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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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을 성사시켜야 할 이유는 많다. 첫째로 시 주석 방한은 '한반도 긴장 관리 효과'를 가져다 줄 공산이 크다. 비핵화 협상 재개를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북한의 군사 도발 가능성은 올해 내내 축적될 수밖에 없다. 시 주석이 서울에 발을 딛는 순간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평화프로세스에 잠깐이나마 힘이 실릴 것이고, 북한으로서도 군사 도발 계획에 더욱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내년 2월 열리는 베이징 동계올림픽 특수도 놓치기 어렵다. 오는 7월 열리는 도쿄 하계올림픽에 다시 남북 간 훈풍을 유인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도쿄 구상'은 북한의 불참 선언으로 장담하기 힘들어졌다. 내년 베이징 올림픽이 사실상 마지막 기회다. 정부로선 시 주석의 이에 대한 지지가 절실하다.
체면치레 필요성도 있다. 문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17년 12월 이미 중국 방문을 마쳤다. 중국 측의 식사 대접도 제대로 받지 못하며 '혼밥 외교' 굴욕까지 겪어 냈다. 시 주석이 답방 정도는 해줘야 문 대통령이 겪은 수모도 만회될 수 있다.
이런 사정을 아는지 시 주석도 "오겠다"고 한다. 헌데 좀 미심쩍다.
양제츠(楊潔?) 공산당 외교담당 정치국원은 "시 주석이 우선적으로 방문할 나라는 한국(지난해 8월)"이라고 공언했다. 이어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여건(코로나19 상황)이 성숙하면 (시 주석의 ) 방한이 성사될 수 있을 것(지난해 11월)"이라며 슬며시 '조건'을 내걸었다. 급기야 지난 3일 중국 샤먼에서 열린 한중 외교장관회담 뒤 중국이 내놓은 자료에선 시 주석 방한 문제 자체가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정부는 "공감대가 이미 확인된 부분이라 중국이 시 주석 방한 내용을 포함하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이미 약속했으니 굳이 자료에 반영하지 않았다는 뜻이지만, 의지만 있었다면 그 약속을 재차 확인할 겸 언급했어도 될 일이다. 하지만 중국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중국의 시큰둥한 표정엔 시 주석이 직접 서울에 날아가야 할 정도로 한국이 급하진 않다는 판단이 엉겨 있다. 중국 입장에서 한국은 미국과 그 동맹 세력의 대중(對中) 포위망을 이완시켜줄 수 있는 핵심 국가다. 가뜩이나 조 바이든 미국 신(新)행정부의 '왕따' 작전으로 괴로운 중국으로서 한국마저 한미동맹과 한미일 3각 공조에 투신하는 시나리오는 최악일 테다.
다행히도 한국은 그러지 않았다. 지난달 서울에 온 미 국무장관이 "중국은 인권 유린국"이라며 동맹 차원의 대중 압박을 유도했을 때 한국 외교장관은 애써 외면했다. 문 대통령은 주변국 정상과의 새해 첫 통화 상대로 바이든 대통령이 아닌 시 주석을 택했다. 중국 포위망 수단으로 미국이 앞세운 한미일 3각 공조도 바닥 수준의 한일관계 탓에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중국이 한국에 바라는 모습 그 자체이고, 시 주석으로서도 지금 당장 '방한 카드'를 소진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시 주석 방한을 의식해 미국과 거리를 뒀는데, 되레 시 주석 방한이 멀어지는 형국이다. 우리가 미일과 내밀한 접촉을 늘려 몸값을 키워야 중국도 경각심을 갖고 한국에 더 많은 공을 들일 것이란 점을 정녕 모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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