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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학의 성폭력 판단 회피한 채… 난데없이 '공수처' 끼워넣었다

입력
2021.04.19 09:00
수정
2021.04.20 09:38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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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가 직접 쓰는 윤중천·김학의 백서]
<1> 면담보고서의 이면
'김학의 성접대 사건 결과보고서' 보니...
성폭력 의견 대립에 막판에 200쪽 추가돼
반대 의견 안 담고 '봐주기' '수사외압' 결론

한국일보가 입수한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의 '김학의 차관 성접대 의혹 사건' 조사 결과보고서. 1,249쪽에 달하는 해당 보고서에는 강원 원주 별장에서 찍힌 김 전 차관 동영상이 알려진 경위부터 검찰과 경찰의 수사과정과 평가, 여성들을 성폭력 피해자로 볼 수 있을지 등 다양한 내용이 담겨 있다. 홍인기 기자

한국일보가 입수한 대검찰청 과거사진상조사단의 '김학의 차관 성접대 의혹 사건' 조사 결과보고서. 1,249쪽에 달하는 해당 보고서에는 강원 원주 별장에서 찍힌 김 전 차관 동영상이 알려진 경위부터 검찰과 경찰의 수사과정과 평가, 여성들을 성폭력 피해자로 볼 수 있을지 등 다양한 내용이 담겨 있다. 홍인기 기자

2019년 5월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이 작성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성접대 사건' 최종 결과보고서에 허술하고 일관성 없는 주장과 논리적 비약이 상당수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김 전 차관 사건의 핵심 쟁점이었던 성폭력 사건에 대해선 구성원들간 제대로 된 협의도 없이 판단을 회피했고, 검찰과 경찰의 부실 수사 배경을 두고는 구체적 근거 없이 '의도적 봐주기' '수사 외압' 등으로 결론 내렸다. 보고서 완성 단계에선 일부 과거사위원과 조사단원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입법 참여' 내용을 끼워넣으려고 시도하기도 했다.

김학의 사건 조사 집약체 '결과보고서'

한국일보가 입수한 1,249쪽 분량의 '김학의 결과보고서'는 진상조사단이 2019년 5월 27일 대검과 법무부에 제출한 뒤 수정을 거친 최종안으로, 김 전 차관 사건 조사 활동의 집약체다. 보고서는 △조사 개요 △김학의·윤중천 관련 과거 사건 검토 △의혹 사항에 대한 검토 △결론 및 총평 순서로 구성돼 있다. 본문은 과거 검찰과 경찰 진술조서를 비롯한 수사기록을 발췌한 뒤, 이에 대한 조사단원 의견을 병기하는 식으로 쓰여졌다. '윤중천 면담보고서' 등 조사단 자체 조사자료도 포함돼 있다.

김학의 사건 조사는 진상조사단 심의기구인 법무부 검찰과거사위원회가 2018년 4월 김학의 사건을 본조사 대상으로 선정하면서 시작됐다. 처음엔 조사단 5팀에 사건이 배당됐지만, 2018년 11월 여성 L씨가 조사과정에서 2차 피해를 입었다는 보도가 나오자 8팀에 재배당했다. 조사단 8팀은 교수 2명과 변호사 3명(박준영 변호사는 중도 사퇴), 검사 2명으로 구성됐다.

김학의 사건은 과거사위원회가 본조사 대상으로 선정한 17개 사건 중 가장 주목 받은 사건이었다. 조사기간이 연장된데다 유일하게 검찰의 전면 재수사로 이어진 사건이기도 했다. 2019년 5월 29일 과거사위는 최종 조사결과를 언론에 발표했다. 진상조사단 의견을 바탕으로 △검찰의 봐주기 수사 정황 △검·경 부실수사 원인인 청와대 민정수석실 외압 정황 △윤중천 리스트 △김학의 동영상 외 추가 동영상 존재 가능성 △성접대 여성 내지 성폭력 피해 여성들의 무고 또는 성폭력 피해 가능성이 확인됐다는 내용이었다. 언론 발표내용만 보면 결론이 비교적 선명했다.

소모적 논란만 낳은 성폭력 의견대립

건설 브로커 윤중천씨가 2013년 5월 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에 자진출두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건설 브로커 윤중천씨가 2013년 5월 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에 자진출두하고 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하지만 2012~2014년 김 전 차관과 건설 브로커 윤중천씨 관련 사건 전체를 다룬 보고서 본문을 보면, 선명한 결론보다는 의견 대립과 비약으로 가득했다. 전체 보고서 분량의 절반에 가까운 600쪽 정도의 내용은 윤중천씨와 김 전 차관으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한 여성 L씨와 J씨의 진술 신빙성 관련 논쟁이었다. 두 여성 진술을 모두 믿기 어렵다고 판단한 제1안과, 재수사를 통해 성폭력 피해 여부를 다시 가려야 한다고 본 제2안으로 나뉘었다. 3안을 쓴 이규원 검사는 "1안과 2안 내용 중 기록 요약에만 동의하고 평가가 게재된 어떤 기술에도 찬동하지 않는다"고 판단을 회피했다.

애초 조사단 내부에선 윤중천씨와 김 전 차관을 성폭력 가해자로 형사처벌하기는 쉽지 않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여성들이 주장했던 피해 진술의 신빙성 문제와 공소시효 극복이라는 현실적 문제가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김 전 차관 형사처벌 여부와 별개로, 여성들이 윤씨로부터 당한 성착취 피해를 인정할 수 있다는 공감대도 있었다. 문제는 조사기간 내내 1안과 2안 작성자간 제대로 된 협의가 진행되지 않은 채 두 분석이 양극단을 달리기만 했다는 것이다. 보고서 제출 마감일을 코앞에 둔 2019년 5월 27일 1,033쪽짜리 결과보고서가 위원회에 제출됐다가 보고서 내용을 뒤늦게 확인한 2안 작성자가 항의하자 200여쪽을 추가하는 일도 벌어졌다.

결국 검찰은 김 전 차관을 뇌물 혐의로만 기소했다. 윤씨에 대해서는 여성 L씨 강간치상 혐의로 기소했지만 이마저도 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나왔다. 법원은 "피해 진술이 충분히 입증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과거 검찰이 내린 것과 똑같은 판단이었다. 진상조사단의 한 관계자는 "조사단이 재수사 가능성만 놓고 논쟁을 벌인 결과, 소모적 논란만 남기고 여성들의 피해 회복 가능성과 수사제도 개선 문제는 제대로 논의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부실수사 의혹이 '봐주기' '외압설'로 비약

그나마 진상조사단 구성원들의 의견이 일치했던 부분은 '경찰과 검찰 모두 뇌물 수사가 미진했다'는 내용이다. 윤중천씨와 김 전 차관의 성폭력 혐의 유무를 떠나, 김 전 차관이 윤씨로부터 성접대를 받은 것은 명백한데도 수사 과정에서 두 사람 관련 계좌추적·압수수색 등 실효성 있는 강제수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2013년 경찰 수사 당시 윤씨 별장에서 발견된 명함과 휴대폰 전화번호부 등에서 법조계 고위인사 이름이 무더기로 나왔고, 윤씨 주변인 진술을 통해 사건 청탁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검찰과 경찰 수사팀은 이에 대해 "강제수사에 착수하기엔 대가성 파악이 어려웠고 공소시효 문제도 있었다"고 진상조사단에 진술했지만, 조사단에선 검·경 의견은 결과보고서에 반영하지 않고 곧바로 '의도적 봐주기가 있었다'는 결론으로 직행했다. 특히 '청와대 민정수석실 외압설'의 경우 결과보고서 1,174쪽에서 아무런 배경 설명 없이 "(경찰) 수사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경위로 수뢰 혐의를 중단한 채 김학의 관련 특수강간 등 성폭력 범죄로만 최종 입건해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고만 적혀 있었다.

진상조사단 8팀이 김학의 사건을 조사하기 전에 해당 사건을 먼저 조사했던 5팀 보고서를 보면, 8팀 보고서의 비약은 확연하게 드러난다. 8팀과 똑같은 기록을 검토했던 5팀은 검찰과 경찰의 여성 조사 방식에 일부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하면서도 "외압을 언급한 건 일부였고 경찰은 이에 대해 단순한 풍문 이상의 구체적 외압과 출처 등에 대해선 밝히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기승전 '공수처'… 보고서 제출 문구 수정 논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2019년 5월 12일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송파구 서울동부지검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2019년 5월 12일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송파구 서울동부지검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역사에 남을 백서 역할을 할 결과보고서가 체계적으로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보고서 마감 직전 열린 진상조사단 8팀 회의에선 난데 없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관련 내용을 권고사항에 넣을지를 두고 구성원들간 격론이 벌어졌다. 이규원 검사가 작성한 검찰과 법무부 권고사항 항목에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당시 명칭)' 설치 필요성을 언급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던 탓이다. 진상조사단 구성원들 다수는 조사단 활동이 정치적 오해를 받을 수 있다며 '공수처' 표현을 넣지 말자는데 의견을 모았다. 이 검사는 그러자 공수처를 암시하는 '기구'라는 표현을 넣으려고 했지만, 다른 조사단원들의 설득으로 결국 '제도'로 고쳐넣었다.

결국 과거사위원회에 보고했던 최종 보고서에는 "검사의 직무 관련 범죄를 좌고우면하지 않고 엄정히 수사·기소할 수 있는 실효적 권한을 갖추고 공정성·중립성이 보장된 제도를 마련하기 위한 입법적 논의에 법무부와 검찰이 조직이해를 넘어 적극 참여할 것을 권고한다"며 '공수처' 표현이 빠진 채 전달됐다. 하지만 과거사위원회에서 김학의 사건을 담당했던 김용민 주무위원(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쓴 최종 조사 및 심의 결과 발표에선 '제도'라는 표현 대신 '제도로서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라는 표현으로 바뀌었다. 활동 종료 후 백서 발간을 위한 기초자료가 됐어야 할 결과보고서가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됐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는 대목이다.

과거사위원회에서 활동했던 핵심 관계자는 "과거사 조사의 첫째 목표는 처벌이 아닌 진상규명과 피해회복, 검찰 과오 반성인데, 모든 초점이 공소시효가 남은 혐의를 찾아 재수사를 권고하는데 맞춰졌다"며 “당시 국민적 공분을 무시하기 어려웠던 현실, 진상조사단이 조사한 기록을 (과거사위원들이) 살피기 어려운 구조적 한계는 있었지만, 과거사위도 제대로 조사과정을 지휘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윤중천ㆍ김학의 백서를 쓰는 이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선 스스로 과거의 잘못을 찾아내 진실을 규명하고 이에 대한 진정한 반성을 통해 다시 태어나야 한다.”

2017년 12월 법무부는 검찰 과거사위원회를 발족하면서 과거 사건 규명을 통한 ‘더 나은 미래’를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이 선정한 ‘윤중천ㆍ김학의 성접대 사건’은 가장 주목 받는 사건으로 꼽혔다.

과거사위는 이후 “검찰의 중대한 봐주기 수사 정황이 확인됐다”고 발표했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검찰개혁의 기폭제가 되기는커녕 당사자들이 제기한 소송과 정치적 논란, 그리고 ‘불법 출국금지’와 ‘면담보고서 왜곡’이라는 후유증만 남겼다.

한국일보는 그 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1,249쪽 분량의 ‘윤중천ㆍ김학의 성접대 사건 최종 결과보고서’와 수사의뢰의 근거가 된 ‘윤중천ㆍ박관천 면담보고서’를 입수했다. 과거사위와 진상조사단, 검찰ㆍ경찰ㆍ사건 관계인들을 접촉해 불편한 진실이 담긴 뒷이야기도 들었다. 이를 통해 자극적이고 정치적인 구호에 가려 주목 받지 못한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지난 사건을 다시 끄집어낸 이유는 ‘압도적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는데 보탬이 되기 위함이다. 과거사위와 진상조사단이 1년간 파헤치고도 발간하지 못한 백서를 한국일보가 대신 집필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글 싣는 순서> 윤중천ㆍ김학의 백서

<1> 면담보고서의 이면

<2> 진상조사단의 실체

<3> 반칙 : 윤중천이 사는 법

<4> 이전투구 : 김학의 동영상

<5> 법과 현실 : 성접대와 성착취

<6> 동상이몽 : 검찰과 경찰

<7> 반성 : 성찰 없던 활동

특별취재팀= 정준기 기자
최나실 기자
이승엽 기자
신지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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