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최초 여성 서양화가 나혜석의 '화녕전작약'?
이중섭 스승 백남순의 '낙원' 등도 전시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 '이건희 컬렉션' 작품들을 8월부터 대거 볼 수 있게 됐다. 여기에는 1970년대 등장했다 자취를 감춰 행방이 묘연했던 국민화가 이중섭의 '흰 소'(1953~54), 존재만 알려져 있던 청전 이상범의 '무릉도원도'(1922) 등 희귀작이 다수 포함돼 있어 눈길을 끈다.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유족으로부터 1,488점을 기증받은 국립현대미술관은 7일 이 같은 내용의 이건희 컬렉션 세부 전시 계획을 공개했다. 우선 정물화의 대가인 도상봉의 회화 3점과 이중섭의 은지화(은박이나 은빛 나는 재료를 입힌 종이에 그린 그림) 1점 등 일부 작품을 7월 덕수궁관에서 열리는 ‘한국미, 어제와 오늘’ 전시에서 가장 먼저 볼 수 있다.
8월에는 서울관에서 ‘이건희 컬렉션 1부: 근대명품(가제)’ 전시를 통해 한국 근현대 작품 40여 점을 만나볼 수 있다. 눈에 띄는 작품은 가로 2m 81㎝, 세로 5m 68㎝에 달하는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 그가 1950년대에 주문자의 의뢰로 제작한 벽화 크기의 대작이다. 항아리, 새, 꽃 등 김환기가 즐겨 사용한 소재가 한 화면에 드러난 것이 특징이다.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 관장은 “한국 근대 대표작가인 김환기의 최대 규모 작품으로 알려진 그림이며, 구상화(실재하거나 상상할 수 있는 사물을 그대로 나타낸 그림)이기 때문에 각별히 눈길이 간다”고 설명했다.
이중섭의 ‘황소’도 미술관 관계자들의 감탄을 자아낸 작품 중 하나다. 붉은 바탕에 큰 눈을 가진 황소 얼굴이 그려진 이 작품은, 이중섭이 한국전쟁이 끝나갈 무렵 그림을 팔아 일본에 있는 가족을 만날 수 있을 거란 희망을 품고 그린 것이다. 김준기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장은 “삼성 측에서 전시를 할 때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언급했을 만큼, 삼성가가 아끼던 작품 중 하나”라며 해당 작품의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특히 이중섭의 '흰 소'는 현존하는 작품이 5점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진 희귀작이다. 이중섭은 자신의 정체성을 소에 빗대 표현하곤 했는데, 흰색은 일제강점기 조선인의 색으로 인식돼 흰 소가 가지는 상징성은 매우 크다.
이 밖에도 귀한 작품을 여럿 볼 수 있게 됐다. 이중섭의 스승인 백남순의 '낙원'이 그중 하나. 한국의 무릉도원 전통과 서양의 낙원 개념이 절묘하게 결합된 독창적인 이 작품은 1930년대 백남순 작품으로는 유일하다. 일제강점기 1세대 유화가이자 첫 여성 서양화가인 나혜석의 '화녕전작약'도 있다. 나혜석의 작품은 진위가 확실한 것 중 현존하는 작품이 극소수여서 희귀성이 있다. 29세에 요절한 김종태의 '사내아이'(1929)도 의미가 있다. 현존하는 그의 작품은 총 4점인데, 이번 기증으로 미술관은 김종태의 작품 3점을 소장하게 됐다. 김종태는 독학으로 서양화를 공부해 최초로 조선미술전람회 서양화부 추천작가가 된 인물이다.
존재만 알려져 있던 작품인 이상범의 '무릉도원도'도 100년 만에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이 그림은 근대 서화의 거장 안중식의 '도원문진도'의 전통을 잇는다고 할 만한 과감하고 아름다운 색채와 구성을 지닌 것이 특징이다.
11월에는 이건희 컬렉션 중 박수근 작품을 덕수궁관에서 감상할 수 있다. 원래 계획돼 있던 박수근 전시에 기증품이 더해져 전시가 더욱 풍성해질 전망이다. 이번에 기증된 박수근의 작품은 회화 18점, 드로잉 15점 등 총 33점이다.
연말인 12월에는 ‘이건희 컬렉션: 해외거장(가제)’이 열린다. 클로드 모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카미유 피사로, 폴 고갱, 마르크 샤갈, 살바도르 달리, 파블로 피카소 등 해외 거장 7명의 작품이 공개된다. 이 중에는 피카소의 도자기 110여 점도 포함돼 있다.
내년 초에는 이중섭 작품을 대거 볼 수 있다. 미술관은 내년 3월 서울관에서 이중섭의 회화, 드로잉, 엽서화 등 104점을 선보이는 ‘이건희 컬렉션 3부: 이중섭 특별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