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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정온도 유지하는 코로나 백신 운송 용기의 비밀

입력
2021.04.06 06:00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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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체 기술로 코로나 백신 운송 용기 개발한 이수아 에스랩아시아 대표
국내 유일의 의약품 운송 용기 인증 획득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서 바빠진 신생기업(스타트업)이 있다. 코로나19 백신마다 다른 적정온도를 유지하며 운송할 수 있는 용기를 개발한 에스랩아시아다. 이 업체에 따르면 국내에서 코로나19 백신 운송 용기는 두 군데에서 공급하는데 그중 에스랩아시아가 약 70%를 차지한다.

백신 운송 용기는 백신 운송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다. 운송 차량이 사고가 나도 용기가 버텨주면 백신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수아(35) 에스랩아시아 대표를 서울 영동대로 한국무역센터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만나 백신 운송 용기 개발에 얽힌 비화와 적정 온도 유지 비결을 들어 봤다.

파란 딸기가 낳은 그리니 박스

용기 개발의 시작은 딸기였다. 물류업체를 시작한 이 대표는 국내에서 생산하는 딸기 등 과일이나 채소를 해외에 신선한 상태로 보내는 방법을 고민했다. “국내산 딸기를 수출할 때 신선한 상태를 유지할 수 없어서 절반가량 덜 익은 딸기를 따서 보내요. 파란 딸기가 가면서 익죠. 그러니 해외에서 국산 딸기를 먹어보면 맛이 국내만 못해요. 또 운송 과정에서 공항 활주로 열기에 손상되는 등 40%가량은 상해서 버려요.”

여러 방법을 써봤지만 마땅치 않아 결국 직접 용기 개발에 나섰다. 그래서 지난해 초에 처음 만든 것이 과일, 채소, 어패류와 유제품 등을 신선하게 담아 이송하는 ‘그리니 박스’였다.

견고한 플라스틱으로 만든 그리니 박스는 외부를 둘러싼 외벽과 내벽 사이에 자체 개발한 진공 단열재(Vacuum Insulated Panel, VIP)가 들어간다. VIP 덕분에 신선 상태를 최대 120~150시간 유지할 수 있다. “소재와 소재 사이에 공기를 빼서 진공 상태로 만들면 아주 얇게 달라 붙어요. 진공 상태가 되면 소리나 열이 통과하지 못해 각종 상품을 신선하게 보관할 수 있죠.”

언뜻 들으면 간단해 보이지만 VIP 기술은 독일 일본 등 일부 국가만 갖고 있을 만큼 쉬운 게 아니다. “국내에서는 VIP 용기 개발이 처음이에요.” 이를 위해 이 대표는 3년 동안 VIP를 포함한 운송 용기 개발에 30억 원을 투자했다.

그리니 박스는 마구 집어던져도 부서지지 않도록 600㎏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 강화 플라스틱으로 제작됐다. 덕분에 3년 이상 반복 재사용이 가능하다. “부두나 공항의 하역창고에 가보면 일꾼들이 쇠꼬챙이로 상자를 걸어서 집어던져요. 따라서 충격을 이겨내는 것이 중요하죠.”

이수아 에스랩아시아 대표가 서울 영동대로 한국무역센터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코로나19 백신을 위해 개발한 특수 용기 '그리니 메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흰 플라스틱 안에 들어있는 푸른색 액체가 용기의 적정 온도를 결정하는 상변화물질이다. 용기 내부는 기밀이어서 촬영할 수 없다. 홍인기 기자

이수아 에스랩아시아 대표가 서울 영동대로 한국무역센터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코로나19 백신을 위해 개발한 특수 용기 '그리니 메디'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흰 플라스틱 안에 들어있는 푸른색 액체가 용기의 적정 온도를 결정하는 상변화물질이다. 용기 내부는 기밀이어서 촬영할 수 없다. 홍인기 기자


“이 정도인 줄 몰랐죠” 냉동 수산물 유통의 비극

이 대표가 그리니 박스를 만들기 전에는 상당수 물류업체들이 비싼 외국 용기를 쓸 수 없어서 발포 스타이렌 수지(스티로폼) 용기에 신선 상품을 담아서 보냈다. 스티로폼 용기는 잘 부서진다. “일부 물류업체들은 비용을 아끼려고 부서진 스티로폼 용기를 마대자루와 테이프로 때워서 다시 사용해요. 그만큼 비위생적이고 상품도 온전치가 못하죠.”

특히 냉동 수산물은 치명적이다. “스티로폼 용기에 담은 냉동 수산물은 냉동 창고에 들어가기 전까지 운송과정에서 녹아요. 냉동창고에 들어가면 다시 얼죠. 즉 운송과정에서 녹았다 얼게 되는 과정을 반복하며 상태가 변해요. 이 때문에 수입 수산물에 방부제가 들어가기도 해요. 사람들은 이런 과정을 모르니 스티로폼에 담은 냉동 수산물이 신선하다고 생각하죠.”

그만큼 저온 운송(콜드 체인)은 한 구간이라도 무너지면 신선도가 깨지기 때문에 힘들다. 그래서 다양한 운송 단계에서도 온도 변화가 일어나지 않도록 최대한 지켜주는 용기가 중요하다.

이 때문에 유럽에서는 창고부터 운송 단계에 쓰이는 차량과 용기를 까다롭게 규제한다. 그러나 국내는 그렇지 못하다. “유럽은 운송 트럭과 용기까지 적정 온도범위를 지정해요. 국내에서는 용기까지 적정 온도를 규제하지 않죠. 국내에서는 냉동 트럭도 에어컨 앞에 온도 측정 장치를 부착하는 경우가 허다해요. 온도가 에어컨 앞과 멀리 떨어진 곳은 15도 이상 차이나요. 이 정도 차이면 여름에 치명적이죠.”

국내 유일의 국제 의약품 안전 운송 인증 받은 그리니 메디 용기 개발

코로나19 백신을 나를 수 있는 의약품용 운송 용기 ‘그리니 메디’ 는 지난해 말에 출시됐다. “원래 지난해 8월에 개발했으나 수요가 많지 않아 생산을 미뤘죠. 그러다가 코로나19 백신이 나오면서 생산하게 됐어요.”

그리니 메디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국제안전수송협회(ISTA)의 의학용 안전운송을 위한 7E 인증을 받았다. “까다로운 적정 온도 범위와 내구성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7E 인증을 받기 힘들어요.”

그리니 메디는 적정 온도가 각기 다른 3가지 백신을 모두 담을 수 있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은 영상 2~8도, 모더나 백신은 영하 20도, 화이자 백신은 영하 60도 이하가 적정 보관 온도다. 에스랩아시아는 코로나19 백신 이송을 위해 저온과 초저온 등 온도 구간이 다른 3종류의 그리니 메디 용기를 제작했다. “새로운 코로나19 백신이 들어오면 거기에 맞춰 온도를 조절한 그리니 메디 용기를 바로 내놓을 수 있습니다.”

검은색에 가까운 그리니 메디 박스는 친환경을 위해 외부를 강화 골판지, 즉 종이로 만들었다. 만져보니 스티로폼처럼 딱딱하다. 그리니 메디는 내부에 특수한 소재가 들어간다. 바로 상변화물질(PCM)이다. 얼음처럼 액체에서 고체상태로 형태가 변하는 PCM은 녹는 점을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있다. 진공 단열재(VIP)와 더불어 PCM이 백신 운송을 책임지는 그리니 메디의 비결이다. 이 때문에 기밀에 해당하는 용기 내부 사진을 찍을 수 없다.

백신을 이송할 때는 푸른색 액체 상태의 PCM을 얇은 팩처럼 생긴 플라스틱에 담아 용기의 바닥과 벽에 장착한다. “PCM을 얼마나 넣어서 얼리느냐에 따라 용기 내부의 적정 온도와 유지 시간을 정할 수 있어요. 최장 120시간까지 적정 온도를 유지할 수 있죠.”

용기 내부를 PCM으로 두르고 코로나19 백신을 담는다. 이후 뚜껑을 닫아 용기를 밀봉한 뒤 용기 외관을 진공 단열재로 감싸고 ‘그리니 메디’라는 상표가 적힌 흰색 종이상자로 포장한다. 백신을 용기에 담아 밀봉하는 작업은 운송업체인 한국초저온에서 진행한다. “저를 비롯해 직원들이 백신 운송 때마다 경기 평택에 위치한 한국초저온 창고에 가서 밀봉 과정 등을 확인해요.”

이 대표가 그리니 메디를 개발하기 전에는 제약업계에서도 비싼 미국 또는 유럽산 용기나 저렴한 아이스박스, 스티로폼 용기를 약품 운송에 사용했다. 마찬가지로 콜드 체인을 위한 용기 규제가 없기 때문이다. 아이스박스나 스티로폼 용기를 사용한 경우 간혹 콜드 체인이 무너져 의약품이 변질되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한다. “다행히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지난 2월에 콜드 체인을 위해 용기를 규제하는 생물학적 제재의 운송과 보관을 위한 규제의 입법 예고를 했어요. 올해 안에 입법화되면 의약품 운송이 지금보다 안전해질 겁니다.”

이수아 에스랩아시아 대표가 30억 원을 들여 3년여에 걸쳐 개발한 특수 운송 용기인 '그리니 푸드'를 보여주고 있다. 저온 보관이 가능한 이 용기는 과일 채소 어패류 냉동식품 등 신선식품을 담을 수 있다. 홍인기 기자

이수아 에스랩아시아 대표가 30억 원을 들여 3년여에 걸쳐 개발한 특수 운송 용기인 '그리니 푸드'를 보여주고 있다. 저온 보관이 가능한 이 용기는 과일 채소 어패류 냉동식품 등 신선식품을 담을 수 있다. 홍인기 기자


냉동만두의 충격

이 대표는 창업하기 전에 주문자 상표부착 방식(OEM)으로 옷을 만드는 세아상역에서 일했다. 2009년 일본 리츠메이칸 APU대학에서 국제경영을 전공하고 처음 입사한 그곳에서 그는 의류용 원단을 찾아내 개발하는 일을 했다. 그때 그는 물류의 중요성을 깨닫고 2014년 에스랩아시아를 창업했다. "에스랩아시아는 물류업체로 출발했어요. 물건이 오고 가는 물류가 사업의 전 과정에서 가장 힘든 부분이어서 이를 편하게 해결하고 싶었죠.”

운송 용기로 사업을 확대한 것은 딸기와 더불어 이 대표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에서 시장 조사를 하던 중 우연히 국산 냉동만두의 유통을 목격한 것이 계기였다. “당시 동남아에서 국산 냉동만두가 인기였어요. 그런데 운송 문제로 녹아버린 냉동만두를 현지에서 다시 얼려 팔았어요. 제품의 맛과 질이 그만큼 떨어지죠. 완전 충격이었어요.”

그때부터 이 대표는 연구실을 차리고 화학, 신소재, 물리학 분야의 연구인력을 뽑아서 용기 개발에 나섰다. “처음 시작한 분야여서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어요. 제대로 된 장비조차 없어 연구원들이 많이 나갔죠. 지금은 전체 직원 20명 가운데 3분의 1이 연구인력이에요.”

고생을 많이 한 이 대표는 주변에서 스타트업을 창업한다면 절반은 말리고 싶은 심정이다. “투자 유치와 채용 등 단계마다 어려움이 많았는데 왜 힘든지 원인을 모르는 것이 가장 고민이었어요. 원인을 모르니 해법을 몰라 답답했죠. 나중에 스스로 깨닫고 답을 찾았을 때 희열이 컸죠. 이런 희열을 즐긴다면 스타트업을 해볼 만 하지만 잃는 것을 두려워한다면 말리고 싶어요.”

‘쏟아지는 수출 상담’ 해외로 진출

이 대표는 올해 그리니 메디와 그리니 박스를 해외에 수출해 매출을 크게 늘릴 예정이다. “지난해보다 매출을 10배 이상 늘리는 것이 목표예요. 지금까지 개발하느라 매출을 많이 못 늘렸죠.”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와 수출 논의 중인데 조짐이 좋다. “여러 나라에서 코로나19 백신 이송 문제 때문에 문의가 많아요. 말레이시아 질병관리청과 용기 공급을 논의 중인데 이달 이후 성과가 나올 겁니다. 첫 해외 수출이 되는 셈이죠.”

이를 위해 다양한 용량의 용기를 조만간 내놓을 예정이다. 그리니 푸드는 29리터 용량의 M사이즈 외에 소형과 대형을, 그리니 메디는 8, 13, 26리터 외에 50리터 대용량 제품을 2분기에 추가로 선보일 예정이다. 또 그리니 푸드 용기를 빌려주는 대여 사업도 다음 달부터 진행할 예정이다. 여기에 맞춰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경기 화성에 갖고 있는 제조공장 이전도 검토 중이다.

관련 투자도 많이 받았다. 이 업체의 진가를 알아본 TBT, 현대자동차, 신한캐피탈, BNK 등이 총 80억 원을 투자했다. “연구·개발 때문에 6월 정도에 추가 투자 유치를 고려 중이에요.”

이 대표에게 지금까지 과정은 모험이었다. “사실상 물류와 용기 사업을 결합해 국내에 없는 시장을 개척하는 모험을 했죠.” 이제는 모험을 확신으로 바꾸는 것이 그의 목표다. “에너지 효율화를 통해 콜드 체인에 특화된 업체를 만들고 싶어요. 코로나19를 통해 가능성을 봤어요. 코로나19 이후에도 다양한 의약품과 신선식품 배송이 늘어날 겁니다.”

최연진 IT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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