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희수 전 하사 사망 소식에 추모와 애도 물결?"트랜스젠더,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게 해달라"
“이은용, 김기홍에 이어 변희수까지. 한 달 사이 세 명입니다. 얼마나 더 목숨을 잃어야 우린 혐오를 멈출까요.”
국내에서 처음으로 군 복무 중 성전환 수술을 받은 변희수(23) 전 육군 하사의 사망 소식이 알려진 다음 날인 4일. 한채윤 비온뒤무지개재단 상임이사는 긴 한숨을 내뱉었다.
변 전 하사 이전인 지난달 8일 이은용 작가도 숨진 채 발견됐다. 그 뒤 지난달 24일엔 전 중학교 음악교사였던 김기홍(38)씨도 숨진 채 발견됐다. 이 두 사람은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어디 숨어있다거나 주눅 들어 있던,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다.
이 작가는 연극판에서 재능있는 작가로 통했다. 지난해 트랜스젠더 문제를 다룬 연극 ‘우리는 농담이(아니)야’를 써서 동아연극상도 받았다. 그는 “트랜스젠더 작가로서 농담 같은 일들, 농담이 될 수 없는 일들이 있다는 걸 말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김씨도 마찬가지다. 남성 여성 이분법에 속하지 않는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로 스스로는 인권운동가라 부르며 제주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공동조직위원장을 맡기도 했고, 녹색당에서 두 차례나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다.
성소수자 운동가들, 인권운동가들은 그래도 자신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자신의 삶을 지켜내려는 사람들조차 벼텨내지 못하는 우리나라의 암울한 현실이 더 절망스럽다고 했다. 한채윤 상임이사는 “그래도 용기를 내 꿋꿋이 살아보려 한 세 사람이, 한 달 사이에 떠나갔다"며 "겉으론 괜찮아보여도 속으론 얼마나 힘들게 지내고 있는지,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의 무게까지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추모의 물결도 이어지고 있다.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트랜스해방전선은 변 전 하사를 기리며 "혐오와 차별을 이젠 참지 맙시다"라는 입장문을 냈다. 한국여성의전화도 "오늘의 참담함이 변화에 이를 수 있도록 그리하여 다양한 모든 존재가 존재 그대로 자유로울 수 있는 세상이 되도록 더욱 힘쓰겠다"는 성명을 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문제는 변 전 하사를 내치기에 급급했던 국방부에만 있는 게 아니어서다. 그저 성소수자 자체를 인정해주고 보호해주자고만 하면, 그 즉시 성소수자 되기를 조장하고 에이즈를 퍼트린다는 식의 해괴한 반대론이 등장한다. 표 계산하기 바쁜 정치인들은 여기에 영합하거나 외면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부추긴다.
사례야 차고도 넘친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1월 학생인권종합계획을 내놨다. ‘성소수자 학생 인권 교육’, ‘성소수자 학생 보호 및 지원’ 등의 내용이 처음 포함됐다. 역시나 서울교육사랑학부모연합 등 보수단체들이 ‘동성애와 좌편향 사상을 의무교육한다’며 집단적으로 반발했다. 지난 2일 서울시의회 교육위 전체회의에서 여당 소속인 김상진 의원조차 "동성애로 인해 성병이 만연한다든가, 에이즈 같은 것으로 정상적인 학생들이 피해를 보지 않겠느냐"는 혐오 발언을 내놨다. 곧 치러질 서울시장 선거도 마찬가지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퀴어 축제를 도심에서 보지 않을 권리'를 내세우더니 오세훈, 나경원 등 국민의힘 주자들도 '퀴어 축제 보는 걸 불편해하는 사람의 권리'를 거론했다.
사적인 영역에서도 이리저리 치일 성소수자들인데, 공적인 영역에서까지 이렇게 공개적으로 차별과 혐오와 모욕을 당한다. 어렵고 힘들더라도 조금 참고 견디면 그래도 조금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쉽게 품을 수 없다. 한채윤 상임이사는 “4월 서울·부산시장 선거는 물론, 이후 선거에서도 정치하는 사람들이 그저 보수 기독교 세력에서 어필하기 위해, 아니면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서 동성애나 퀴어축제 문제에 대해 아무렇게나 말해서는 안 된다"며 “그럴수록 성소수자들은 ‘우리는 존재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다’는 슬픔과 분노에 빠져들게 된다"고 말했다.
유승희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 사무국장은 “106명의 청소년 성소수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지금 학교 교육에서는 나를 미워하게 되니 성소수자인 나 자신을 긍정할 수 있는 교육을 해달라는 요청이 많았다"고 "단지 자신의 존재 자체를 인정만이라도 받고 싶다는 것이 그렇게 잘못된 일인가"라고 되물었다. 이날 서울시교육청 앞에 모인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목청 높여 요구한 것은 단 한 가지였다.
"내가 나 자신을 사랑하게 해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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