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자와 정자가 일깨운 공정의 원리

이전기사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난자와 정자가 일깨운 공정의 원리

입력
2021.04.06 20:00
0 0
엄창섭
엄창섭고려대 의과대학 교수

현미경으로 본 정자와 난자의 결합과정을 3D로 표현한 그림©게티이미지뱅크

난자와 정자가 만나 수정이 되는 때로부터 인간을 인간으로 인정하는 생명이 시작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생명의 시작이 수정이라면 수정란의 주인공인 난자와 정자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살펴보면 새로운 생명이 탄생하는 비밀이 보이지 않을까?

난자는 여성에게서 만들어지는데 난자 하나가 성숙하여 배란이 되기 위해서는 엄청난 경쟁을 뚫어야 한다는 것이 두드러진 특징이다. 임신 5개월쯤 난자의 선조세포는 약 700만 개 정도인데, 출생할 때쯤이면 약 200만 개로 줄어들고, 사춘기 즈음에는 약 40만 개만 남고 나머지는 퇴화한다. 초경 이후 여성의 몸에서는 매달 한 번씩 배란이 일어난다. 1년에 12번, 가임기간을 40년이라 하고, 임신기간을 빼면 아무리 많이 쳐줘도 약 400마리 정도만 성숙한 난자가 되어 배란된다.

수적인 면에서만 보면 정자는 난자와는 확연히 다르다. 정자의 선조세포는 반복적으로 세포분열을 해서 수를 늘려나가 지속적으로 정자를 만든다. 정세관에서는 동시에 서로 다른 발달 단계에 있는 정자들을 볼 수 있다. 결과적으로 언제든지 즉시 사용할 수 있는 성숙한 정자가 많이 만들어져 있다.

나는 이러한 현상을 ‘난자의 선택과 집중’, ‘정자의 공정한 기회와 노력’이라는 말로 표현해 보았다.

한 마리의 배란할 난자를 키우는 것은 개체 입장에서는 엄청난 선택이고 희생이 뒤따른다. 같이 분화하기 시작한 수천 수만 마리의 난자 중 한 마리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퇴화된다. 이러한 희생은 선택된 한 마리의 성공을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하려는 노력이 아닐 수 없다.

정자는 난자와 달리 계속적인 세포분열을 통해 엄청난 수의 정자가 쉬지 않고 만들어진다. 사정을 하면, 수백만 마리의 정자가 같이 마라톤을 시작한다. 목적지까지 도달하지 못하는 것이 태반이지만 일부는 질과 자궁을 지나, 자궁관에까지 가서 난자와 조우한다. 그중 한 마리만이 난자의 선택을 받는다.

난자가 경쟁을 통해 배란이 될 한 마리를 선택한 것이나 정자들의 마지막 순간, 난자의 선택을 받는 한 마리가 정해지는 것이다. 모두 공정한 기회와 경쟁의 결과이다. 최종적으로 수정을 할 정자가 겉껍질을 벗어버리고, 난막을 뚫고 난자 속으로 들어가면, 난자는 그 순간 다른 정자가 난자에게 접근하는 길을 막아버린다. 실로 엄청난 결단이 아닐 수 없다.

이게 최종적으로 수정이라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내는 난자와 정자를 선택하는 우리 몸의 원리이다. 한 마리의 난자를 선택하고 집중하여 키우는 것, 수많은 정자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어 정정당당하게 경쟁하게 하는 것, 그리고 가장 적절한 정자를 선택하고는 다른 정자들의 접근을 막아버리는 난자의 결단력, 이런 것들이 새로운 생명을 만들어내는 원리이다.

이 시대 우리는 많이 힘든 시절을 보내고 있다. 무엇을 해야 할지 혼란스럽기도 하다. 어려운 세상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기 위한 경륜을 난자와 정자에게서 구해본다. 정부를 포함한 지도자들은 이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다각도로 살펴 그중 가장 가능성이 높은 몇 가지를 선택하고 집중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선택에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도 사적인 이익을 떠나 힘을 합쳐 미래를 향해 힘을 모아야 한다. 그리고 그 목표를 향한 수많은 길들은 우리 국민들에게 활짝 열려 있어서 누구든지 참여할 수 있어야 하고 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공정한 기회 속에서 누군가가 꿈에 다가가게 되면, 다른 모든 이들이 그에 승복하고 또다시 힘을 합하여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야 한다. 과연 우리가 선택하고 집중할 미래의 목표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런 목표를 향해 우리 모두가 공정하고 정의롭게 참여할 방도는 무엇인지, 고민이 필요한 때다.

엄창섭 고려대 의과대학 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기사가 저장 되었습니다.

기사저장이 취소 되었습니다.

엄창섭의 몸과 삶
한국일보가 직접 편집한 뉴스 네이버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뉴스스탠드에서 구독하기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