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희빈 악녀 연기' 그녀는 50년 후 오스카 후보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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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빈 악녀 연기' 그녀는 50년 후 오스카 후보가 됐다

입력
2021.03.17 04:30
수정
2021.03.17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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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여우조연상 후보 오른 윤여정 55년 연기 인생

윤여정은 나이들수록 활동 폭이 넓어지고 있는 드문 배우다. 50대 중반 스크린에 복귀해 74세에 한국인 최초로 오스카 연기상 후보가 되는 역사를 만들었다. 연합뉴스

영화 ‘미나리’의 윤여정. 판씨네마 제공

‘한국의 메릴 스트립.’ 미국 연예전문 매체 할리우드 리포터가 15일 오스카 후보 발표에 대한 분석 기사에서 배우 윤여정(74)에 붙인 수식이다. 메릴 스트립(72)은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연기상 후보에 21차례나 지명되고 3차례 상을 받은 명우다. 스트립의 이름이 동원된 수식만으로도 윤여정에 대한 미국 내 평가를 가늠할 수 있다.

윤여정은 15일 102년 한국 영화 역사에 새로운 기록을 새겼다. 재미동포 2세 정이삭 감독의 ‘미나리’로 제93회 미국 아카데미영화상 여우조연상 후보에 한국 배우로는 최초로 지명됐다. 다음달 25일 시상식에서 수상하면 아시아계로는 1957년 ‘사요나라’의 일본계 미국 배우 우메키 미요시(1929~2007) 이후 두 번째다. 미국 한인 가정의 할머니 순자 연기로 55년 연기 역정의 클라이맥스를 70대 중반에 맞이하게 됐다.

윤여정은 영화 데뷔작 ‘화녀’에서 상경한 시골 여인을 연기했다.

①장희빈 악녀 연기로 스타

윤여정은 한양대 국문과에 재학하던 1966년 동양방송(TBC) 공채 탤런트로 연기에 입문했다. 등록금을 벌기 위해 방송국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시험에 응시해 보라는 권유를 받고 도전한 결과였다.

1971년 MBC로 옮겨 출연한 사극 ‘장희빈’으로 스타가 됐다. 길에서 욕을 들을 정도로 장희빈을 표독스럽게 연기했다. 같은 해 고 김기영(1919~1998) 감독의 ‘화녀’에 출연하며 눈길을 다시 모았다. 윤여정은 시골에서 상경한 명자를 연기했다. 식모살이하는 서울 중산층 가정의 유부남에게 겁탈당하고 강제 유산까지 한 후 광기를 부리게 되는 인물이었다. 윤여정은 이 영화로 대종상 신인상을 받았다.

날개를 단 듯한 연기 인생은 1973년 인기 가수 조영남과 결혼해 미국에서 생활하며 돌연 멈췄다. 11년 후 윤여정은 조영남과 이혼하고 카메라 앞으로 돌아왔다. 최근 미 일간 로스앤젤레스타임스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이혼 직후 윤여정은 공립학교에 보낸 두 아이를 키우려 최저 시급 2.75달러를 받으며 슈퍼마켓 계산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윤여정이 미국 생활을 마치고 돌아와 출연한 영화 ‘에미’(1985). 윤여정은 이후 ‘바람난 가족’에 등장하기 까지 영화와 인연을 맺지 못한다.

②“이혼해 국민 정서 해친다” 비난받아

복귀작은 1984년 MBC 단막극 ‘베스트셀러-고깔’이었다. 이후 스타 방송작가 김수현이 각본을 쓴 영화 ‘에미’(1985)에서 딸의 원한을 갚기 위해 인신매매 단원을 한 명씩 처단하는 중년 여인을 연기하는 파격을 보이기도 했다.

윤여정은 드라마 ‘사랑과 야망’(1987)으로 본격적으로 방송 활동을 재개했으나 대중의 눈은 예전 같지 않았다. 이혼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팽배했던 시기였다. 윤여정은 영화 ‘여배우들’(2009)에서 “이혼했을 당시 국민 정서를 해친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윤여정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듣기 싫으니 출연시키지 말라는 요청이 방송국에 들어오기도 했다. 이후 ‘사랑이 뭐길래’(1991~1992)와 ‘목욕탕집 남자들’(1995~1996), ‘카이스트’(1999~2000) 등 인기 드라마에 출연하며 중견 배우로 자리를 굳혔다. 주어진 역할은 주로 주인공의 이모 또는 고모 등이었다.

영화 ‘바람난 가족’의 출연진들. 윤여정은 외도를 아들과 며느리에게 당당히 밝히는 노년 여인을 연기했다. 명필름 제공

윤여정은 ‘돈의 맛’에서 성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폭력을 행사하기도 하는 재벌가 여인 백금옥을 연기했다.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③홍상수·임상수 감독 손잡고 세계로

방송국에서 붙박이로 일하던 그를 18년 만에 스크린으로 다시 불러낸 영화는 임상수 감독의 ‘바람난 가족’(2003)이다. 윤여정은 간암으로 사경을 헤매는 남편 앞에서 아들과 며느리에게 사귀는 사람이 있다고 태연하게 말하는 인물 홍병한을 연기했다. 출연 제의를 받은 여러 배우들이 손사래를 쳤던 역할이었다. ‘바람난 가족’을 제작한 심재명 명필름 대표는 “도회적이고 세련된 중년 여성 이미지가 역할에 맞아 출연 제안을 했다”며 “쿨하게 ‘집 인테리어 해야 해서 돈이 필요하다’면서 역할을 맡아줬다”고 말했다.

윤여정은 ‘바람난 가족’ 이후 TV보다 영화 쪽 활동이 잦아졌다. 홍상수ㆍ임상수 감독의 영화에 번갈아 가며 출연했고, 해외 인지도가 높아졌다. 2010년에 자신이 출연한 ‘하녀’(임 감독)와 ‘하하하’가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과 주목할만한 시선 부문에 각기 초청 받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2012년 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한 ‘돈의 맛’(2012)에서는 성욕을 거침없이 표현하는 재벌가 여인 백금옥을 연기해 화제를 모았다. 김효정(수원대 영화영상학부 객원교수) 영화평론가는 “윤여정은 나이 들면서 역할이 더 넓어지는 국내 유일의 배우”라면서 “할머니의 역할과 요부의 역할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배우는 거의 없다”고 평가했다.

윤여정은 캐나다 벤쿠버에서 애플TV플러스 드라마 ‘파친코’ 촬영을 마치고 15일 밤 귀국했다. 그는 16일 발표한 입장문을 통해 “여러분의 응원이 정말 감사하면서도 솔직히는 굉장히 부담스럽다”고 밝혔다. “올림픽 선수도 아닌데 올림픽 선수들의 심적 괴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고도 했다. 윤여정은 후보 지명만으로도 “너무 영광”이라며 “(후보) 다섯 명 모두가 각자의 영화에서 최선을 다했기에 상을 탄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여정은 마리아 바칼로바(보랏2)와 글렌 클로즈(힐빌리의 노래), 어맨다 사이프리드(맹크), 올리비아 콜먼(더 파더)과 트로피 경쟁을 한다.

라제기 영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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