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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보틀' 소비자 기만? 오해? 화장품업계의 안일함이 빚은 소동

입력
2021.04.13 14:00
수정
2021.04.13 14:25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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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니스프리? 제품, 플라스틱 52% 줄였지만
오해 부른 표기로 인해 "위장 환경주의" 논란
화장품 업계의 오랜 무책임에 불신 쌓인 탓

6일 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온 이니스프리 '그린티 씨드 세럼 페이퍼 보틀 에디션' 포장재의 모습(사진 왼쪽). '종이 용기'라고 표기돼 있는 것(위쪽)과 달리 외부 종이를 자르면 플라스틱 용기(아래)가 나온다. 한편, 이니스프리는 제품의 이중포장재인 종이박스에만 분리배출 방법을 안내하며 플라스틱 용기 사용 사실을 알렸다(오른쪽). SNS 캡처·업체 제공

6일 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온 이니스프리 '그린티 씨드 세럼 페이퍼 보틀 에디션' 포장재의 모습(사진 왼쪽). '종이 용기'라고 표기돼 있는 것(위쪽)과 달리 외부 종이를 자르면 플라스틱 용기(아래)가 나온다. 한편, 이니스프리는 제품의 이중포장재인 종이박스에만 분리배출 방법을 안내하며 플라스틱 용기 사용 사실을 알렸다(오른쪽). SNS 캡처·업체 제공

지난주 이니스프리의 제품 하나가 출시된 지 약 10개월 만에 뒤늦게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해 6월 이니스프리가 친환경 정책이라며 단기 이벤트로 진행한 ‘페이퍼 보틀 에디션’이 그것이다. 기존에 플라스틱 용기에 담겨 있던 ‘그린티 씨드 세럼’ 제품을 종이 용기에 담아 플라스틱 사용량을 51.8% 줄인 게 골자였다.

그런데 6일 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 종이 용기를 잘라 보니 안에 플라스틱 용기가 있었다”는 글이 올라왔다. 용기 외부에 플라스틱 사용에 대한 설명 없이 '페이퍼 보틀'로 문구가 돼 있어, 소비자들은 종이만으로 이뤄진 용기로 생각했던 것이다. “소비자 기만”이라는 댓글이 줄을 이으며 그린워싱(위장 환경주의) 논란이 일었다. 이니스프리도 “혼란을 드려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그러나 세부사항이 그렇게 간단치만은 않다. 전문가들은 “기업이 대놓고 소비자 기만행위를 한 것이라 평하기엔 애매한 부분이 있다”면서도 “결과적으로 환경 이슈에 대한 화장품 업계의 안일한 판단이 거센 비판의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플라스틱 사용" 알렸고 친환경 효과도 있긴 한데...

이니스프리가 홈페이지 등에 기재한 제품 설명 사진. "플라스틱 용기를 사용했다"고 적혀 있다. 업체 제공

이니스프리가 홈페이지 등에 기재한 제품 설명 사진. "플라스틱 용기를 사용했다"고 적혀 있다. 업체 제공

전문가들은 이 논란을 보다 친환경적 포장재를 찾아 가는 과도기적 현상이라고 분석한다. 여전히 아쉬운 점이 많지만, 어쨌든 현재의 엉망인 화장품 용기들보다는 나아 그린워싱이라고 매도하긴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제품 출시 당시 보도자료나 온라인 설명자료를 보면, 이니스프리가 플라스틱 용기 사용 사실을 고지하긴 했다. 이니스프리는 “제품 사용 후 종이 보틀과 가벼워진 플라스틱 용기는 각각 분리배출이 가능하다”고 적어 놓았다. 또 제품 용기를 담은 종이 박스 포장재에도 관련 내용을 기재했다.

재활용 측면에서도 개선된 점이 있긴 하다. 기존의 '그린티 씨드 세럼 80ml'는 초록색 PET 용기를 사용하는데, 재활용이 어렵다. 투명하지 않은 PET 용기는 판매 단가가 맞지 않아 대부분 일반 쓰레기로 버려지기 때문이다. 반면, '페이퍼 보틀'은 비교적 재활용이 잘 되는 흰색 폴리에틸렌(PE)을 사용했다. 플라스틱 용기에 아무 문구도 쓰지 않은 것도 재활용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페이퍼 보틀’이라는 명칭을 단 것이 기만이라는 비판이 있지만, 비슷한 용기를 먼저 만들어 사용했던 외국 제품의 명칭을 그대로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미국의 친환경 물병 제조업체 '페이퍼 보틀'이 자사 홈페이지에 소개해 둔 종이 용기의 설명. 생분해 플라스틱 제조업체인 ENSO RESTORE사의 PET를 사용했다고 기재돼 있다. 페이퍼보틀 캡처

미국의 친환경 물병 제조업체 '페이퍼 보틀'이 자사 홈페이지에 소개해 둔 종이 용기의 설명. 생분해 플라스틱 제조업체인 ENSO RESTORE사의 PET를 사용했다고 기재돼 있다. 페이퍼보틀 캡처

그러나 여전히 아쉬움이 크다. 일단 플라스틱 용기가 작은 편이어서 작은 용기들은 잘 걸러지지 않는 현재 시스템에서 재활용이 잘 될지 의문이다. 또 플라스틱 분리배출 필요성을 제품 외부 종이 박스에만 기재해둬, 박스를 버린 뒤 오랜 기간 제품을 사용하고 폐기하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를 인식하기 어렵다. "플라스틱만 써도 됐을 것을 종이까지 둘러야 했느냐"는 비판도 있다.

"화장품 업계 그간 무책임 되돌아봐야"

무엇보다 업계가 이를 “소비자의 오해”로 치부하고 넘어갈 문제는 아니라는 지적이 많다. 이번 논란의 배경엔 그간 환경 문제에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해 온 화장품 업계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신이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한국일보 기자가 화장품 용기를 자르고 두께를 재보고 있다. 배우한 기자

지난해 12월 한국일보 기자가 화장품 용기를 자르고 두께를 재보고 있다. 배우한 기자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이니스프리 입장에서는 업계 평균과 비교해봐서 ‘이 정도면 친환경이다’라고 자평했을 수 있지만 시민들의 기준은 엄격했던 것”이라며 “화장품 업계가 환경 문제에 너무 안일한 것 아닌지 스스로 돌아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실제 화장품 업계의 환경 불감증은 심각하다. 한국포장재재활용사업공제조합연구에 따르면, 국내 생산되는 화장품 용기 중 90% 이상이 재활용이 어렵다.

앞서 한국일보가 화장품 6개를 골라 용기를 분석한 결과, 플라스틱 두께가 3cm에 이르고, 많지 않은 내용물을 무려 3겹의 플라스틱으로 감싸는 등 플라스틱 과다 사용이 심각했다. 또 대부분 복합재질 플라스틱을 사용해 재활용이 불가능했다. (▶관련기사:두께 3㎝ 플라스틱… 화장품이 아닌 예쁜 쓰레기를 샀다)

이런 상황에서 화장품만이 ‘재활용 용이성 평가’ 규제에서 빠져나간 점도 공분을 사고 있다. 환경부는 ‘포장재 재질ㆍ구조 평가제도’를 통해 기업들이 소비재 용기의 재활용 용이성을 평가해 1월부터 개별 제품에 표시하게 했다. 포장재가 얼마나 재활용이 잘 되는지 평가 기준을 마련한 뒤, ‘어려움’ ‘보통’ ‘우수’ 등의 등급을 매겨 제품에 기재하도록 한 것이다.

음식료품ㆍ세제ㆍ의복 등이 이에 해당하지만, 화장품만은 예외다. “2025년까지 생산된 제품의 10% 이상을 역회수해 재활용하겠다”는 협약에 참여할 경우 등급 표시 예외를 인정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2월 25일 서울 종로구 LG광화문빌딩 앞에서 화장품어택시민행동 주최로 열린 '화장품 용기 재활용 문제 개선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2월 25일 서울 종로구 LG광화문빌딩 앞에서 화장품어택시민행동 주최로 열린 '화장품 용기 재활용 문제 개선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녹색연합과 알맹상점 등이 '화장품어택시민행동'을 출범시켜 화장품 용기들을 업체에 반납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등 반발이 거세지만 화장품 업계는 꿈쩍도 않는다. '페이퍼 보틀' 논란 뒤에는 이처럼 화장품 업계에 대한 오랜 불신이 자리잡고 있다.

이니스프리 관계자는 “제품 네이밍으로 인해 용기 전체가 종이 재질로 인식될 수 있다는 부분을 간과했다”며 “보다 정확하게 정보를 전달해 드리지 못하고 혼란을 드려 죄송하다”고 밝혔다. 이어 “제품 제조와 판매 전 과정에서 고객의 기대에 부합하는 브랜드가 되도록 더욱 노력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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