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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 혐의 올인·뇌물 수사 미진… 미흡했던 경찰 '김학의 수사'

입력
2021.04.26 04:3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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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가 직접 쓰는 윤중천·김학의 백서]
<6> 동상이몽 : 검찰과 경찰
차명폰 요금 대납 알고도 뇌물 수사 안해
'별장 판검사·경찰 명함' 수사 미흡 지적도?
"뇌물 공소시요 지났고 대가성 입증 못해"

건설 브로커 윤중천씨 등에게서 금품과 향응을 제공받은 혐의를 받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2019년 5월 12일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동부지검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건설 브로커 윤중천씨 등에게서 금품과 향응을 제공받은 혐의를 받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2019년 5월 12일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동부지검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2013년 3월 '김학의 별장 성접대' 동영상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시작된 경찰 수사는 4개월 후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 적잖은 부침을 겪었다. 경찰이 김 전 법무부 차관 등 다수의 고위 공직자들이 연루된 단서를 잡고 수사에 공을 들인 점은 인정받았지만, 사회적 이목이 집중된 사건의 파장을 감안하면 만족할 만한 수사결과를 내놓지는 못했다. 대검 과거사 진상조사단이 2019년 5월 내놓은 1,249쪽 분량의 김학의 사건 결과보고서에는 당시 경찰 수사의 다양한 문제점들이 담겨 있다.

"경찰, 김학의 뇌물 포착하고도 노력 안 해"

윤중천씨 별장에서 압수된 공직자 명함들. 그래픽=강준구 기자

윤중천씨 별장에서 압수된 공직자 명함들. 그래픽=강준구 기자

경찰이 김학의 전 차관의 부패범죄 수사를 면밀히 하지 않은 점은 가장 큰 문제로 꼽혔다. 진상조사단은 당시 경찰청 특수수사과 수사 과정에서 김 전 차관이 2007년 전후 성접대를 받거나 금품을 수수했다는 정황이 다수 파악됐는데도 수사가 매우 미흡했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성접대의 경우 액수 산정이 불가능한 뇌물로 판단하고 공소시효도 5년으로 짧게 둔 탓에, 수사를 이어갈 수 없다고 서둘러 결론 내렸다. 금품수수 관련 수사는 윤중천씨가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데다, 대가성을 확인할 수 없어 수사를 지속하기 어렵다고 봤다.

하지만 2차 수사에 해당하는 2019년 검찰 재수사 과정에서 김 전 차관이 윤씨로부터 2007~2008년 3,000만 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가 포착됐다. 해당 혐의는 공소시효(1억 미만 뇌물수수 10년)가 지났다는 이유로 면소돼 법원에서 유무죄 판단을 받지 못했지만, 경찰이 2013년 수사 당시 집요하게 파헤쳤다면 다른 결과가 나왔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특히 경찰이 뇌물 관련 중요 진술을 확보하고도 검찰에 기소 의견으로 송치하지 않은 사건 관계자 중에는, 김 전 차관이 뇌물수수 혐의 항소심에서 징역 2년 6개월 실형을 받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도 있다. 김 전 차관에게 차명 휴대폰을 제공하고 요금까지 대납한 사업가 최모씨다.

경찰은 2013년 수사 당시 "김 전 차관이 성폭행 후 알려준 번호"라는 여성 진술을 통해, 최씨가 제공한 차명 휴대폰의 존재를 확인했다. 2013년 4월 8일에는 최씨를 직접 조사해 "예전부터 친구로 지내던 김 전 차관에게 해당 휴대폰을 지급하고 요금을 내줬다"는 자필 진술서까지 받았으나 제대로 된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진상조사단은 "경찰은 최씨가 차명으로 제공한 해당 휴대폰을 확보하거나, 김 전 차관의 계좌·통신 내용을 확인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래픽=신동준 기자

그래픽=신동준 기자

윤중천씨 수사 과정에선 김학의 전 차관 이외에 다른 고위공직자의 연루 가능성도 포착됐다. 윤씨 소유의 강원도 원주 별장 압수수색을 통해 20여 명의 공무원 명함이 확보됐고, 윤씨 다이어리에도 명함 속 인물들과의 약속 일정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별장에서 발견된 명함을 직업별로 살펴보면 검사가 5명, 판사가 2명이었고, 군인과 국가정보원 인사 명함도 있었다. 경찰이 7명으로 가장 많았다.

윤씨의 내연녀였던 K씨가 2019년 3월 4일 경찰에 제보한 이메일을 보면, 김학의 전 차관과 검찰 출신 변호사, 전직 경찰 고위인사, 전직 중앙부처 고위공무원 관련 비위 내용이 기재돼 있었다. 경찰은 윤씨의 운전기사나 참고인 조사를 통해 "명함 속 인사들 일부가 별장에 드나들었다"는 진술을 받았지만, 성접대 뇌물수사는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다.

여성들 진술만 의존… 검찰 잡는 데 올인한 경찰?

건설 브로커 윤중천씨가 2013년 5월 9일 경찰청에 자진 출두하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건설 브로커 윤중천씨가 2013년 5월 9일 경찰청에 자진 출두하는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경찰은 뇌물(성접대 포함) 혐의보다는 김학의 전 차관의 성폭행 혐의 입증에 수사력을 치중했는데, 수사 과정에서 지나치게 여성들 진술에만 의존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경찰이 김 전 차관에게 적용하려던 특수강간은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 징역에 처해지는 중범죄지만, 혐의의 무게감에 비해 증거 수집을 통한 검증은 거의 하지 않았다는 게 진상조사단의 결론이다. 진상조사단은 "경찰이 여성들이 주장하는 김 전 차관에 의한 성폭행 진술을 상세하게 듣고 기록한 반면, 그 사실관계를 입증하기 위해 여성들이 사용하는 휴대폰을 분석하거나 일기장·메모 등을 확보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일부 여성들의 경우 피해 시점이나 내용에 대해 명확하게 진술하지 못하거나 번복했다. 여성 P씨는 경찰에서 2007년 3, 4월쯤 김 전 차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가 검찰에서 "경찰 조사를 받고 난 뒤 강간을 당한 것으로 보기는 어려울 거 같아 담당 경찰관에게 피해자에서 제외해달라고 요청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P씨는 "선뜻 내키지 않은 성관계를 맺은 것은 강간을 당한 것이란 경찰관의 반복적인 설명을 듣고 그러한 진술을 했다"고 설명했다.

진상조사단 구성원 중 일부는 경찰 수사 이면에 '어떻게든 김학의를 잡아야 한다'는 의도가 과도하게 깔려 있었던 나머지, 혐의와 반대되는 정황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진상조사단은 "경찰이 수뢰 혐의를 제외하고 김 전 차관에 대해 성범죄 관련 범행만 송치한 탓에, 검찰은 '윤중천·김학의 vs 여성들' 구도로 사건을 접근하게 된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경찰 및 검찰 수사기록을 모두 살펴봤다는 법조계 인사도 경찰이 의욕은 앞섰지만 엉성하게 조사한 흔적이 많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피해자 진술과 경찰 조서의 싱크로율(일치하는 비율)만 따지면 80% 정도 되는 것 같아 잘된 조사로 보이지만, 오래된 일이라 여성들 진술에도 착오가 있거나 모순된 측면이 있는데, 그걸 경찰 단계에서 잘 검증하고 걸러주지 못했다"고 밝혔다.

"뇌물죄도 들여다봤지만 대가성 없었다"

경찰은 부실수사·편향수사 지적에 대해 받아들이지 못하는 분위기다. 진상조사단이 수사 경찰들의 진술을 기록한 자료와 한국일보 추가 취재에 따르면, 경찰은 김학의 전 차관 등의 뇌물수수 혐의도 충분히 조사했고, 여성들 진술이 일관돼 특수강간 등 성폭행 혐의를 적용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입장을 보였다.

경찰은 김학의 전 차관 뇌물 혐의의 경우 공소시효가 지났거나 대가성이 확인되지 않아 입건하거나 검찰로 송치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당시 수사 담당자는 2019년 5월 진상조사단에 "처음엔 뇌물죄를 검토했으나 대부분 공소시효가 지난 사안이었고 일부는 김 전 차관과 윤중천씨와의 직무 연관성을 확인할 수 없었다"고 진술했다. 김 전 차관이 성접대를 받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시기에, 윤씨가 연루된 사건 해결에 도움을 준 정황이 포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윤씨의 원주 별장 명함과 다이어리에서 나온 고위공직자 관련 수사도 대가성 확인이 쉽지 않아 계속할 수 없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다.

2013년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별장 성접대 의혹 수사 당시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사 내부 전경. 연합뉴스

2013년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별장 성접대 의혹 수사 당시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사 내부 전경. 연합뉴스

경찰은 김학의 전 차관 성폭행 수사 때 지나치게 여성들 진술에 의존했다는 지적에 대해선 "당시 피해자들 진술이 일관됐고, 여성들을 대하는 윤중천의 고정된 행태로 봤을 때 피해 사실이 없다고 볼 수 없었다"라고 주장했다. 수사에 관여했던 경찰 관계자는 한국일보에 "성폭행을 당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성매매에 나섰다고 정리될 수 있는 여성들은 수사 과정에서 이미 다 제외했다"며 "만남 초반에 형편이 어려운 여성들을 성폭행으로 억압하고, 이후엔 영상이나 사진 혹은 폭언으로 협박해 길들이는 윤씨 특성을 감안하면 여성들 주장을 배척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되레 검찰 수사 방식에 '김 전 차관 봐주기' 의도가 깔려 있었다고 반박했다. 경찰 수사 담당자는 2019년 진상조사단에 "검찰은 경찰에서 진술한 사람들을 불러 진술을 다 바꾸게 했다"고 강조했다. 진상조사단 지적과는 달리, 지금 생각해도 최선을 다한 수사였으며 잘못은 없었다는 주장이다.

그래픽=박구원 기자

그래픽=박구원 기자


윤중천ㆍ김학의 백서를 쓰는 이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선 스스로 과거의 잘못을 찾아내 진실을 규명하고 이에 대한 진정한 반성을 통해 다시 태어나야 한다.”

2017년 12월 법무부는 검찰 과거사위원회를 발족하면서 과거 사건 규명을 통한 ‘더 나은 미래’를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대검 과거사진상조사단이 선정한 ‘윤중천ㆍ김학의 성접대 사건’은 가장 주목 받는 사건으로 꼽혔다.

과거사위는 이후 “검찰의 중대한 봐주기 수사 정황이 확인됐다”고 발표했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 검찰개혁의 기폭제가 되기는커녕 당사자들이 제기한 소송과 정치적 논란, 그리고 ‘불법 출국금지’와 ‘면담보고서 왜곡’이라는 후유증만 남겼다.

한국일보는 그 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1,249쪽 분량의 ‘윤중천ㆍ김학의 성접대 사건 최종 결과보고서’와 수사의뢰의 근거가 된 ‘윤중천ㆍ박관천 면담보고서’를 입수했다. 과거사위와 진상조사단, 검찰ㆍ경찰ㆍ사건 관계인들을 접촉해 불편한 진실이 담긴 뒷이야기도 들었다. 이를 통해 자극적이고 정치적인 구호에 가려 주목 받지 못한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지난 사건을 다시 끄집어낸 이유는 ‘압도적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더 나은 미래’로 나아가는데 보탬이 되기 위함이다. 과거사위와 진상조사단이 1년간 파헤치고도 발간하지 못한 백서를 한국일보가 대신 집필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글 싣는 순서> 윤중천ㆍ김학의 백서

<1> 면담보고서의 이면

<2> 진상조사단의 실체

<3> 반칙 : 윤중천이 사는 법

<4> 이전투구 : 김학의 동영상

<5> 법과 현실 : 성접대와 성착취

<6> 동상이몽 : 검찰과 경찰

<7> 반성 : 성찰 없던 활동

특별취재팀= 신지후 기자
최나실 기자
이승엽 기자
정준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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