀을 드리겠습니까?

전라도 관찰사 원두표가 아들의 첩을 구하는 편지, 1640년

조선시대 사대부도 욕정을 느꼈을까? 한낮에 저지른 실수가 부끄러워서 이불을 걷어찼을까? 인사이동 소문에 앞날을 걱정하며 잠을 못 이뤘을까? 물론 그랬을 것이다. 형식에 얽매인 일상을 살았더라도 사람은 사람이다. 감정은 눌러지는 것이 아니어서 유교적 소양으로 숨겨봐야 허사다. 결국은 빈틈을 비집고 어딘가에 흔적을 남긴다.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고문헌을 연구해온 전경목 교수는 조선시대의 간찰(편지)에서 그 흔적을 찾았다. 부안김씨 우반종가가 소장한 간찰첩 4책과 낱장 655점은 16세기부터 500여 년 동안 주고받은 편지 꾸러미다. 지방과 서울 양반들의 생활상이 담겨있다. 청탁으로 점철된 수령의 일상부터 출신에 따른 관리들 사이의 차등과 편견, 드러내서는 안 되는 약자의 억울함, 아무도 피할 수 없던 기근과 돌림병에 대한 공포까지 온갖 이야기가 쏟아진다. 공문서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감정의 덩어리다.

원두표가 김홍원에게 보낸 간찰, 1640년 8월 10일. 부안김씨 우반종가 소장.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원두표가 김홍원에게 보낸 간찰, 1640년 8월 10일. 부안김씨 우반종가 소장.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놀랍도록 뜨거운 첩을 향한 욕망

편지에 나타난 사대부들은 솔직하고 비통하며 때로는 집요하다. 축첩을 향한 욕망이 어찌나 뜨거운지 놀라울 정도다. 원두표는 첩을 중매해 달라고 다른 지방의 양반에게 네 차례나 편지를 보냈다. 첫 편지에는 매화가 그려졌고 죽간 문양이 푸르게 인쇄됐다. 당대 상류층에서 유행하던 고급 인찰지를 써 가며 첩을 구한 이유가 뭘까. 편지에는 양반의 속사정이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첫 단서는 며느리가 앓는다는 배앓이다. 배앓이는 소화기 계통의 병이 아니라 부인병을 가리켰다. 시아버지가 부인과 질환을 입에 올리기 민망했기에 돌려 말한 것이다. 아들 부부는 성생활이 어려웠을지 모른다. 아들이 직접 첩을 찾는 것보다는 시아버지가 나서면 며느리의 반발도 적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원두표가 몸소 아들의 첩을 찾아 나선 이유였다.


"나이가 많아? 그럼 동생의 첩으로 달라"

편지는 세 차례 더 이어지는데 현대적 관점에서는 엉뚱한 일이 벌어진다. 원두표가 김안주의 서녀를 동생의 첩으로 삼자고 말을 바꾼 것이다. 서녀가 아들보다 열 살 연상이란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상대방은 원두표에게 가죽신과 말다래를 제작해달라고 청탁하고 실제로 받았다. 공적 재물을 사적 요구로 편취했으니 부정행위인데 당시에는 이렇게 편지를 주고받으며 요구와 물건을 교환하는 것이 관례였다.

중매가 이런저런 이유로 지체되자 이번엔 원두표의 동생이 직접 편지를 보내 채근한다. 손윗사람에게 보내는 그 편지는 형의 편지와 달리 또박또박 정자로 쓰였다. 글자를 고치며 고심한 흔적도 엿보인다. 이처럼 원씨 집안이 김안주의 서녀를 첩으로 들이려고 애쓴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왜 신랑감을 바꾸면서까지 첩을 들이려 했을까? 김안주는 궁벽한 시골 출신의 무과 급제자로 변방의 목사를 지낸 인물인데 말이다.


'옛 편지로 읽는 조선 사람의 감정'. 전경목 지음ㆍ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발행ㆍ424쪽ㆍ2만원

'옛 편지로 읽는 조선 사람의 감정'. 전경목 지음ㆍ한국학중앙연구원 출판부 발행ㆍ424쪽ㆍ2만원


축첩마저 명예 높이는 수단으로

옛 편지와 기록을 날실과 씨실로 역사를 직조해낸다. 원두표는 아버지와 함께 인조반정에 참여해 공신으로 책봉됐지만 문과에 급제하지 못한 유생 출신이었다. 편지를 쓸 당시엔 권문세족으로서 기반이 공고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김안주는 순절의 상징이었다. 1627년 후금의 군사가 쳐들어오자 안주성에서 적을 맞이해 싸웠다. 성의 함락이 임박하자 북문의 문루에 설치된 화약 포대 위에서 불을 당겨 병사 남이흥과 함께 순절했다. 이때 김안주의 둘째 아들 유성과 첩 김씨, 딸도 모두 죽었다. 조정은 그의 위패를 두 지역에 봉안하고 매년 봄가을로 제사를 지내도록 했다.

결국 축첩 소동은 가문의 명예를 단단히 다지려는 욕망에서 빚어진 셈이다. 김안주의 서녀를 첩으로 얻어서 아들을 낳는다면 그는 성장한 후 무과로 진출했을 것이다. 후금군과의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한 김안주의 외손이라면 출세는 맡아 놓은 것이나 다름없다. 원두표는 한 편지에서 이렇게 썼다. “반드시 이 여자를 얻고자 하는 것은 안주공의 절의를 사모하여 그의 후손 낳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디에 흔적을 남길까?

사대부들은 편지에 흔적을 남겼다. 욕망, 슬픔, 억울, 짜증, 공포, 불안, 뻔뻔함 이렇게 일곱 가지 감정이 편지 곳곳에서 흘러나온다. 여과 없이 분출되는 감정들을 추적하다 보면 감정은 삶의 현실과 끈끈하게 뒤엉킨다. 그 순간 수백 년 전의 그들과 우리가 맞닿아 있음을, 똑같은 인간임을 알아차린다. 우리는 어디에 흔적을 남기고 있을까?

1707년 사대부가 다른 양반에게 서울에 떠돌던 정치와 관련된 소문을 적어 보낸 소지. 읽고 불태우라는 내용이 쓰여 있다. 소지는 간찰(편지)과 함께 동봉하는 별지를 말한다. 우리말로는 쪽지인데 은밀하게 청탁하거나 비밀리에 건네는 이야기들을 여기에 기록하는 경우가 많았다. 부안김씨 우반종가 소장.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1707년 사대부가 다른 양반에게 서울에 떠돌던 정치와 관련된 소문을 적어 보낸 소지. 읽고 불태우라는 내용이 쓰여 있다. 소지는 간찰(편지)과 함께 동봉하는 별지를 말한다. 우리말로는 쪽지인데 은밀하게 청탁하거나 비밀리에 건네는 이야기들을 여기에 기록하는 경우가 많았다. 부안김씨 우반종가 소장.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김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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