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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 순간, 내가 위로 받았다" 브레이브걸스로 희망 본 20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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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 순간, 내가 위로 받았다" 브레이브걸스로 희망 본 20대들

입력
2021.03.2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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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린(Rollin')'은 위로와 힐링의 노래"
코로나19와 취업난으로 잃었던 희망 되찾아


지난달 24일 유튜버 ‘비디터’가 올린 ‘브레이브걸스 롤린 댓글모음’ 영상. 유튜브 캡처

지난달 24일 유튜버 ‘비디터’가 올린 ‘브레이브걸스 롤린 댓글모음’ 영상. 유튜브 캡처


대학생 최병호(26)씨는 요즘 군대 동기들과 2년 만에 반가운 연락을 나누고 있습니다. 걸그룹 브레이브걸스(브브걸) 때문인데요. 최씨와 같은 부대원들은 군에 있을 때 브레이브걸스를 열심히 응원했습니다. 2016년 말에 입대한 그는 선임에게 브레이브걸스의 노래를 '인수인계' 받았습니다. 당시 부대에서 휴대폰을 쓸 수 없어서 부대원들과 함께 IPTV로 브레이브걸스 영상을 보는 것이 낙이었습니다.

제대 이후에는 한동안 브레이브걸스를 잊고 지냈습니다. 그러다 요즘 브레이브걸스가 각종 예능 프로그램 등 TV에 나오고 음악 방송에서 1위를 하는 것을 보며 신기한 감정을 느낀다고 해요. 군대 동기들과도 이 얘기를 나누며 추억을 떠올렸습니다. 최씨는 브레이브걸스를 보면 "애틋한 느낌"이라며 "위문열차를 많이 왔던 그룹이라 생각이 난다"고 했습니다.

해체 직전의 위기에 있었던 브레이브걸스는 최근 한 유튜브 영상으로 '깜짝 스타'가 됐습니다. 지난달 24일에 올라온 이 영상은 한 달 만에 조회수 1,000만을 넘어섰고, 3만 6,000개의 댓글이 달렸는데요.

인기는 유튜브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각종 음원 차트에서 1위를 휩쓸고 마침내 음악 방송에서 1위를 거머쥐었습니다. 4년 만의 놀라운 역주행(예전 곡이 다시 인기를 얻는 것)이었죠.


'고생 끝 낙이 온다'는 말을 확인시켰다

tvN 화면 캡처

tvN 화면 캡처

이들의 역주행에는 주목할 만한 점이 있습니다. 바로 브레이브걸스가 지니고 있는 특별한 서사인데요.

'노력의 아이콘', '존버의 아이콘'으로도 불리는 브레이브걸스는 사실 데뷔한 지 벌써 10년차 그룹입니다. 지금 멤버들은 브레이브걸스 2기로 2016년 연예계에 발을 디뎠습니다.

데뷔 후 상황이 녹록지만은 않았습니다. 지난 5년 동안 수익을 내지 못해 정산도 받지 못했죠. 멤버들은 부모님에게 경제적으로 신세를 지거나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습니다.

돌파구로 생각했던 것이 바로 군 부대를 직접 찾는 공연인 '위문열차'였습니다.

군 위문 공연을 다니며 '밀보드(밀리터리와 미국 빌보드 차트를 합친 말)' 차트의 정상을 달렸습니다. 흙먼지를 마시며 공연을 했을 정도로 고생도 많이 했습니다. 그럼에도 멤버 모두가 가수가 아닌 다른 길을 생각해야만 했다고 하는데요.

최근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멤버 유정은 "취업 준비하면서 한국사 공부를 했다. 취직을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멤버 유나는 "(카페 창업을 위해) 바리스타 자격증도 땄다"고 전했습니다. 멤버 중 일부가 숙소에서 짐을 뺀 후 이틀 만에 유튜브에 '그 영상'이 올라온 거죠.

밀보드 차트의 인기는 곧 유튜브 알고리즘으로 이어졌습니다. 아이돌 무대와 댓글 모음을 편집해 올리는 유튜버 비디터가 브레이브걸스의 '롤린'을 업로드했습니다. 여기에 현역 군인과 군을 제대한 일반인들이 단 댓글이 무대에 입혀져 재미를 더했습니다.

한 누리꾼은 "백령도 공연 간 그룹은 처음 보는 것 같다"며 "흙먼지 마시며 고생한 만큼 더 잘됐으면 좋겠다"고 전했습니다. 영상을 만든 비디터는 "댓글로 영상(을 올려달라는) 추천을 받았는데 노래가 좋아서 바로 만들었다"고 밝혔습니다.


"브레이브걸스 보고 불안한 마음 위로 받아요"

브레이브걸스가 SBS '인기가요'에서 '롤린'으로 1위를 차지했다. 방송 캡처

브레이브걸스가 SBS '인기가요'에서 '롤린'으로 1위를 차지했다. 방송 캡처


디자이너 이재원(26)씨는 매일 출퇴근길에 브레이브걸스의 노래 '롤린(Rollin')'을 듣습니다. 신나는 리듬에 출근하는 발걸음이 가벼워집니다. 이씨는 "노래가 신나서 응원곡 같다"며 "나에게는 위로와 힐링의 노래"라고 말했습니다.

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는 이씨는 11월이면 계약이 끝납니다. 시간이 갈수록 직장을 잃어버리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커지지만 브레이브걸스 노래를 들으면 힘이 난다고 해요. 얼마 전 한 음악 방송에서 그들이 1위하는 모습이 마치 "자신이 취업에 성공한 순간"처럼 느껴졌다고 했습니다.

20대들은 브레이브걸스의 서사에 공감하며 위로받고, 그들을 응원하고 있습니다. 이씨는 "주변에 정규직 친구들도 일이 안 맞아서 다른 직장을 찾아 볼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한다"며 "20대들이 불안한 마음을 브레이브걸스를 통해 위로받는다"고 말했는데요.

이 같은 공감은 온라인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유튜브 '롤린' 영상에는 "제가 지금 취준생(취업 준비생)인데 제 노력이 언젠가는 꼭 인정을 받을 것이라는 확신을 얻었어요", "희망이 없었는데 희망을 찾은 것 같아요"라는 댓글이 줄줄이 이어졌습니다.

잡코리아와 알바몬에서 신입직 취업준비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 결과, 취업 준비할 때 가장 힘든 점은 '취업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으로 전체의 32.4%를 차지했습니다. 외부 요인보다 심리적 요인으로 인해 더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이죠.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취업 준비생은 물론 직장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은 사회 초년생도 상황이 안정적이지 않다"며 "그런 불안감이 쌓이면서 요즘 청년들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리는 듯한 번아웃 되는 기분을 겪는다"고 진단했는데요. 그는 이어 "그런 그들에게 브레이브걸스가 뒤늦게 인기를 얻으며 그동안 쌓아온 노력이 무의미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니 이입이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고생담에 공감하고 성공에 대리만족하는 20대들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언론사 입사를 준비 중인 안효정(25)씨는 평소 좋아하던 예능 프로그램인 tvN의 '유퀴즈 온더 블럭'을 보다가 눈물을 흘렸습니다. 프로그램에 출연한 브레이브걸스 멤버들의 고생담이 자신의 상황과 겹쳐보였기 때문입니다. 한 멤버가 "부모님을 걱정시키기 싫어서 말을 못했다. 혼자서 인내했다"고 했던 말에 큰 공감이 됐습니다.

안씨는 브레이브걸스의 영상을 찾아보며 "열심히 하면 될까? 였는데 된다!로 바뀌었다"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일기장에 브레이브걸스의 이야기를 적으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그는 "현실이 고단하지만 일단은 버텨보자는 마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안씨와 같은 20대들은 브레이브걸스의 성공에 '대리만족'하는 동시에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얻는다고 했습니다.

한 대학 커뮤니티 이용자는 "2030대 사이에 뿌리 깊게 스며든 패배 의식이 있다. 계층이동도 힘들고 취준도 힘들고 현실은 너무 어려운데 단비 같은 존재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다른 이용자는 "'열심히 해도 안 된다는 인식이 팽배했던 2030세대에게 '버텨보니 되더라'라는 긍정적 인식을 심어줬다"면서 "어떻게든 아등바등 살아왔던 브브걸(브레이브걸스)의 모습을 보면서 나 자신이 투영돼서 공감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과거와 달리 요즘에는 일자리 자체가 별로 없고 집도 사지 못할 것 같아 청년들이 미래에 희망이 없다고 느끼게 된다"며 "희망이 없어 보이던 걸그룹이 고생을 하다가 빛을 보는 걸 보면서 감동도 받고 대리만족도 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브레이브걸스를 보면서 "나도 버티면 결국엔 좋은 날이 오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는 거죠.

또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대중은 부정한 방법으로 성취하는 것에 허탈감을 느낀다"면서 '브레이브걸스 신드롬'의 이유를 "브레이브걸스가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장윤서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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