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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제색도부터 김환기 최대 작품까지…베일 벗은 '이건희 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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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왕제색도부터 김환기 최대 작품까지…베일 벗은 '이건희 컬렉션'

입력
2021.04.28 16:54
수정
2021.04.28 18:04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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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가 그린 가장 큰 작품부터?
정선 인왕제색도, 이중섭 황소 등 2만 3000점 기증

삼성 유족이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할 고(故) 이건희 회장 소유 미술품 중 하나인 김환기 화백의 '여인들과 항아리'. 이 작품은 김 화백이 1950년대 그린 것으로, 그의 그림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삼성 유족이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할 고(故) 이건희 회장 소유 미술품 중 하나인 김환기 화백의 '여인들과 항아리'. 이 작품은 김 화백이 1950년대 그린 것으로, 그의 그림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유족들이 국립기관 등에 기증하기로 한 이 회장 소유 미술품은 2만3,000여 점에 달한다. 국보 등 지정문화재가 다수 포함된 고미술품과 세계적 서양화 작품, 국내 유명 작가 미술품 등이 포함됐다. 이처럼 대규모 미술품이 국가에 기증되는 일은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문 일이다. 특히 문화예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가치가 높은 것들이 대거 포함돼, 미술계에선 "큰 선물을 받았다"며 탄성이 이어지고 있다.

우선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되는 목록을 보면, 국보인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보물인 고려 불화 ‘천수관음보살도’, 단원 김홍도의 '추성부도' 등 국가지정문화재가 60건이나 된다. 정선의 대표작인 인왕제색도는 비 온 뒤 구름이 걷혀 가는 인왕산을 그린 것인데, 삼성가에서도 애착을 가져온 작품으로 알려졌다. 조선 영조 27년(1751년)에 그려진 이 그림은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를 대표하는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미술사학자)는 “인왕제색도는 지금도 존재하는 인왕산을 보며 세월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이건희 컬렉션'에서 우리 것의 아름다움을 찾으려고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고 말했다.

'추성부도'는 중국 송나라 문필가인 구양수(1007∼1072)가 지은 '추성부'(秋聲賦)를 단원이 그림으로 표현한 시의도(詩意圖)다. 가을밤에 책을 읽다 가을이 오는 소리를 듣고 인생의 무상함을 탄식하며 자연의 영속성과 인간 삶의 덧없음을 노래한 시로, 화면 왼쪽에 추성부 전문을 단아한 행서(行書)로 썼다. 김홍도가 죽기 직전에 그린 마지막 작품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국립현대미술관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근대 미술품과 세계적 거장들의 대표작이 기증될 예정이다. 한국 현대미술의 거목인 김환기의 ‘여인들과 항아리’는 작가가 그린 그림 중 가장 큰 사이즈의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가로만 6m에 달하는 거작이다. 미술계의 한 인사는 "작가의 역량을 볼 수 있는 작품”이라며 “백자 등 김환기의 1950년대 작품의 여러 그림에 나타난 요소를 하나의 화면에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미술계 인사도 "가격을 매길 수 없을 정도로 퀄리티나 규모 면에서 훌륭한 작품"이라고 덧붙였다.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1954)'.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1954)'.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박수근의 ‘절구질하는 여인’, 이중섭의 ‘황소’ 등도 포함돼 있다. 이주은 교수는 “박수근과 이중섭은 1950년대 전쟁통의 정서를 잘 담아내고 있는 작가들”이라며 “특히 얼굴 부분이 강조된 이중섭의 황소 작품의 경우 촉촉해서 슬퍼 보이는 눈망울이 우리 역사가 지닌 슬픔을 떠올리게 하는 의미 있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이건희 컬렉션에는) 우리 민족에게 친근한 이미지가 많다"고 덧붙였다.

1950년대 이중섭의 '황소'.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1950년대 이중섭의 '황소'.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끌로드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끌로드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서양 근대 대가들의 최고 수준의 명작 8건도 기증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인상파의 대표적 화가인 끌로드 모네의 ‘수련이 있는 연못’, 초현실주의 살바도르 달리의 '켄타우로스 가족'를 비롯해 호안 미로, 마르크 샤갈, 파블로 피카소, 오귀스트 르누아르, 폴 고갱, 카미유 피사로 등의 작품이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된다. 조은정 고려대 디자인조형학부 초빙교수(미술평론가)는 “국립현대미술관에 르누아르, 피사로, 모네의 작품이 한 점도 없었는데, 이번 기회에 기본 컬렉션의 구색을 갖추게 됐다”며 “연구와 전시가 활성화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이건희 컬렉션'의 일부는 지방에 있는 미술관들과 작가 이름을 건 일부 미술관에도 들어간다. 미술품 기증의 수혜를 입은 곳은 광주시립미술관, 전남도립미술관, 대구미술관, 이중섭미술관, 박수근미술관 등이다. 예컨대 전남도립미술관은 전남 출신의 한국 미술의 거장인 김환기, 천경자, 오지호의 중요 작품을 기증받는다. 화면을 가로지르는 십자구도의 작품인 김환기의 ‘무제’, 천경자의 ‘꽃과 나비’, ‘만선’, 오지호의 ‘풍경’ 등이다. 전남도립미술관은 “이들은 전남 지역 대표 작가이기도 하지만 한국 근현대미술사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작가들”이라며 “미술관의 소장품 컬렉션을 기반으로 한 전시와 연구가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문화계는 유족 측의 대규모 미술품 기증 결정을 뜻깊게 평가했다. 서진수 강남대 경제학과 교수(미술시장연구소 소장)는 “사재에서 공공재로 바뀌면서 미술품에 대한 일반 국민의 접근성이 높아졌다”며 “좋은 본보기가 나온 만큼, 작품 기부 물결이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채지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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