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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이 다시 꺼낸 판도라의 상자 '여성 징병제'...이번엔 열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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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이 다시 꺼낸 판도라의 상자 '여성 징병제'...이번엔 열릴까

입력
2021.04.24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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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도 징병 해라' 청와대 청원에 동의 20만 넘겨
일부선 "20대 남성 위한 립서비스" 비판
여성계, "여성 절반 이상 찬성"...젠더 갈등 경계
법 개정 넘어야할 산...병역제도에 대한 고민도 부족

지난달 3일 경북 영천시 고경면 육군3사관학교 충성연병장에서 제56기 졸업 및 임관식이 열렸다. 2019년 입교해 2년 동안 일반전공과 군사학 교육과정을 이수한 483명이 이날 소위로 임관했다. 이 가운데 여군은 47명이다. 영천=뉴스1

지난달 3일 경북 영천시 고경면 육군3사관학교 충성연병장에서 제56기 졸업 및 임관식이 열렸다. 2019년 입교해 2년 동안 일반전공과 군사학 교육과정을 이수한 483명이 이날 소위로 임관했다. 이 가운데 여군은 47명이다. 영천=뉴스1

여성을 군대에 입대시키거나 군사 훈련을 받게 하자는 '여성징병제' 논의가 또다시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인구가 줄어 병역 자원이 부족해지면서 의무적으로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되는 여성도 군대를 가도록 하자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죠. 여기에 젠더 이슈가 더해지며 남녀 갈등 조짐까지 보이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양상은 처음은 아니죠. 잊을 만하면 나타나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다음에 만나요~' 하며 슬그머니 잦아들고 했습니다.

일부에서는 내년 3월 대선을 앞두고 이번에야말로 소모적 갈등을 경계하며 여성 군 복무 문제를 안보 측면에서 진지하게 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23일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에는 '여성도 징병 대상에 포함시켜 주십시오' 청원이 나흘만에 서명 인원 20만명을 돌파했습니다.

청원인은 "나날이 줄어드는 출산율과 함께 우리 군은 병력 보충에 큰 차질을 겪고 있다"며 "이미 장교나 부사관으로 여군을 모집하는 시점에서 여성의 신체가 군 복무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는 핑계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성 평등을 추구하고 여성의 능력이 결코 남성에 비해 떨어지지 않음을 모두가 인지하고 있는 현대사회에서 병역의 의무를 남성에게만 지게 하는 것은 매우 후진적이고 여성 비하적 발상"이라며 "여자는 보호해야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나라를 지킬 수 있는 듬직한 전우가 될 수 있다"고 했죠.

이 이슈가 국민 청원 게시판에 오르내린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2017년 9월 5일에도 '여자도 군대 가라' 청원글이 올라와 10만 명 이상이 동의했죠. 지난해 한 해 동안만 해도 11개의 관련 청원이 올라왔습니다. 올해도 벌써 세 차례나 같은 청원이 등장했습니다.

이날 청원글에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하면서 청와대의 답변 대상이 됐어요. 청와대는 청원 글을 올린 후 한달 이내 20만명의 동의를 받으면 청와대나 정부부처 관계자들이 관련 답변을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해묵은 이슈에 불을 지핀 것은 정치권이었습니다. 일부 여당 정치인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주로 오가던 내용을 공개적으로 꺼냈습니다. 이를 두고 4·7 재·보궐선거에서 정부·여당에 등을 돌린 이남자(20대 남자)의 환심을 사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죠.

차기 대권 도전 의사를 밝힌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9일 공개된 '박용진의 정치혁명'을 통해 '남녀평등복무제'를 제안하고 나섰어요. 남녀 모두 최대 100일 동안 의무적으로 군사 훈련을 받게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당장 선심성 립서비스라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박 의원의 주장을 두고 "모병제는 장기적으로 가야 할 목표이나 현재 실현 가능성이 없다"며 "입술 서비스로 2030 표나 좀 얻어보겠다는 포퓰리즘"이라고 지적했어요.

강민진 청년정의당 대표도 "젠더 갈등으로 주목 경쟁, 정치 장사 하려는 '하태경, 이준석 따라하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평가 절하했습니다.

엄청난 예산이 드는 모병제와 여성 군 복무 문제를 현실적 고려 없이 젠더 이슈 측면에서 소비해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거죠.

여성이 반대한다고? 여성 절반 이상 '군 복무' 찬성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월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의원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월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의원실에서 한국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난데없이 징집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여성들의 입장은 어떨까요. 사실 여성계에서도 오래전부터 여성 군 복무제에 찬성 목소리를 내왔습니다. 남성 중심 징병제를 남녀 참여 모병제로 전환하고 이를 통해 여군을 확충하자는 주장이 꾸준히 나왔어요.

실제 2019년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남성 1,036명과 여성 97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여성 53.7%는 자신들도 군대를 가야 한다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특히 대상이 되는 2030 여성도 54∼55%가 찬성한 것으로 나타났죠.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여성 징병제에 긍정적 입장을 밝힌 점이 눈에 띕니다.

여성 운동가이자 여성학자 출신인 권인숙 민주당 의원은 이와 관련, 19일 MBC '표창원의 뉴스하이킥'에 출연해 "남성 중심 징병제가 여성의 전 삶에 걸쳐, 특히 일자리나 직장 문화와 관련해 성차별의 근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어 그는 "군대에 여성이 많아지며 여성 친화적 조직으로 바뀐다는 것은 그 사회에 성평등 문화가 확대되는 데 굉장히 좋은 요소"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죠.

그러면서 "이번 대선 국면에서 모병제 논의를 활성화해야 하며, 여성들의 의지, 모병제 준비 상태, 국제 정세 등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남성이 군대 가는 것은 합헌, 그렇다면 여성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여성의 군 복무 문제가 처음 공론화한 것은 1999년 헌법재판소가 군 가산점제에 위헌 판결을 내리면서입니다.

같은 해 12월에는 '대한민국 국민인 남성은 병역의무를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 여성은 지원에 의해 복무할 수 있다'고 한 병역법 3조 1항이 평등권을 침해한다는 헌법소원이 제기됐죠. 이후 비슷한 취지의 헌법 소원이 여러 차례 제기됐지만 합헌 또는 각하 결정이 내려졌습니다.

병역법 3조에 대해 지속적으로 위헌을 주장하며 여성 징병을 요구하는 쪽의 주장은 대략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①먼저 헌법 제39조에서 모든 국민은 국방의 의무를 지도록 규정하고 있기에 병역 부담의 형평성 차원에서 여성도 군대에 가야 한다는 겁니다.

②두 번째는 여성도 신체적 능력이 남성과 큰 차이가 없으며, 꼭 전투 임무가 아니더라도 전투 지원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③마지막으로 여성은 부사관, 장교부터 지원 가능한데 남성의 경우처럼 병부터 복무해야 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이 가운데 어느 것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헌재에 따르면

①최적의 전투력 확보를 위해 남성만을 병역의무자로 정한 것이 자의적이라고 보기 어렵고,

②여성이 전시에 포로가 되는 경우 남자에 비해 성적 학대를 비롯한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더 커서 군사적 투입에 부담이 크다는 점,

③여성 징병제 도입 시 발생하는 막대한 경제적 비용

④징병제를 채택하는 다른 국가들의 일반적 상황 등으로 '남성만이 병역의무를 지는 것이 위헌이 될 수 없다'고 결정했어요.

'성평등'이 여성징병제 근거 될 수 있나... 해외는?

북한군 열병식 중 여군 대공부대 군인들이 14.5㎜ 기관총 4개를 연결한 ZPU-4 계열 고사포를 선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북한군 열병식 중 여군 대공부대 군인들이 14.5㎜ 기관총 4개를 연결한 ZPU-4 계열 고사포를 선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다른 나라의 경우는 어떨까요. 여성징병제를 도입한 국가북한, 이스라엘, 노르웨이, 스웨덴, 볼리비아, 차드, 모잠비크, 에리트레아 등 8개국입니다. 이들은 왜 여성 징병제를 선택했을까요.

중동 전쟁을 겪고 팔레스타인 분쟁 등 긴박한 안보 상황에 처한 이스라엘은 여성과 남성이 24개월, 30개월을 각각 복무합니다.

여성은 결혼과 임신, 종교 등으로 면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전체 여성의 40∼50%만 군대에 가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스라엘 여군의 4% 정도는 보병과 포병, 기갑 등 전투 임무를 수행하고, 나머지는 주로 행정과 통신, 항공 통제 분야 등에 근무합니다.

이스라엘을 뺀 나머지 나라들은 오랜 내전을 치르거나 권위주의 국가들이 대부분입니다.

북한의 경우 여군은 7년 동안 복무합니다. 부대에 따라 여군은 10∼30%의 비율을 차지합니다. 수송·행정 부서에 배치되거나 위생병·통신병·초병으로 근무하지만 해안포·고사총·소형고사포대에도 배치되죠.

'양성 평등'을 이유로 징병제를 도입한 곳은 전쟁 위험이 크지 않은 노르웨이와 네덜란드 두 곳입니다.

노르웨이는 과거 남성만이 대상이었지만, 2016년 7월 여성징병제가 도입돼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1년 동안 의무복무를 하게 됐습니다. 2014년 당시 사회주의 정당 소속 여성 당원들은 앞장서서 여성 징집 결의안을 통과시켰어요.

네덜란드 역시 2018년 '성평등'을 이유로 여성징병제가 도입됐습니다. 당장 병력이 부족해서라기보다 남성과 여성을 동등하게 대우하겠다는 상징적 의미가 더 큽니다.

이들 나라의 공통점은 여성 징병제가 정착되는 과정에서 남성에게만 국한돼 있는 의무를 열어달라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컸다는 점이에요.

여성 징병제, 지금 가능할까

해병대 여군 최초로 헬기조종사가 된 조상아 대위가 해병대1사단 제1항공대대에서 마린온 헬기 조종석에 앉아 있다. 해병대 제공

해병대 여군 최초로 헬기조종사가 된 조상아 대위가 해병대1사단 제1항공대대에서 마린온 헬기 조종석에 앉아 있다. 해병대 제공

우리나라도 노르웨이와 네덜란드의 전철을 따를 수 있을까요.

일단 헌재가 과거 남성에게만 병역의무를 부과한 병역법 규정이 합헌이라는 결정을 꾸준히 여러 차례 내려왔다는 점이 여성 징병제 도입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정부도 여성에게 병역 의무를 부과할 방법을 고민해왔습니다.

실제 노무현 정부는 2007년 여성과 수형자, 고아 등도 '사회복무' 형식으로 병역의무를 이행할 방안을 검토했습니다. 당시 국무회의에서 국방부와 병무청이 보고한 '병역제도개선' 추진 계획이 의결됐습니다.

정부는 2008년 말까지 병역법을 개정해 이르면 2009년부터 시행한다는 계획이었지만 결국 실현되지 않았어요.

국방부도 2009년 '여성지원병(兵)' 제도 도입을 검토합니다.

당시 국방부는 병역자원 부족 등을 이유로 여성지원병제 도입 방안을 검토했고, 2011년까지 관련 작업을 끝낼 계획이었어요. 하지만 군필자 가산점 제도 추진 논란에 이어 여성 복무 방안 찬반 논란이 일자 검토 작업을 중단했죠.

국방부는 "2020년 이후 병역 자원이 줄어들 것으로 예상돼 그 대안 중 하나로 검토하는 단계로, 구체적으로 어떤 안이 도출된 상태는 아니다"라며 "여성이 병사로 복무하는 것에 여러 제약이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한발 물러섰습니다.

젠더 논쟁 휩싸인 '여성 군 복무', 사회적 합의 우선이지만...

2017년 서울 용산구 국방부 국방컨벤션에서 열린 여군창설 67주년 기념식에 여군들이 자리하고 있다. 뉴스1

2017년 서울 용산구 국방부 국방컨벤션에서 열린 여군창설 67주년 기념식에 여군들이 자리하고 있다. 뉴스1

여성 징병제를 전면 도입하려면 병역의무 대상과 복무기간, 민방위 편입 등 병역법이 전부 바뀌어야 합니다.

병역법 3조 1항은 '대한민국 국민인 남성은 헌법과 이 법에서 정하는 바에 따라 병역 의무를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고 정해 남성의 병역 의무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미 헌재에서 이 법에 대해 합헌이라고 결정한 상태이고요.

결국 법이 바뀌려면 공론화를 통해 공감대가 만들어지고 나아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데 상황은 녹록지 않아요.

공감대는커녕 '왜 나만 군대 가서 고생하고 취업에서 불이익을 받느냐' '사회적 성차별은 그대로 두고 군 복무에서만 평등을 내세운다'식의 소모적 논쟁이 되풀이되고 갈등이 생기는 게 현실이죠.

실제 '여성 군 복무' 여론이 높아지자 20일 '여성 징병 대신에 소년병 징집을 검토해달라'는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청원인은 "각종 가부장적 악습과. 유리 천장, 높은 여성 대상 범죄율, 출산 강요, 저임금으로 인하여 대한민국 여성의 삶은 이미 지옥 그 자체인데 이젠 군역의 의무마저 지우려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는데요.

이어 그는 "이 나라에서 여성으로 태어난 것이 죄냐. 더는 당하지 않겠다"고 했어요.

전문가들은 여성 징병제가 현실화하려면 ①군 이미지가 지금보다 좋아져야 하고 ②군의 폭력적 문화 개선과 남성 중심적 위계 등을 개선하는 한편 ③안보 현실 등 고려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라고 입을 모읍니다.

더구나 이번에 '여성징병' 관련 논의들이 수면 위로 나온 계기가 4·7 재·보궐 선거 이후 정치권 특히 민주당 등 여권이 20대 남성들의 민심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 것과 관계가 있다는 점에서 고개를 갸웃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전쟁없는 세상의 이용석 활동가는 21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돌아선 20대 남성의 표심을 다시 잡아오겠다는 측면에서 여성징병제를 얘기하거나 헌재에서 위헌이라고 결정 난 군 가산점제를 거론하는 것은 병역제도에 대한 건강한 대안을 찾는 방식이 아니라 한번 이슈로만 소비하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어요.

그는 이어 "여성징병제가 얘기되려면 폭넓은 안보 개념을 바탕으로 한국의 군대 규모는 얼마고, 어떤 병역제도가 적당한지, 근본적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한 토론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또 다수 남성이 군 복무를 성차별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군 복무 기간을 최소로 단축시키고, 임금을 늘리거나 군 복무 때 (바깥 사회와) 단절을 최소로 줄이는 방식으로 개선하는 것이 더 시급하고 현실 가능한 방법이라고 본다"고 지적했어요.

손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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