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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영 "김학의 사건, 진영 논리에 갇혀 정치적 활용 안돼"

입력
2021.04.27 04:30
수정
2021.04.30 19:12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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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가 직접 쓰는 윤중천·김학의 백서]
<7> 반성 : 성찰 없던 활동
재심 변호사 박준영 '김학의 보고서' 공개
과거사조사단, 의혹 해소·진상규명?미흡
"피해자 배려 못잖게 과잉처벌 금지 중요"
"윤석열 전혀 몰라… 팩트 알리고 싶었다"
"나처럼 전문성 없는 사람 활동 자제해야"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접대 사건 관련 대검찰청 진상조사단 보고서를 한국일보에 공개한 박준영 변호사가 23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접대 사건 관련 대검찰청 진상조사단 보고서를 한국일보에 공개한 박준영 변호사가 23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해남 땅끝마을 바로 옆, 전남 완도에서 태어난 박준영(47) 변호사는 '재심 전문 변호사'다. 영화 '재심'의 실제 모델이기도 한 그는 '약촌오거리 사건' '삼례 나라슈퍼 사건' 등 과거 검찰과 경찰 수사과정에서 억울한 누명을 쓴 피해자들을 대변해온 인물이다.

재심 전문 변호사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접대 사건이 정치적으로 이용됐다"며 공론화에 나섰을 때 우려가 제기된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성범죄자 김학의 비호하는 변호사" "검찰 편드는 법조인" "윤석열 도우미" 등의 비아냥부터, '변절자' '배신자'로 낙인찍는 여권 지지자들의 비난도 이어졌다.

곱지 않은 시선에도 박 변호사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던 이유는 "법 집행은 공정해야 한다"는 신념 때문이다. 그것은 법조인으로 그가 첫걸음을 뗐을 때 마음에 새겼던 원칙이었다.

한국일보 특별취재팀은 박 변호사로부터 입수한 1,249쪽 분량의 대검찰청 검찰과거사 진상조사단 최종 결과보고서와 윤중천·박관천 면담 보고서를 토대로,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김학의 사건의 이면을 지난 19일부터 7회에 걸쳐 보도했다.

지난 23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박 변호사를 만나 보고서를 공개하게 된 속사정에 대해 들어봤다. 그는 2018년 11월부터 2019년 3월까지 '김학의 사건' 재조사를 담당한 진상조사단 8팀에서 활동했다.

"불편할 수 있지만 팩트 알리고 싶었다"

박준영 변호사는 최근 한 달 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잤다며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홍인기 기자

박준영 변호사는 최근 한 달 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잤다며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홍인기 기자

-한국일보 보도 이후 주변 반응은 어떤가. 함께 활동했던 대검 진상조사단 구성원이나 (심의·의결기관인) 법무부 과거사위원회 위원들에게 항의 전화 받지 않았나.

"최근 스트레스 때문에 없던 머리숱이 더 줄었다. 연락 오면 난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했다. 하지만 보도 내용이 불편할 수는 있겠지만 객관적인 내부 자료를 토대로 한 팩트였다. 잘못된 내용이라면 적극적으로 반박하지 않았겠나. 실제로 항의 전화는 오지 않았다. 당분간 밖에 안 나가고 숨어지내려고 한다."

-내부 자료를 공개하면서까지 공론화에 나선 계기는 무엇인가.

"형사처벌은 자신이 저지른 죄에 맞게 받아야 한다. 과잉처벌과 과잉비난은 벌 받아야 할 사람이 반성은커녕 반발하게 만든다. 아무리 비난 가능성이 큰 사람이라도 엄격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김학의 전 차관이 공직자로서 해서는 안 될 일을 했다는 걸 부정하는 게 아니다."

-그래도 피해자 입장도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닌가.

"피해자는 피해자대로 그들을 배려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다만 김학의 전 차관과 가족들에 가해지는 도를 넘는 비난은 자제돼야 한다. 이건 피해자 배려와 상충되는 주장이 아니다. 가해자를 옹호하자는 주장은 더더욱 아니다. 발전적 논의를 하자는 취지다."

-그럼 수많은 사건 중에서 왜 '김학의 사건'이 공론화 대상이 됐나.

"국민적 관심사가 워낙 컸고 현재까지도 이슈가 되는 사건이라 이 시점에서 제대로 정리하는 게 우리 사회를 위해 꼭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무엇보다 내가 직접 경험해서 세부적 내용을 알고 있었고, 공론화가 가능할 정도로 풍부한 공적 자료가 남아 있었다."

-이 시점에서 정리가 꼭 필요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김학의 전 차관 사건은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활용된 측면이 있다. 특히 여권에선 김학의 사건으로 사법시스템을 바꾸는 개혁을 이야기했다. 김 전 차관 사건 때문에 검찰개혁을 한다는데, 정작 정확한 사건의 내용과 문제점은 드러나지 않았다. 김학의 사건의 배경, 이면에 숨겨진 사실, 복잡한 이해관계, 사건을 활용하려는 불순한 의도 등을 알게 된다면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벌어질 여러 사건들이 정치적으로 활용되는 것을 막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필요한 최고의 정의는 "열린 사고"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접대 사건 관련 대검찰청 진상조사단 보고서를 한국일보에 공개한 박준영 변호사가 23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접대 사건 관련 대검찰청 진상조사단 보고서를 한국일보에 공개한 박준영 변호사가 23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과거사 조사의 전반적인 문제는 무엇이었나.

"법무부 산하 과거사위원회와 대검찰청 산하의 과거사 진상조사단의 손발이 맞지 않았다. 법이 아닌 훈령으로 급하게 과거사 조사를 진행해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총선을 앞두고 빨리 성과를 내고 싶어하는 정권의 조급함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과거사위와 조사단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며 양측의 골이 깊어졌다."

-김학의 사건 조사에도 문제가 많았나.

“진상조사단은 위원회가 선정한 사건의 기록 검토와 조사를 맡는데, 김학의 사건의 경우 재수사를 위한 수사권고에만 ‘올인’하다 보니, 정작 조사 목적인 국민적 의혹 해소와 진상 규명은 소홀히한 측면이 있었다.”

-당신은 조사단의 문제를 지적할 자격이 있다고 보나.

“그렇게 물으면 솔직히 부끄럽고 창피하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형사사건 전문 변호사라고 생각하는데 배임·횡령·뇌물 등 화이트칼라 범죄를 다뤄본 경험은 부족하다. 조사단원으로 활동하면서 경험과 역량 부족으로 어려움이 많았다. 난이도 높은 검찰권 남용 사건을 분석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제안을 고사했을 것이다. 각종 위원회에 전문가로 불리는 외부위원이 참여하는 경우가 많은데, 자신이 일할 자격이나 능력이 되는지 냉철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

-활동하면서 다른 문제는 없었나.

"과거사위에서 선정한 사건 중 '삼례 나라슈퍼 사건' '약촌오거리 사건' '낙동강변 살인사건'은 내가 변호했거나 변호하고 있던 사건이었다. 진상조사단에서 해당 사건들을 내가 조사하지 않는다고 해도, 핵심 이해관계자가 조사단에 들어간 것 자체가 객관성과 공정성을 해치는 일이었다. 깊이 반성한다."

-과거사 조사가 정권 입맛에 따라 악용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과거사 조사엔 현재의 시각이 과도하게 들어갈 수밖에 없다. 때로는 조사단원의 정치 성향과 개인적 관점이 개입될 수 있다. 이런 조사가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근본적 고민이 필요하다. 그래서 조사결과 발표 후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청취하는 제도가 필요하다. 제주 4·3사건의 경우 진상규명위원회 결과 발표 6개월 전부터 이의제기를 받는 절차가 있었다."

-검찰이 과잉수사를 했던 사건으론 조국 전 장관 사건도 거론된다. 왜 김학의 사건만 공론화하고 조국 사건에 대해선 목소리를 내지 않았나.

"김학의 사건의 경우 내가 진상조사단에서 활동하며 경험한 사건을 이야기한 거다. 조국 전 장관 사건에 대해선 내부 정보도 모르고 사건의 내막도 알지 못한다. 모르는 내용을 함부로 이야기하면 안 된다. 내가 아는 내용이고 비판할 지점이 있었다면, 조국 사건도 공론화했을 것이다."

-재심과 과거사 사건을 많이 다뤘기 때문에 정의에 대한 개념도 생겼을 것 같다. 당신이 생각하는 정의란 무엇인가.

"정의는 고정된 게 아니라, 시대나 상황에 따라 요구되는 정의가 다르다고 본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가장 필요한 정의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판단, 진영 논리나 문맥에 갇히지 않는 열린 사고라고 생각한다. 책임 있는 자리에서 정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스스로 먼저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정치적 의도 없다... 윤석열? 연락처도 몰라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접대 사건 관련 대검찰청 진상조사단 보고서를 한국일보에 공개한 박준영 변호사가 23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접대 사건 관련 대검찰청 진상조사단 보고서를 한국일보에 공개한 박준영 변호사가 23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홍인기 기자


-성폭력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편향됐다는 지적이 있다.

“형사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건 증거재판주의다. 성범죄도 마찬가지다. 유·불리를 떠나 객관적 사실관계를 토대로 이야기할 때 합리적 대화가 가능하다. 피해 여성들 진술에 일부 거짓말과 과장이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가해자(윤중천)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 여성들이 겪었을 좌절과 불안감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지 않은 것 같다. 여성들이 수사기관에서 진실만을 얘기할 수 없는 불가피한 사정에 대해 좀 더 귀 기울이겠다. 수사기관도 그런 노력을 해야 한다.”

-공론화 시기나 내용을 보면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받았을 것 같다.

"당연하다. 김학의 사건 자체가 워낙 정치적 쟁점이 있는 사건이고, 바라보는 관점도 다양하지 않나. 공론화가 결과적으로 정권 반대세력에 도움을 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오해 때문에 사건이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는 걸 바로잡는 일이 부정당할 수는 없다. 정치적 오해를 받더라도 사회적 공익이 월등하다고 봤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인가.

"본 적도 없고 이야기한 적도 없다. 연락 받아본 적도 없고 연락해본 적도 없다. TV로만 봤고 휴대폰에도 저장된 번호가 없다."

-김학의 사건 공론화를 통해 정치에 입문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온다.

"정치적 목적이 있었다면 공론화 작업의 순수성은 손상될 수밖에 없다. 사실 벌써부터 여기저기서 연락이 온다. 이쪽이든 저쪽이든 누구와도 만나지 않겠다. 만약 정치적으로 주선하는 분이 있다면 그 주선자도 만나지 않을 거다. 공론화에 흠집이 생기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공론화할 언론으로 한국일보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

"진보와 보수에 치우치지 않은 언론이기도 하고, 정치적 해석이나 편견 없이 있는 그대로 보도할 것이란 믿음이 컸다. 이후 방송사 한 곳도 같이 참여하면 좋을 것 같아서, SBS와도 공론화 작업을 하게 됐다."

윤중천ㆍ김학의 백서를 쓰는 이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선 스스로 과거의 잘못을 찾아내 진실을 규명하고 이에 대한 진정한 반성을 통해 다시 태어나야 한다.”

2017년 12월 법무부는 검찰 과거사위원회를 발족하면서 과거 사건 규명을 통한 ‘더 나은 미래’를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이 선정한 ‘윤중천ㆍ김학의 성접대 사건’은 가장 주목 받는 사건으로 꼽혔다.

과거사위는 이후 “검찰의 중대한 봐주기 수사 정황이 확인됐다”고 발표했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검찰개혁의 기폭제가 되기는커녕 당사자들이 제기한 소송과 정치적 논란, 그리고 ‘불법 출국금지’와 ‘면담보고서 왜곡’이라는 후유증만 남겼다.

한국일보는 그 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1,249쪽 분량의 ‘윤중천ㆍ김학의 성접대 사건 최종 결과보고서’와 수사의뢰의 근거가 된 ‘윤중천ㆍ박관천 면담보고서’를 입수했다. 과거사위와 진상조사단, 검찰ㆍ경찰ㆍ사건 관계인들을 접촉해 불편한 진실이 담긴 뒷이야기도 들었다. 이를 통해 자극적이고 정치적인 구호에 가려 주목 받지 못한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지난 사건을 다시 끄집어낸 이유는 ‘압도적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는데 보탬이 되기 위함이다. 과거사위와 진상조사단이 1년간 파헤치고도 발간하지 못한 백서를 한국일보가 대신 집필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글 싣는 순서> 윤중천ㆍ김학의 백서

<1> 면담보고서의 이면

<2> 진상조사단의 실체

<3> 반칙 : 윤중천이 사는 법

<4> 이전투구 : 김학의 동영상

<5> 법과 현실 : 성접대와 성착취

<6> 동상이몽 : 검찰과 경찰

<7> 반성 : 성찰 없던 활동

특별취재팀= 이승엽 기자
정준기 기자
신지후 기자
최나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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