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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외교원장 김준형 “한미관계 가스라이팅 상태... 한국은 동맹에 중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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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외교원장 김준형 “한미관계 가스라이팅 상태... 한국은 동맹에 중독됐다"

입력
2021.03.30 16:18
수정
2021.03.30 16:43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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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동맹이라는 역설' 출간
한국 정부 외교 싱크탱크 수장, 차관급 인사
'한미관계 가스라이팅' 부적절 비유 논란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이 30일 신간 '영원한 동맹이라는 역설-새로 읽는 한미관계사' 출간 기자간담회를 열고 있다. 김 원장은 "불균형한 한미관계가 지속되며 한미동맹은 신화화됐다"며 '동맹중독'을 극복하고 상호적 관계를 회복하는 것만이 건강한 한미관계임을 역설했다. 창비 제공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이 30일 신간 '영원한 동맹이라는 역설-새로 읽는 한미관계사' 출간 기자간담회를 열고 있다. 김 원장은 "불균형한 한미관계가 지속되며 한미동맹은 신화화됐다"며 '동맹중독'을 극복하고 상호적 관계를 회복하는 것만이 건강한 한미관계임을 역설했다. 창비 제공

“한미동맹은 신화화됐고, 한국은 그 동맹에 중독됐다. 한미동맹이 아무리 중요해도 국익을 앞설 수 없다는 상식조차 수용하지 못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한미관계의 업그레이드를 위해서 우리는 반드시 자율성을 회복해야 한다.”

30일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이 펴낸 ‘영원한 동맹이라는 역설-새로 읽는 한미관계사’(창비)의 핵심 요지다. 한미관계사 150년 역사를 훑은 이번 책에서 그는 한미관계를 ‘가스라이팅’에 비유한다. 한국이 국력이나 대외환경 변화와 상관없이 안보를 미국에 전적으로 의존하며 불균형한 한미관계를 유지하느라, 합리적이고 자율적인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는 상태가 됐다는 것. 가스라이팅은 타인의 심리나 상황을 교묘하게 조작해 그 사람이 스스로 의심하게 만듦으로써 타인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는 현상을 말하는데 데이트 폭력 범죄를 설명할 때 주로 쓰이는 용어다.

한미관계 전문가인 김 원장은 '실용적 한미관계'를 평소 소신으로 강조해왔던 학자다. 그러나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 출범 이후, 우리 정부의 외교 싱크탱크인 국립외교원의 수장이 자극적인 표현을 써가며 한미관계 재정립을 주문하고 나선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립외교원장은 정부 차관급 인사다.

이에 대해 김 원장은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공직에 있으면서 예민한 문제를 다루는 게 맞느냐는 고민이 있었지만, 학자로서의 소신을 담았다”며 “특히 진보정부의 탄생에 참여했던 사람으로서 지금이야말로 이야기를 하고 넘어가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한미동맹은 한국에 분명한 자산”이라고 전제하면서도 한미관계가 신화화된 게 문제라고 했다. 한미관계의 수정이나 조정, 유연화나 자율성을 얘기만 해도 반미라는 이념적 굴레를 씌우는 비합리적, 비이성적 상황이 벌어진다는 점에서다. “한미동맹이 아무리 중요해도 미국조차 우리 국익의 수단이고 변수일 수밖에 없다는 상식을 우리는 잊고 있다”며 “언젠가는 미군이 철수할 수 있고, (대외 여건에 따라) 군사동맹도 약화될 수 있는데 진보 성향인 저조차 이를 불편해 여기는 것 자체가 신화적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한미관계를 ‘가스라이팅’에 빗댄 것에 대해선 "보수학자들이 북한이 문재인정부를 가스라이팅한다며 친북정부라고 프레임을 씌우는 것에 대한 반박으로 제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이 조직적으로 치밀하게 가스라이팅 하고, (한국을) 허수아비로 만들었다고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면서도 “그러나 호혜적 동맹이라면 안 할 말은 있어도, 못 할 말은 없어야 하는데, 압도적 대상 밑에서 우리는 못 할 말이 굉장히 많았다"고 덧붙였다.

‘동맹 중독’이란 진단에 대해서도 "우리는 미국과 입장이 다르다는 차이를 너무 불안해한다"며 “상식으로 돌아가 친미와 반미, 자주와 동맹 등 이념적 프레임에서 벗어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책엔 한미동맹이 약화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에 대해 김 원장은 “한미동맹은 북한에 대한 억지동맹으로, 군사동맹이 강해지는 건 북한의 위협이 커진다는 의미로 우리의 대외환경이 나빠진다는 말이다. 그런 점에서 원칙적, 당위적으로 한미동맹이 약화하는 게 낫다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군사적)억지만으로 평화가 오지 않는다는 게 2017년 증명됐다. 억지와 함께 적극적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원장은 간담회에서 한미 관계 현안에 대해서도 의견을 밝혔다. 바이든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선 과거의 전략적 인내방식을 답습하지 않을 거라 봤다. 북핵의 위협이 고도화됐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미국과 북한 공히 국내 정치 압박이 커 서로 양보를 전제로 협상을 구걸하는 형태는 보이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다. 김 원장은 제일 좋은 시나리오로 '비밀협정'을 제안했다. 싱가포르 회담의 원칙은 공유하되, 비공개 회담을 열어 교환조건을 주고받는 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 원장은 내년 2월 하노이 회담 3주년을 적절한 타이밍으로 봤다.

미중 전략경쟁에 대해선 쉽게 판가름 나기보다는 20, 30년 정도 한국을 괴롭힐 것이라고 예상했다. 최악의 경우는 미중 대결의 또 다른 대리전인 북중러-한미일로 진영이 갈라져 한국이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이다. 그는 미국과 중국 중 하나를 택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며, 한미관계를 존중하면서도 한중 관계를 훼손하지 않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국에 대한 경제적 의존도를 줄이고, 미중 전략 경쟁에서 2열에 서 있는 독일, 프랑스, 호주, 아세안 등과 국가별로 연대하는 것도 방법이라 했다.

김 원장은 “한미관계사 150년 전체를 다룬 건 처음이다. 나름의 학자적 양심을 가지고 분석했다. 논쟁은 언제든 환영한다"며 "다만 이념적 공격보다는 객관적 맥락 속에서 읽어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문재인정부에서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를 역임했던 문정인 세종연구소 이사장은 “지금까지 나온 한미관계 저서 중 보기 드문 역작”이란 추천사를 썼다.

강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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