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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기가 산소통으로 둔갑"... '총체적 난국' 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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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기가 산소통으로 둔갑"... '총체적 난국' 인도

입력
2021.05.18 05:30
수정
2021.05.18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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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제, 장례 비용 10배 이상 치솟아
'가짜' 제품마저 횡행, 목숨까지 위협
국제단체의 인도 NGO지원 제한법도

8일 인도 뉴델리에서 시민들이 산소통에 산소를 채우기 위해 길게 줄지어 서 있다. 뉴델리=AP 연합뉴스

8일 인도 뉴델리에서 시민들이 산소통에 산소를 채우기 위해 길게 줄지어 서 있다. 뉴델리=AP 연합뉴스

그야말로 총체적 난국이다. 감염병 확산에 신음하고 있는 인도에서 절박함을 악용한 각종 사기까지 횡행하고 있다. 정부의 헛발질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도와주겠다는 나라가 늘고 있으나 부실한 법 탓에 자금 확보가 쉽지 않은 형편이다. 이기주의와 무능이란 민관의 허점이 맞물린 사이 애꿎은 죽음은 계속 늘고 있다.

치료제 가격 치솟고 사기까지 기승

16일(현지시간)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인도 곳곳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환자와 희생자 가족의 애타는 마음을 이용한 사기와 폭리가 판치고 있다. 당장 치료제와 의료용 산소통 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최근 주요 도시에서는 65달러 수준이던 코로나19 치료제 램데시비르 가격이 400달러까지 치솟기도 했다. 토실리주맙, 파비플로 등의 치료제 가격도 10배 이상 올랐고, 의료용 산소통 역시 정상가(50ℓ당 80달러)의 8~17배에 거래되고 있다고 영국 BBC방송은 전했다.

화장장이 절대 부족해지자 장례 비용 역시 고공행진 중이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수도 뉴델리에 사는 로히트 슈클라는 지난달 말 코로나19로 숨진 할머니의 시신을 4.8㎞ 떨어진 화장장으로 옮기고, 화장에 쓸 나무를 사는 데 각각 70달러를 썼다. 몇 달 전만 해도 다 합쳐 14달러면 충분했다.

그나마 가격만 올리는 건 애교에 가깝다. 목숨을 위협하는 ‘가짜’ 제품이 널려 있다. 서부 구자라트주(州) 경찰이 얼마 전 급습한 공장에선 포도당과 물, 소금으로 만든 가짜 램데시비르 약병이 3,300여개나 나왔다. 산소통도 어김없이 사기 표적이 됐다. 이달 초 뉴델리 경찰은 소화기를 산소통으로 속여 팔아 치운 일당을 체포했다. 경찰이 작업장에 들이닥쳤을 때 사기범들은 산소통으로 위장하기 위해 빨간색 소화기 겉면을 검은색으로 덧칠하는 중이었다. 이렇게 위조된 4.5ℓ짜리 산소통은 75~177달러를 받고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13일 인도 벵갈루루 외곽의 한 화장장에서 한 시민이 화장 전 마지막 장례 의식을 치르고 있다. 벵갈루루=로이터 연합뉴스

13일 인도 벵갈루루 외곽의 한 화장장에서 한 시민이 화장 전 마지막 장례 의식을 치르고 있다. 벵갈루루=로이터 연합뉴스

북부 우타르프라데시주에서는 이미 사용한 수의를 훔쳐 새 것처럼 속여 판매한 일당이 적발됐다. 뉴델리와 우타르프라데시 경찰이 지난 한 달간 코로나19 관련 사기, 사재기 혐의로 체포한 사람은 각각 210명, 160명에 달한다. 비크람 싱 우타르프라데시 전 경찰청장은 “경찰 생활 36년동안 온갖 악행을 봤지만, 지금 같은 수준의 약탈과 타락은 보지 못했다”고 혀를 내둘렀다.

붕괴된 의료시스템은 범죄가 활개칠 자양분을 제공했다. 시민들이 더 이상 병원이란 공공 자원에 기대기 힘든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리자 범죄자들은 이 틈을 파고들었다. 암시장에서 산 가짜 램데시비르 때문에 아내를 잃은 한 남성은 “자신의 배를 불리려 타인의 어려움을 악용하는, 도덕적 위기에 처했다”고 낙담했다.

3일 인도 뭄바이에 위치한 백신접종 센터에서 한 관계자가 시민들에게 접종 중단을 알리고 있다. 벽에도 백신이 부족해 문을 닫는다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뭄바이=로이터 연합뉴스

3일 인도 뭄바이에 위치한 백신접종 센터에서 한 관계자가 시민들에게 접종 중단을 알리고 있다. 벽에도 백신이 부족해 문을 닫는다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뭄바이=로이터 연합뉴스


원조 문턱 높인 정부 탓 구호도 어려워

정부마저 방해꾼으로 전락했다. 국제사회가 너도나도 인도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지만, 부실한 법이 원조를 가로막고 있다. 인도 정부가 지난해 9월 통과시킨 ‘외국인 기여 규제법’ 개정안이 주범이다. 해당 법률은 국제 자선단체가 인도 비정부기구(NGO)를 지원하는 행위를 제한한다. NGO가 외국 자금을 받으려 해도 공증과 국영은행 계좌 개설 등 까다로운 절차를 거치도록 했다. 구호 문턱을 잔뜩 높여 놓다 보니 최악의 재난에 직면하면 자금 수혈이 막힐 수밖에 없다.

실제 미 비영리단체 ‘아메리칸인도재단’은 5일 코로나19 환자용 병원 침대 2,500개를 제공할 목적으로 인도 계열사에 300만달러를 송금했지만 일주일이 지나도록 전달되지 않았다. 지난해 인도 NGO 자금 4분의 1(22억달러)이 외국인 기부자들로부터 나온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사정은 더 나빠질 게 뻔하다. NYT는 “인도의 법은 대외 원조가 코로나19 환자들에게 도달하는 것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며 “자선단체로 간 국제 자금을 정부가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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