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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진통일'의 허풍 뒤에는...

입력
2021.02.25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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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 덜레스의 '벼랑끝 전술'

이승만의 '북진통일'의 큰소리 뒤에는 그의 조지워싱턴대 동창인 냉전의 지휘자 존 덜레스 미국무장관이 있었다. 위키피디아.

이승만의 '북진통일'의 큰소리 뒤에는 그의 조지워싱턴대 동창인 냉전의 지휘자 존 덜레스 미국무장관이 있었다. 위키피디아.


'냉전의 설계자' 딘 애치슨(Dean Acheson, 1893~1971)의 바통을 이어받은 미 국무장관(1953~1959년 재직) 존 포스터 덜레스(John Foster Dulles, 1888.2.25~1959.5.24)는 냉전의 뼈대를 구축했다. 태평양 집단방위동맹 동남아시아조약기구(SEATO)와 오세아니아 안전방위조약(ANZUS조약)을 기획했고, 1954년 3월 한미상호방위조약과 그해 7월 이승만-아이젠하워 한미정상회담, 한일회담을 막후에서 지휘했다.

1949년부터 하야 직전까지 '북진통일'을 주문처럼 읊은 이승만의 공허한 자신감의 바닥에도, 그의 조지워싱턴대 동창 덜레스가 있었다. 종교적 열정의 반공주의자인 덜레스는, 1947년 외교관 조지 캐넌이 주창한 이래 미국 외교정책의 거푸집이던 소비에트 봉쇄전략(containment strategy)을 탐탁치 않아 하며, 소비에트가 장악한 지역까지 장판을 말아 걷어 내듯 해방시켜야 한다는 이른바 '롤백 전략(rollback strategy)을 1940년대 말부터 주장했다.

장로교 목사의 아들인 그는 미국무장관을 지낸 조부(John W. Foster)와 삼촌(Robert Lansing)의 영향으로 청년기부터 외교 감각을 익혔다. 프린스턴과 조지워싱턴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31세때인 1919부터 1차대전 베르사유 평화회의의 법률고문으로 외교무대에 섰고, 윌슨 정부의 전쟁배상위원회에도 참여했다. 공화당 정치인들의 외교정책을 자문하며 경력을 쌓은 그는 1949년 뉴욕주 연방상원의원을 거쳐 1953년 아이젠하워의 국무장관이 돼 적·청의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굵은 선들을 그어 나갔다. 동생 앨런(Allen)이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된 것도 1953년 2월이었다. CIA가 반공을 명분으로 중남미에 저지른 더러운 사건들에도 그는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의 키워드는 이른바 '벼랑끝(brinkmanship) 전술'. 그는 "전쟁 직전까지 바짝 다가설 수 있는 능력"을 추구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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