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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철' 배종대 감독 "배우의 얼굴 기억 남는 영화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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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과 철' 배종대 감독 "배우의 얼굴 기억 남는 영화 만들고 싶다"

입력
2021.02.28 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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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빛과 철'의 배종대 감독. 찬란 제공

영화 '빛과 철'의 배종대 감독. 찬란 제공


“제 영화에는 인물이 가장 먼저입니다. 인물을 보여주기 위해 100분의 이야기를 포장하는 거죠. 고교 시절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됐던 것도 시작은 배우를 좋아하게되면서였거든요. 인물의 감정을 놓치지 않으면서 장르적으로 몰입할 수 있는 영화를 찍고 싶었습니다.”

영화 ‘빛과 철’이 개봉(17일)한 직후 만난 배종대 감독은 “스토리보다 캐릭터가 먼저”라고 말했다. ‘빛과 철’도 캐릭터에서 시작한 영화였다. 이 영화는 남편들이 낸 교통사고로 만나게 된 두 여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가해자의 가족이라는 죄책감에 시달리는 희주(김시은)와 식물인간 상태로 누워 있는 남편을 간호하며 힘겨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영남(염혜란). ‘빛과 철’은 교통사고를 둘러싸고 숨겨져 있던 사실을 두 인물이 조금씩 알게 되면서 겪게 되는 갈등에 초점을 맞춘다. 영화에서 두 인물은 상반된 입장에 있는 상대는 물론 각자의 남편이 말하지 않았던 비밀과 맞닥뜨리며 갈등에 빠진다.

영화 개봉 후 뛰어난 연기를 보여준 두 배우 염혜란 김시은에 대한 칭찬은 물론 밀도 높은 연출력을 보여준 배 감독에 대한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다소 어둡고 무거운 작품인 탓인지 27일까지 누적 관객수가 8,000명 정도에 그쳤지만 영화를 본 관객들은 높은 평가를 내리고 있다. 소재 자체는 비대중적일 수 있어도 미스터리 구조로 전개되는 플롯은 웬만한 상업영화보다 흡인력이 높기 때문이다. 배 감독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관객이 유추하면서 영화에 몰입해 동참할 수 있는 장르적 재미가 있어야 관객과 소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영화의 시작은 역시 인물이었다. 배 감독은 자신의 첫 연출작을 준비하면서 같은 일을 겪은 양 극단에 있는 두 여자가 만나서 부딪히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두 인물을 만나게 하게 위해 설정한 것이 교통사고였다. 전혀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던 두 인물을 만나게 하기 위해선 교통사고가 적절한 장치라고 판단해서였다. 영화는 희주와 영남 간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파견노동자, 산업재해 등 노동 문제까지 다루며 인간을 기계 부품처럼 보는 철의 세계에 인간성이라는 빛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배 감독은 “처음에는 같은 일을 겪은 양 극단에 있는 두 인물이 만나서 부딪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면서 “시나리오를 쓰면서는 두 인물이 어떻게 만나게 할지 고민했고 생판 다른 삶을 살던 두 사람이 부딪히게 할 수 있는 계기를 생각하다 운전하면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교통사고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영화 '빛과 철'. 찬란 제공

영화 '빛과 철'. 찬란 제공


영화의 비밀은 사고의 미스터리에서 출발해 ‘마음의 미스터리’로 이어진다. 사고를 당하기 전 두 남편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희주와 영남은 자신이 알고 있다고 믿었던 남편의 속내를 뒤늦게 알게 되면서 혼란에 빠진다. 장치로 시작했던 미스터리는 자연스럽게 드라마와 인물 안으로 파고든다. 배 감독의 설명에 따르면 “장르적 미스터리에서 드라마의 미스터리로, 사건의 미스터리에서 감정의 미스터리로 바뀌는 것”이다. 그는 “미스터리 구조를 장르적 재미나 몰입만을 위해 사용하지 않는 것이 목표였다”고 했다.

영화 속 두 캐릭터는 배우들의 열연에 힘입어 실존 인물들처럼 살아 움직인다. 염혜란과 김시은에게서 최고의 연기를 뽑아내기 위해 배 감독은 촬영 전 두 배우가 만나지 않도록 했고 각 배우에 맞는 소통 방식을 택했다. “낯선 두 인물이 부딪혔을 때 감정을 끌어내고 싶어서 촬영 전 배우들끼리 모여서 하는 대본 리딩도 하지 않았어요. 영화 중반 영남이 희주를 만나는 장면을 찍기 전까진 두 배우가 한 번도 만나지 않도록 했죠. 염혜란씨는 베테랑이어서 첫 테이크에서의 연기가 좋아도 같은 연기를 다시 해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럴 때마다 매번 미묘하게 다른 연기를 보여주더군요. 김시은씨는 천천히 예열되는 배우여서 여러 테이크를 찍었죠.”

‘빛과 철’이라는 제목은 원래 가제였다고 한다. 대중을 끌어당기기 어려운 제목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영화를 촬영하며 가제는 정식 제목이 됐다. “나중에 바꿀 생각이었어요. 다가가기 어려운 제목이잖아요. 그런데 차차 마음에 들기 시작했어요. 환하고 따뜻한 느낌의 빛과 차갑고 육중하고 날카로운 느낌의 철이 부딪히는 게 영화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헤드라이트가 서로를 비추다 차가 충돌하는 교통사고를 표현하기도 해서 영화를 잘 반영해주겠다는 확신이 들었죠.”

‘빛과 철’은 배종대 감독의 첫 번째 장편영화다.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됐던 단편 ‘고함’ 이후 14년 만이고, 영화아카데미 졸업작품이었던 단편 ‘모험’ 이후 딱 10년 만이다. “상업영화 현장에 딱 2편 참여해보고 나서 내 영화를 찍어야겠다”고 생각던 그는 그 사이 ‘시체가 돌아왔다’ ‘곡성’에서 조연출을 했다. 배 감독은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과 실제는 크게 달랐다”며 “상업영화라고 해도, 거장 감독이라 해도 할 수 있는 일에 제약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배 감독은 고교 시절 ‘대부2’의 로버트 드 니로에 빠져들면서 영화에 관심을 갖게 됐다. 본격적으로 영화를 챙겨보면서 좋아하게 된 감독도 인물(특히 여성 캐릭터) 중심의 영화를 만들었던 일본 감독 나루세 미키오다. 나루세 감독의 영화 하면 다카미네 히데코의 다채로운 얼굴이 바로 떠오르듯 배 감독은 “10년 전에 봤어도 배우의 얼굴과 진실된 모습이 기억에 남는 영화가 좋은 영화라 생각한다”고 했다. 그가 앞으로 만들고 싶은 영화도 바로 그런 영화다.

‘빛과 철’은 작가주의적 고집을 보여주는 독립영화지만 상업영화 감독으로서 가능성을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차기작은 아직 결정하지 못했단다. “여러 편의 시나리오를 썼지만 오랜 시간 ‘빛과 철’에 매달리며 끝내고 보니 시선이 많이 달라졌어요. 예전에 썼던 게 더 이상 흥미롭지 않더라고요. 전엔 다양한 걸 하고 싶었죠. 그런데 이제 내가 하고 싶은 것과 잘할 수 있는 것을 구분하게 됐어요. 그 접점을 찾게 된 것 같아요. 제 판단이 맞는지는 '빛과 철'을 본 관객들의 반응이 말해주겠죠.”

고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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