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현, 범행 보름 전 스토킹 벌금형… 처벌법 일찍 시행됐다면 달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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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현, 범행 보름 전 스토킹 벌금형… 처벌법 일찍 시행됐다면 달랐을까

입력
2021.04.0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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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다음날 법 제정돼 9월 시행 앞둬
반의사불벌죄라 피해자 회유·협박 우려
"법원 보호명령제 등 피해자 구제책 보완을"

서울 노원구 세모녀 살인사건 피의자 김태현(25)이 4일 오후 서울 도봉구 서울북부지법에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를 마친 뒤 호송차량으로 향하고 있다. 뉴시스

서울 노원구 집에 침입해 평소 스토킹하던 20대 여성을 포함한 일가족 3명을 살해한 김태현(25)이 다른 여성에게 스토킹 범죄를 저질러 지난달 벌금형을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세 모녀가 피살된 다음 날인 지난달 24일에야 국회를 통과한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스토킹처벌법)'이 일찍 시행돼 김태현에게 보다 강한 처벌과 관리 처분이 내려졌다면 이번 사건을 막을 수도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9월부터 시행될 이 법 역시 피해자와 주변인을 보호하는 데 한계가 적지 않은 만큼 보완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스토킹 피해=사적 문제? 신고 문턱 여전

6일 서울경찰청 등에 따르면 김태현은 성폭력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지난달 10일 벌금 200만 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김태현은 휴대폰으로 자신의 신음소리를 녹음한 뒤 이를 여고생에게 수차례 전송한 것으로 조사됐다. 상대에게 문자, 영상 등을 반복적으로 보내는 전형적인 스토킹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김태현 신상공개를 결정한 서울경찰청 심사공개심의위원회의 한 위원은 "스토킹 전력에서 형사처벌을 제대로 받았다면 경각심을 느끼는 효과가 있어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스토킹에 대한 '솜방망이 처분'이 불과 보름도 안돼 세 사람의 인명을 앗은 강력한 재범의 단초가 됐다는 지적인 셈이다.

피해자가 신고를 해도 가벼운 처벌로 인해 가해 행위가 반복되는 양상은 스토킹 범죄의 특징 중 하나다. 수원지법에서 징역 8개월을 선고 받은 스토커의 경우 피해자에게 수백 통의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통화를 시도한 혐의로 2012년 벌금 100만원의 약식명령을 받았다. 스토커는 이후에도 피해자를 수시로 괴롭히다가 2019년에야 실형을 선고 받았다.

더구나 스토킹 피해자 다수는 신고를 결심하지 못한다. 스토킹을 중대한 범죄가 아닌 사적인 일로 치부하는 사회적 분위기로 인해 피해자가 개인적으로 피해를 감수하려는 양상이 나타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지난해 5월 벌어진 '창원 식당주인 살인사건'의 피해자의 경우 수년간 스토킹 피해에 시달렸지만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가해자는 식당 주인이던 피해자 B씨가 자신의 고백을 거절하자 지속적으로 B씨를 괴롭혔다. 유족의 소송을 도운 여성의당은 국회 토론회에서 "당시 B씨는 '동네 청년과 나쁜 인연을 만들기 꺼려서' '가족들이 걱정할까 봐' 등의 이유로 피해를 신고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김태현에게 희생된 큰딸 A씨 역시 스토킹 피해를 일부 아는 이들에게 호소했을 뿐 경찰 신고는 끝내 하지 않았다. A씨의 지인들이 언론에 공개한 카카오톡 대화에 따르면 A씨는 '스토커가 붙어서 전화번호를 바꿨다' '검은 패딩이 다가온다' '자꾸 다른 번호로 연락을 한다' 등 피해 사실을 털어놨다. 신변의 위협을 실감하면서도 정작 수사기관에는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것이다.

처벌 수위 높였지만 반의사불벌죄 한계

관심은 새로 제정된 스토킹처벌법이 이번과 같은 사건의 재발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는지에 쏠린다. 이 법은 그간 경범죄로 취급되던 스토킹 범죄의 처벌 수준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상대방을 스토킹해 불안감과 공포심을 지속적으로 느끼게 한 사람은 3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 벌금형에, 흉기를 사용할 경우에는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한다. 15대 국회에서 처음 법안이 발의된 이래 22년 만의 법 제정이다.

전문가들은 지금의 스토킹처벌법만으로는 실효성 있는 피해자 보호가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이 법이 스토킹 범죄를 반의사불벌죄로 규정한 점은 근본적 한계로 꼽힌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밝히면 피의자 단죄가 불가능한 점을 악용, 피해자가 피해자를 압박해 고소를 취하하게 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서혜진 한국여성변호사회 인권이사는 "피의자에게 피해자의 일상이 노출돼 있는 경우가 많은 스토킹 범죄에서는 반의사불벌죄 규정이 피해자에 대한 회유와 협박의 여지를 줄 수 있다"며 "피해자 입장에선 신고를 했다가 더 큰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설명했다.

보복 위험 높아… 피해자 보호 필수

스토킹 범죄는 보복 위험성이 높은 만큼 법적 보호망이 피해 당사자와 가족은 물론이고 주변 동료와 담당 경찰으로까지 폭넓게 마련돼야 한다는 진단도 나온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되면 경찰이 피신고자가 신체적 피해를 입히지 않았더라도 접근금지명령을 내리거나 유치장에 가둘 수 있어 범행 차단 효과가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 교수는 다만 "피의자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피의자가 스토킹 범죄를 부인하며 담당 형사를 고발하는 상황도 생길 수 있다"며 "피해자의 친족뿐만 아니라 주변인으로까지 보호 범위를 확장하는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피해자와 주변인에 대한 즉각적인 보호가 가능하도록 '피해자 보호 명령제'를 필수적으로 도입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온다. 이수연 한국여성변호사회 공보이사는 "현재 스토커처벌법상으로는 피해자가 보호 조치를 원할 때 경찰 신청, 검찰 청구 등 수사기관을 거쳐야 한다"며 "피해자가 직접 법원에 보호 명령을 신청할 수 있도록 신속한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은서 기자
오지혜 기자
윤한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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