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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장에 초대받지 못한 소리

입력
2021.05.19 04:30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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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허명현 클래식 평론가가 한국일보 객원기자로 활동합니다. 경기아트센터에서 근무 중인 그는 공연계 최전선에서 심층 클래식 뉴스를 전할 예정입니다. 오페라에서 가수가 대사를 노래하듯 풀어내는 '레치타티보'처럼, 율동감 넘치는 기사가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리사이틀에서 휴대폰 벨소리가 울리자 피아니스트 정명훈이 손으로 전화받는 시늉을 하며 멋쩍은 표정을 짓고 있다. 유튜브 화면 캡처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리사이틀에서 휴대폰 벨소리가 울리자 피아니스트 정명훈이 손으로 전화받는 시늉을 하며 멋쩍은 표정을 짓고 있다. 유튜브 화면 캡처

지난달 28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정명훈 피아노 리사이틀에서 웃지못할 일이 일어났다. 무대에서 정명훈이 다음 작품을 연주하기 직전 객석에서 스마트폰 고유의 알림음이 울렸다. 정명훈은 객석을 바라본 뒤 장난스럽게 피아노로 '그 문제의 소리'를 따라 연주했다. 객석은 웃음바다가 됐다. 자칫 언짢을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거장은 여유롭게 유머로 승화시켰다. 하지만 앙코르 연주 때도 알림음은 계속 울려댔고 관객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앙코르 곡이었던 슈만 '트로이메라이'에서는 알림음이 무려 6~7차례나 울리며 작품 몰입을 완전히 방해했기 때문이다. 공연은 좋았지만, 관객들은 찝찝한 마음으로 자리를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단 몇 초의 휴대폰 벨소리는 이렇게 위력적일 수 있다. 사실 공연장만큼 벨소리가 가장 우렁차게 울리는 공간도 없다. 클래식 공연장은 소리가 가장 효과적으로 들릴 수 있도록 설계돼 있기 때문이다. 기침 소리와 물건을 떨어트리는 소리도 공연장에서는 선명하고 길게 들린다. 코로나 시기에 어렵게 열린 공연들은 반갑지만, 휴대폰 벨소리는 여전히 불청객이다.

2013년 스웨덴 예테보리 콘서트홀에서 하이든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던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차하리아스가 객석의 휴대폰 벨소리에 연주를 중단한 채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다. 이날 공연은 최악의 벨소리 사고 중 하나로 꼽힌다. 유튜브 화면 캡처

2013년 스웨덴 예테보리 콘서트홀에서 하이든 피아노 협주곡을 연주하던 피아니스트 크리스티안 차하리아스가 객석의 휴대폰 벨소리에 연주를 중단한 채 망연자실하게 앉아 있다. 이날 공연은 최악의 벨소리 사고 중 하나로 꼽힌다. 유튜브 화면 캡처

관객이 휴대폰 벨소리로 피해 본 사건은 끊이지 않았다. 2011년 세계적 지휘자 리카르도 샤이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라이프치히 게반트 하우스 오케스트라가 내한했을 때 일은 대형사고의 대명사다. 브루크너 교향곡 8번의 느린 악장이 연주되던 순간 객석에서 우렁찬 벨소리가 들렸다. 벨소리는 1분 가까이 그치지 않았다. 2,000명 관객들은 명상적인 브루크너의 선율이 아니라, 어처구니없게도 벨소리를 들어야 했다. 공연이 끝나고 해당 오케스트라는 정식으로 항의했고, 국가 이미지는 한순간 추락했다.

또 유명한 대형사고는 2013년 정명훈과 서울시립교향악단의 말러 교향곡 9번 연주 때였다. 지휘자와 단원들이 엄청난 집중력으로 작품에 몰입하고 있을 때 버스커버스커의 가요 '벚꽃엔딩'이 오랫동안 울렸다. 당연히 단원들의 집중력도 흐트러졌다. 게다가 그날은 클래식 레이블 도이치 그라모폰에 발매할 음반을 녹음하는 공연이기도 했다. 지휘자와 단원들은 허탈함을 감출 수 없었다.

이렇듯 휴대폰 벨소리 문제는 공연 관람 방해 유형 중 가장 으뜸으로 꼽힌다. 관객들이 가장 많은 불만을 터트리는 유형이다. 어쿠스틱 악기 소리 속에서 이질적인 전자음은 음악에 찬물을 끼얹는다. 벨소리 문제를 근본적으로 막기 위한 방법은 전파 차단뿐이다. 일본의 대표 클래식 공연장 산토리홀은 1999년 전파차단기를 도입했다. 공연장 안에서 휴대전화가 울릴 일을 원천적으로 막았다. 국내에서도 산토리홀과 같은 방법을 시도하려 했지만, 관련 법규에 저촉돼 도입이 어려운 상황이다. 또 미국의 일부 공연장들은 벨소리가 울리면 당사자에게 벌금을 부과하는 방법을 도입하는 등 전 세계적으로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국내 공연장들도 손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인터미션 뒤에도 휴대폰 관련 안내방송을 다시 하기도 하고, 프로그램북 한쪽에 관람예절 문구를 삽입하며 경각심을 높이고 있다. 그럼에도 벨소리 문제는 근절되지 않고 있다. 조심하는 사람은 매번 조심하지만 부주의한 이는 매번 무심하기 때문이다. 벨소리가 울리지 않는 공연이 드물 지경이고 안내방송은 점차 무감각해진다.

공연장이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면 근본대책은 결국 의식과 배려 의지로 귀결된다. 공연의 완성도는 연주자뿐만 아니라 관객 모두가 함께 책임진다. 책임이라는 단어가 무겁지만 관객들이 할 일은 간단하다. 공연 시작 전 단지 휴대폰을 끄는 것이다.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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