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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일 만의 외출… 박원순 피해자 "일상 회복하고 싶다" 눈물 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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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일 만의 외출… 박원순 피해자 "일상 회복하고 싶다" 눈물 호소

입력
2021.03.17 20:0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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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지원단체 주최 기자회견에 직접 참석
"사실 왜곡, 2차 가해 벗어날 수 없었다" 토로
"민주당 시장후보 당선 땐 내 자리 못 돌아가"

김혜정(왼쪽 두 번째)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이 17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의 한 호텔에서 열린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피해자와 함께 말하기’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김혜정(왼쪽 두 번째)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이 17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의 한 호텔에서 열린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피해자와 함께 말하기’ 기자회견에 참석해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저는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위력성폭력 피해자입니다.”

박 전 시장 성추행 사건 피해자가 17일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서울시장 비서실에 근무하며 강제추행을 당했다며 지난해 7월 8일 박 전 시장을 고소한 후 변호인단과 지원단체 등을 통해서만 입장을 전해온 피해자가 직접 심경을 밝힌 것은 처음이다.

이날 오전 10시 서울시장 위력성폭력사건 공동행동 주최로 서울 중구 한 호텔에서 열린 ‘멈춰서 성찰하고, 성평등한 내일로 한 걸음’ 행사에 참석한 피해자 A씨는 “사상 초유의 2차 가해를 직면하고 있으며 인간으로 설 자리가 없다고 느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고 그간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A씨는 “저의 회복에 가장 필요한 것은 용서”라며 박 전 시장의 소속 정당이자 자신에 대한 2차 가해를 주도한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진정성 있는 사과를 요구했다. 특히 A씨는 다음달 7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당이 재차 당선자를 낸다면 자신은 일상을 회복하지 못할 거라며 사실상 여권 후보의 낙선을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

“인권위의 피해 인정에도 잦은 사건 왜곡… 무력감 느껴”

행사 시작부터 40여 분가량 가림막 뒤에서 다른 참석자들의 발언을 듣던 A씨는 행사 말미에 가림막 밖으로 나왔다. A씨는 검은색 원피스 차림에 안경과 마스크를 쓴 채, 법률대리인인 김재련 변호사와 함께 연단에 올랐다. 박 전 시장을 고소한 날로부터 252일 만이다. 피해자 인권 보호를 위해 사진 및 영상 촬영은 금지됐고, 유튜브로 생중계되던 행사는 음소거된 채 자막으로만 A씨의 발언을 전달했다.

긴장한 표정으로 마이크를 쥐고 입장문을 읽어가던 A씨는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 당당하고 싶다”며 공개 발언 이유를 설명한 이후 내내 눈물을 보였다. A씨는 “인간으로서의 존엄 회복을 위해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그동안 지원단체와 변호인단을 통해 입장을 발표해 온 제가 제 안에 참아왔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기까지 가족, 단체, 변호인단과 수없이 고민했고 결국 용기를 내 이 자리에 섰다”고 했다.

A씨는 박 전 시장을 고소한 이후 잇따른 사실 왜곡과 비난으로 험난한 과정을 겪어왔다고 토로했다. A씨는 “(박 전 시장의) 극단적 선택으로 인해 가해자와 피해자의 자리가 바뀌었고, 고인을 추모하는 거대한 움직임 속에서 우리 사회에 저라는 인간은 설 자리가 없다고 느꼈다”며 “그 속에서 제 피해 사실을 왜곡해 비난하는 2차 가해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분명한 사실은 이 사건 피해자는 시작부터 끝까지 저라는 사실”이라며 눈물을 쏟았다.

A씨는 국가인권위원회로부터 피해 사실을 인정받은 이후에도 누구에게도 진정성 있는 사과를 받지 못했다고 호소했다. A씨는 “저라는 존재와 피해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박 전 시장의 업적에 박수치는 사람들을 보며 무력감을 느꼈고, 이 사건을 정쟁의 도구로 이용하며 의미를 퇴색시키는 발언에 상처를 입었다”며 “저에게 상처를 준 모든 분들에게 진정한 사과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민주당 사과, ‘피해호소인’ 언급 당원 징계해야”

지난해 7월 11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 마련된 고 박원순 서울시장 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조문을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7월 11일 오전 서울시청 앞에 마련된 고 박원순 서울시장 분향소에서 시민들이 조문을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연합뉴스

A씨는 입장문 발표 후 이어진 질의응답 시간 대부분을 자신이 직접 나서 발언하게 된 이유를 설명하는 데 썼다. A씨는 “저의 피해 사실을 왜곡하고 오히려 상처 준 정당에서 시장이 선출됐을 때 제 자리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들었다”며 “제가 일터에서 함께 일을 했던 사람들이 2차 가해를 주도하고, 열심히 일했던 순간이 피해가 없었음을 증명하는 근거로 사용되는 것이 유감스러웠다”며 밝혔다.

A씨는 특히 여당과 서울시 관계자 등이 다음달 치러지는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의미를 제대로 성찰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민주당을 겨냥해 “’피해호소인’이라는 명칭으로 피해 사실을 축소·왜곡하려 했고, 저를 압도했으며, 투표율 23% 당원 투표로 서울시장에 결국 후보를 냈다”고 비판했다. “이번 선거는 처음부터 잘못됐다”고도 했다.

A씨는 민주당에 △피해호소인 용어를 쓴 당원들의 사과 △박 전 시장에게 피소 정황을 유출한 남인순 의원의 사퇴 및 징계를 요구했다. 앞서 있었던 이낙연 민주당 상임선대위원장과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의 사과에 대해선 “어떤 것에 대한 사과인지 명확히 짚지 않아 진정성도 현실성도 없는 사과”라며 거부했다. 서울시 안팎의 성폭력 관련 제도 개선과 관련해서는 “사상 초유의 2차 가해를 직면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2차 가해에 대한 구체적 기준을 정립하는 게 필요할 것 같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날 회견에는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장, 권김현영 여성주의 활동가, A씨의 전 직장 동료인 이대호 전 서울시 미디어비서관, 피해자 변호인단의 서혜진 변호사 등이 참석했다. 이수정 교수는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의 성추행 사건 이전으로 대한민국은 돌아갈 수 없다”며 “이제는 피해자를 향한 2차 가해를 멈춰 달라”고 호소했다. 이 전 비서관은 “여러 서울시장 후보들이 성폭력 예방과 후속 조치를 이야기했는데 이것이 잘 구현되도록 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승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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