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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 걸린 '성확정 수술' 車 한대 값인데 비급여 '미용' 취급"

입력
2021.03.30 04:30
수정
2021.03.30 07:29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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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전문의 "한국만의 가이드라인 제정돼야"
"호르몬치료·성확정수술에 건강보험 적용 필요"


서울 은평구 살림의원의 성중립 화장실(왼쪽)에 다양한 정체성에 대한 표시가 되어 있다. 살림의원 제공

서울 은평구 살림의원의 성중립 화장실(왼쪽)에 다양한 정체성에 대한 표시가 되어 있다. 살림의원 제공

"잘한다는 병원에 견적받으러 가본 적이 있는데 유방 절제만 800만 원이라고 했다. 성 확정 수술을 하려면 차 한 대 값이다. 우리에겐 수술이 생존의 문제인데, 쌍꺼풀 수술하는 거랑 똑같이 비급여 '미용'으로 취급받는다." (트랜스젠더 남성 정현(활동명)씨)

"정신과 전문의임에도 제대로 상담도 안 해줄 뿐더러 상담받으러 온 트랜스젠더들을 힘들게 하기도 한다더라. 나는 처음에 성소수자 친화적인 병원에 대해 ‘트랜스젠더 진단 잘 내려주니까 찾아가는 거 아니냐’고 했는데, 저간의 혐오적 상황을 겪고 나니 왜 그런지 알게 됐다.” (트랜스젠더 여성을 자녀로 둔 어머니 물(활동명)씨)

성별 불편감 해소를 위한 트랜지션 과정은 길고 험한 선택지가 있다. 크게 정신과 진단, 호르몬 치료, 성확정 수술이지만 세부적으로는 더 넓다. 성확정 수술은 고환ㆍ정관절제술, 자궁ㆍ난소난관절제술, 성기재건술 등에서부터 유방 절제ㆍ확대술, 안면윤곽성형술, 목젖성형술, 제모ㆍ모발이식술 등을 포괄한다.

불안하고 위험한 과정이지만 한국에는 안전성을 담보해줄 관련 지침이나 기반시설이 미비하다. 장창현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살림의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트랜스젠더의 정신과 진단은 세계트랜스젠더보건의료전문가협회(WPATH)의 건강관리실무표준에 따라 통상 6개월간 전문의 면담, 심리검사, F64유관 진단 코드(성전환증 또는 성별불일치) 발급 등의 절차를 따른다”며 “하지만 아직 한국만의 표준이 정해져 있지 않아 이를 지키지 않는 의료기관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이럴 경우 우울증, 불안장애, 조현병 등 호르몬 치료 과정에서 함께 고려해야 할 다른 정신과 질환을 놓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부 병원은 단 한 번의 진료 후 진단서를 등기로 보내주는 곳도 있다. 장 의원은 “2019년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추계학술대회’에서 성소수자 정신과 진료 가이드라인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아직 구체화되지 않은 상태"라고 밝혔다.

장창현 살림의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성소수자 정신과 진료 가이드라인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고은 PD

장창현 살림의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성소수자 정신과 진료 가이드라인 마련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고은 PD

호르몬 치료에 대해서도 추혜인 살림의원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영국은 국영의료시스템(NHS)이 트랜스젠더를 위한 호르몬치료 지침서를 발간하고 각 지역마다 젠더클리닉이 운영되고 있을 정도이지만, 한국은 이 같은 인프라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래서 국내에서는 처방 없이 스스로 호르몬을 투여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추 의원은 “검사를 통해 호르몬 농도가 잘 조절되고 있는지, 간기능이 나빠지지 않았는지, 적혈구증다증과 혈전증의 위험은 없는지 등을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호르몬 치료와 성확정 수술에 건강보험 적용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 분야가 건강보험을 적용한다고 해서 '의료쇼핑' 하듯 남용될 수 있는 분야도 아닐 뿐만 아니라, 건보가 적용되면 표준 의료 지침이 생기기 때문이다. 추 의원은 “호르몬 치료는 1회에 1만5,000원, 검사비용에 5만~10만 원 정도가 들어 일부 환자들에게는 경제적인 부담이 된다”며 “뿐만 아니라 왜곡된 호르몬치료 정보를 정비해나가고 이를 표준화하기 위해서도 건강보험을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추혜인 살림의원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호르몬치료 관련 정보를 표준화하기 위해서라도 국민건강보험을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고은 PD

추혜인 살림의원 가정의학과 전문의는 호르몬치료 관련 정보를 표준화하기 위해서라도 국민건강보험을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고은 PD

이원기 한림대 춘천성심병원 비뇨의학과 교수는 “한국에서는 비급여 항목의 치료나 수술이 비도덕적인 것처럼 비치는 경향이 있어, 대학병원 등은 꼭 필요한 상황이 아니면 이를 꺼리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김결희 강동성심병원 성형외과 교수는 “성별 불편감은 의학적인 개입이 필요한 문제인 만큼 건강보험을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럽의 트랜스젠더 인권단체인 트랜스젠더유럽의 2014년 조사 등에 따르면, 호르몬 치료는 전 세계 118개국 중 38개 국가가, 성확정 수술은 39개 국가가 국가건강보험이나 공공의료체계를 통해 보장하고 있었다.

한국에서 성확정 수술을 하는 병원은 손에 꼽을 정도다. 대학병원 중에서는 1986년부터 동아대병원이 수술(380건)을 했으나 현재는 하지 않고 있으며, 강동성심병원이 올해 처음 수술을 했다. 고려대안암병원은 젠더클리닉을 설립했으나 수술을 집도한 적은 없다.

동아대병원에서 하리수씨 등의 수술을 맡았던 김석권 교수는 정년퇴임 후 2019년 온종합병원으로 옮겨 10건 가량의 수술을 했다. 그 외 개원가에서는 S비뇨기과(연 20~30건), 지난해에 생긴 H비뇨기과 젠더클리닉 등이 있다. 수술 비용은 남성화는 최대 4,000만 원, 여성화는 3,000만 원 정도에 이른다. 이 비용을 내고도 안전한 환경에서 안정적인 수술을 받지 못했다는 불만들도 흘러나온다. 이 때문에 비용이 절반 정도로 싼 곳을 찾았다가 부작용에 시달리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박주희 기자
전혼잎 기자
남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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