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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같은 거, 아무도 안 봐요"

입력
2021.04.2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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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류진 '미라와 라라'(에픽3호)

편집자주

단편소설은 한국 문학의 최전선입니다. 하지만 책으로 묶여나오기 전까지 널리 읽히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국일보는 '이 단편소설 아시나요?(이단아)' 코너를 통해 매주 한 편씩, 흥미로운 단편소설을 소개해드립니다.

게티이미지뱅크

부끄럽지만 고백하자면, 사설 소설 창작 아카데미에 다닌 적이 있다. 소설을 쓰고 싶으면서도 그걸 솔직하게 말하는 건 어쩐지 멋쩍어서 주변에는 비밀로 했다. 눈곱만큼의 재능도 없으면서 무슨 소설을 쓴다는 거냐며 면박을 당하진 않을까, 위축된 어깨를 하고 찾아간 그 수업에는 나와 비슷한 얼굴의 사람들이 있었다. 성공한 사장님과 취업준비생, 은퇴한 교사와 어린 자녀를 둔 주부, 그리고 나. 전혀 다른 삶을 살았지만 소설을 쓰고 싶다는 같은 열망으로 같은 얼굴이 된 사람들이었다.

에픽 3호에 실린 장류진의 단편소설 ‘미라와 라라’에 등장하는 ‘미라 언니’를 보면서 그때 그 수업을 같이 들었던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떠올렸다. 아무도 시킨 적 없고 어쩌면 말릴지도 모르는 일을, 빛을 볼 가능성이 극히 적고 빛을 보기까지 얼마나 걸리는지도 모르는 그 일을 계속하는 사람들의 열중한 얼굴을 떠올렸다.

소설 속 미라 언니는 소설을 쓰겠다며 한 대학의 국문과에 재입학한 인물이다. 회사에서는 점심시간을 아껴 소설을 쓰고, 법인카드로 소설책을 사 보던 '박미라 과장'은 결국 회사를 관두고 수능을 다시 봐서 삼십 대 중반의 나이에 국문과에 들어온다. 언젠가 등단하면 쓰겠다고 '라라'라는 필명까지 지어둔 상태다.

소설가 장류진. 작가 제공 ⓒ임효정

그러나 지어둔 필명이 무색하게도, 미라 언니는 소설을 못 썼다. 그냥 못 쓰는 수준이 아니라 “정말이지 참혹할 정도로 형편없었”다. 그런 미라 언니를 두고 교내 소설창작회 사람들은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사람이. 자기 객관화가 안 되나 봐"라며 동정하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여름방학에 그리스 크레타섬으로 창작 여행을 떠났던 미라 언니가 중편소설 한 편을 완성해 돌아온다. 그간 미라 언니의 재능 없음을 연민하고 비웃던 사람들의 입을 다물어지게 만드는, 첫 페이지부터 읽는 사람을 사로잡는 소설이다. 합평회의 선생님은 미라 언니에게 처음으로 칭찬을 해주며 이 작품을 공모전에 투고할 것을 제안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미라 언니는 공모전에 당선되지 못한다. 이 소설이 너무나 잘 쓰고 싶었던 미라 언니의 거짓말에서 탄생한 작품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기 때문이다. 미라 언니는 다시는 소설을 쓸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죽고 싶다고 털어놓고, 그런 언니를 보며 동기는 자조적으로 말한다. “소설 같은 거, 아무도 안 봐요(…) 어차피 우리밖에 안 봐요. 여기서 한 발짝만 나가면, 아무도 소설 따위 관심 없다고요(…) 전부 다...아무것도 아니란 말이에요.” 미라 언니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래도 나한테는 이게 제일 귀하고 중요해.”

미라 언니만큼 그게 귀하고 중요하지 않았던 탓일까? 나는 결국 소설가가 되진 못했다. 그때 그 수업을 같이 들었던 수강생 중 소설가가 됐다는 사람의 소식도 아직 듣지 못했다. 그래도 잊지 않고 있다. 아무도 안 보고 십중팔구 무용한 일이 분명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만두지 못하던 사람들의 얼굴을. 그리고 기다리고 있다. 언젠가 그들이 짠 하고 세상에 내놓을, 모두가 홀딱 빠져들고 말 그런 소설을.

한소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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