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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갭파크의 수호천사"

입력
2021.05.13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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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3 돈-모야 리치 부부 이야기

돈 리치(위)와 갭파크 전경. AP사진, 위키피디아 사진.

돈 리치(위)와 갭파크 전경. AP사진, 위키피디아 사진.

호주 시드니항을 품은 남쪽 반도의 끄트머리가 왓슨스(Watsons)만이고, 1㎞ 남쪽 해안 절벽을 따라 펼쳐진 절경의 공간이 갭파크(Gap Park)다. 1m 남짓 되는 담장 너머에서 땅이 끝나고, 그 아래로는 너무 아득하고 광막해서 공간감조차 사라지는 바다가 펼쳐져 있다. 그곳이 19세기 이래 투신 자살자들이 줄을 이었다는 악명 높은 장소다. 도널드(애칭 돈, 1926.6.9~2012.5.13)와 모야 리치(Moya Ritchie) 부부가 문제의 벼랑을 치보는 자리에 집을 짓고 산 건 1960년대 무렵부터였다.

언젠가부터 아침에 일어나면 잠자리를 정돈한 뒤 침실 창문으로 벼랑을 훑어보는 게 돈의 일과가 됐다. 누가 혼자 벼랑 끝에 서 있는 게 보이면 그는 곧장 현장으로 향하곤 했다. 그는 대수롭지 않은 어조로 인사를 건넨 뒤 '우리집에 가서 차 한 잔 나누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고 한다. 뭐 하는 사람이냐, 왜 그러느냐 따위의 질문은 일절, 적어도 그가 먼저 꺼내는 법은 없었다. 때로는 아내 모야가 손님과 마주 앉기도 했다.

묵묵히 고개 끄덕여주는 이와 함께 더운 차 한 잔을 마시는 동안 사람들은 힘을 얻어 고맙다는 인사를 남기고 떠나곤 했고, 더러는 감사 편지와 선물을 보내 왔고, 이따금 친구처럼 들르는 이들도 생겨났다. 돈이 너무 늦게 현장에 도착해 남겨진 지갑이나 신발만 보게 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목숨을 구한 이들은 그를 '갭의 수호천사 Guardian Angel of The Gap'라 불렀고, 호주 정부는 2006년 돈에게 훈장(Order of Australia)을 수여했다. 당시 정부가 '공식' 집계한 구조 인원은 45년간 약 160명이었지만, 가족 등 지인들은 최소 500명은 되리라 추정했다. 2차대전 해군으로 복무했고, 전후 보험 판매원으로 일하며 아내와 세 딸을 키운 돈은 2010년 AP 인터뷰에서 "생의 마지막 벼랑에 선 이들에게 새 삶을 판매하는 일만큼 멋진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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