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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숲엔 잘난 것도, 못난 것도 없더라

입력
2021.03.04 22: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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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초. 뉴스1

복수초. 뉴스1


봄의 전령이라고 불리는 복수초가 1월 말 소백산을 비롯한 국립공원에 피기 시작했다는 소식에 이어 벌써 남쪽에서 꽃이 활짝 핀 산수유 사진을 지인이 보내왔다. 복수초는 복과 장수를 상징하고 눈과 얼음 사이를 비집고 핀다고 해서 얼음새꽃 또는 눈새기꽃으로도 불린다. 매년 복수초의 개화 소식은 쌀쌀한 날씨지만 봄이 문턱에 와 있음을 느끼게 한다.

봄을 맞이하는 숲은 꽤나 분주하다. 파스텔화같이 연한 녹색의 숲은 하루가 다르게 그 색깔이 짙어진다. 성질 급한 생강나무나 산수유는 잎도 나오기 전에 꽃을 먼저 내밀고, 철쭉과 진달래는 온 산을 물감 칠하듯 수놓을 것이다. 이런 숲의 모습을 눈썰미 좋은 어떤 시인은 ‘딸 부잣집의 아침’ 같다고 표현하였다.

이렇게 숲이 분주하기 시작하면 숲을 공부하는 나는 마치 워즈워스가 무지개를 보고 가슴이 뛰었다고 하듯이 무언가 모를 흥분에 쌓이곤 한다. 한겨울 동안의 죽음에서 부활하는 나무와 풀들, 그리고 이들 생명을 찬양하듯 온갖 아름다움으로 노래를 하는 새들, 봄 숲은 정말 희망으로 꽉 차 있다. 이 모든 것이 나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그래서 봄에 나는 이 숲과 자연의 향연을 즐기기 위해 쏘다님을 좋아한다.

모든 것이 다 그렇겠지만 봄은 나무와 숲에도 아름답고 중요한 시기이다. 한동안 정지됐던 삶이 다시 살아나는 시기가 바로 이때이다. 뿌리는 땅에서 물과 영양을 흡수하기 시작하고, 줄기는 힘차게 이 물과 영양을 나뭇가지 곳곳까지 운반하고, 가지에선 아기 손같이 연약한 연두색의 나뭇잎이 나오기 시작한다. 이런 힘찬 새 생명을 맞기 위하여 매년 나무는 죽음을 받아들인다. 죽음 없이는 새생명의 탄생이 없다는 진리를 나무는 몸소 봄에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봄 숲은 살아있는 철학 교과서이다.

몇 년 전부터 나무와 환경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목적의 교양과목을 강의하고 있다. 우리 국민의 90% 이상이 도시환경에서 살아가고, 또한 자연과 단절된 삶을 살고 있다. 따라서 심각하게 왜곡되고 불균형된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이 강의를 통해서 숲과 자연을 이해하고 보다 삶의 질을 누리는 지혜를 가르치기 위함이 목적이다. 이 강의의 첫 과제는 나의 나무를 찾으라는 것이다. 강의 첫 시간, 이 과제를 받은 대부분의 학생들은 매우 의아해한다. 그러나 기쁘게도 대부분의 수강생들은 한 학기 동안 자기가 찾은 나무와 교류하면서 자연과 자신의 상호 존중을 배우고 깨닫는다. 그러면서 인간도 자연의 한 부분임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 모두 봄의 숲에서 서로 존중하며 어울려 사는 법, 더 큰 희망을 위해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지혜를 배워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돈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는 물질만능주의의 시대에 살고 있다. 나무와 숲을 보는 관점도 그러하다.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나무이면 가치가 있고 그렇지 않으면 쓸모없거나 몹쓸 것으로 간주한다. 그런데 봄의 숲은 그렇지 않다.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고 때로는 경쟁해 가며 살아간다. 큰 나무 아래 살포시 피어있는 야생화도 나름대로의 아름다운 자태로 숲의 아름다움에 일조한다. 그래서 숲에서는 잘나고 못난 것도 없이 그 나름대로 조화롭게 살아간다. 봄 숲에서 나는 겸손을 배우고 다른 사람, 심지어는 다른 생물과 무생물에까지도 가치와 존중을 인정하는 깨달음을 얻는다.



신원섭 충북대 산림학과 교수ㆍ전 산림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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