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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피해자가 선거 앞두고 '민주당' 콕집어 비판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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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피해자가 선거 앞두고 '민주당' 콕집어 비판한 이유

입력
2021.03.18 04:30
수정
2021.03.18 07:44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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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를 치르게 된 본질적 이유가 묻혔다고 생각"
여권 서울시장 후보 출마·선거운동 강하게 비난
'2차 가해' 의원들 선거캠프 참여에도 실망 피력
여성단체 "책임 있는 조치 피한 여당의 자업자득"

17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의 한 호텔에서 열린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피해자와 함께 말하기’ 기자회견에 고 박원순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자리가 마련돼 있다. 뉴시스

17일 오전 서울 중구 명동의 한 호텔에서 열린 ‘서울시장 위력 성폭력 사건 피해자와 함께 말하기’ 기자회견에 고 박원순 서울시장 성폭력 사건 피해자의 자리가 마련돼 있다. 뉴시스


17일 공개석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 피해자는 자신에 대한 2차 가해 논란을 일으킨 더불어민주당과 소속 의원들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특히 다음달 7일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민주당 후보가 당선되면 안 된다는 입장도 밝혔다. 예상보다 강한 발언에 여권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시민사회에선 "여당의 자업자득"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피해자 A씨는 이날 오전 서울 중구에서 열린 ‘멈춰서 성찰하고, 성평등한 내일로 한 걸음’ 행사에서 "지금 상황에서 본래 선거가 치러지게 된 이유가 묻혔다고 생각한다"며 "이번 선거는 처음부터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특히 "저의 피해 사실을 왜곡하고 오히려 상처를 준 정당에서 시장이 선출된다면 저의 자리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든다"며 민주당 낙선을 바란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A씨는 민주당에 대해 "소속 정치인들의 중대한 잘못이라는 책임만 있었던 게 아니다"라며 "'피해호소인'이라는 명칭으로 피해사실을 축소·왜곡하려 했고, '님의 뜻을 기억하겠다'는 말로 저를 압도했으며, 투표율 23%의 당원투표로 서울시장에 결국 후보를 냈고, 지금 선거캠프에는 제게 상처 줬던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조목조목 비판했다.

A씨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상임선거대책위원장과 박영선 서울시장 후보의 사과에 대해서도 "어떤 것에 대한 사과인지 명확히 짚어주지 않았다고 생각한다"며 "진정성도, 현실성도 없는 사과"라며 수용 거부 입장을 밝혔다. 법원과 검찰의 판단, 국가인권위원회 결정에서 A씨의 성추행 피해가 사실상 인정됐는데도 여당이 명확한 사과와 책임 있는 조치를 회피하고 있다는 시각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간 변호인단과 지원단체를 통해서만 입장을 밝혀 온 A씨가 4·7 보궐선거를 앞두고 공개적인 '정치적 메시지'를 던진 이유는 이번 선거가 박 전 시장, 오거돈 전 부산시장 등 여권 광역지자체장의 위력 성폭력 사건에서 비롯했음에도 정작 그에 대한 반성이나 제도 개선 논의는 뒷전인 상황을 피해 당사자로서 두고볼 수 없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아울러 서울시 공무원 신분인 자신이 여권 서울시장이 당선될 경우 일상의 안정을 되찾기 어려울 거라 판단했으리라는 분석도 나온다.

2차 가해 논란을 일으킨 여당 의원들이 박영선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선거캠프에 대거 포함된 것도 A씨 측의 적극적 대응을 불렀다는 지적이다. 캠프 공동선대본부장을 맡은 남인순·진선미 의원과 대변인을 맡은 고민정 의원 등은 여당 단체 대화방에서 A씨에 대한 호칭을 '피해호소인'이라 하자고 주장한 바 있다. 특히 여성운동가 출신인 남 의원은 박 전 시장 측에 성추행 피소 사실을 유출한 것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A씨는 기자회견에서 남 의원을 직접 거명하며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재차 비판하기도 했다. A씨는 "저를 피해호소인으로 명명한 의원들이 제게 직접 사과하도록 박영선 후보가 따끔하게 혼내달라"고도 했는데, 이는 박 후보가 야권 등의 공세에도 캠프 참여 의원들을 두둔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 점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여권 서울시장 후보 선출 과정에서 박 전 시장을 정략적으로 두둔하는 행태가 나타난 점도 피해자와 시민사회의 분노를 키웠다는 분석이다. 민주당 경선에 출마한 우상호 의원은 지난달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박원순 전 서울시장을 계승하겠다"고 썼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았고, 김진애 열린민주당 후보도 "인권위 조사 결과를 자세히 들여다봤지만 구체적으로 (범행 내용이) 어떤 부분인지 명확하지 않다"고도 했다.

정치권은 A씨가 선거 목전에 내놓은 여권 후보 비토 발언이 향후 판세에 어떤 영향을 줄지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일부 여권 지지자는 온라인상에서 A씨 발언을 '선거 개입'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반면 여성계를 비롯한 시민사회는 박 전 시장에 대한 여권의 눈치보기식 태도가 오히려 문제를 키웠다고 지적했다.

권김현영 여성주의 활동가는 "이번 선거는 피해자가 돌아갈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야 하는 선거였음에도, 여당은 적극적으로 후보를 내며 오히려 피해자를 궁지에 몰았다"고 말했다. 배진경 한국여성노동자회 공동대표도 "누군가에게는 서울시장 선거가 욕망과 패권의 자리겠지만 어떤 여성에게는 생존 문제"라고 말했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은 "말하기 권력을 독점한 정치권과 피해자 사이 힘의 불균형이 낳은 문제"라고 꼬집었다.

이승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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