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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드라마·예능에 주류 PPL 허용... '술 권하는 TV' 괜찮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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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드라마·예능에 주류 PPL 허용... '술 권하는 TV' 괜찮나

입력
2021.02.26 04:30
수정
2021.02.26 17:38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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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통신위원회가 그동안 금지됐던 주류의 PPL을 밤 시간대 드라마·예능 프로그램에서 풀 것으로 예고하자 술 권하는 TV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2018년 방송된 tvN 예능 '인생술집'의 한 장면. 한 출연자가 자신이 광고하는 특정 주류를 공공연하게 홍보하고 있다. 출처 미디어 음주장면 사례집

방송통신위원회가 그동안 금지됐던 주류의 PPL을 밤 시간대 드라마·예능 프로그램에서 풀 것으로 예고하자 술 권하는 TV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2018년 방송된 tvN 예능 '인생술집'의 한 장면. 한 출연자가 자신이 광고하는 특정 주류를 공공연하게 홍보하고 있다. 출처 미디어 음주장면 사례집


'광고주님, 보고 계신가요?'라는 자막이 깔린다. 2018년 방송된 tvN '인생술집'의 한 장면. T맥주의 실제 광고 모델인 한 배우가 "이 술은 100년 전통이라 섞으면 맛이 없어"라면서 다른 출연자들에게 따라준다. 자신이 광고하는 제품을 대놓고 방송에서 홍보하는 셈이다.

TV 속 음주 장면은 흔하디 흔하다.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의 경우 한 회당 술 마시는 장면은 한 번 이상(1.1회) 나오고 있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지난해 1~11월 청소년 시청률 상위 10위 내 지상파, 종편·케이블의 드라마·예능 220개 프로그램을 모니터링한 결과다. 여기다 더해 이젠 주류의 가상·간접광고(PPL)까지 봐야 할지 모른다. 술 권하는 TV, 이대로 괜찮을까.


심야 주류 PPL 허용... 누굴 위한 정책인가

방송통신위원회는 밤 시간대 TV 드라마·예능에서 주류 PPL을 허용하는 내용이 포함된 방송법 시행령 개정안을 지난 20일 입법예고했다. 현재 방송광고 시간제한 품목인 주류는 오후 10시 이후 17도 미만인 경우만 광고가 가능하다. PPL은 모든 시간대에서 일체 금지다. 앞으로 광고가 가능한 시간에 한해 PPL도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미디어 환경 변화로 온라인 광고와의 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방송에만 적용되고 있는 엄격하고 낡은 규제를 과감하게 풀겠다는 취지다.

주류광고나 미디어 속 음주 장면은 부지불식간에 음주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심어주고, 특히 청소년의 모방을 부를 수 있다는 지적이 계속돼 왔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광고라는 인식 없이 무의식 중에 영향을 미칠 PPL은 그 폐해가 더 크다. 술에 자꾸 노출되면서 늘어나게 될 청소년 음주와 국민 건강에 대한 고려가 안보인다. 방송사 재정이 어렵다는 이유로 술 PPL을 허용하는 게 정책당국의 결정으로 옳으냐"고 꼬집었다.


지난해 방송된 SBS 드라마 '앨리스'에서 엄마가 고등학생 아들에게 술을 권하는 장면. 방송 캡처

지난해 방송된 SBS 드라마 '앨리스'에서 엄마가 고등학생 아들에게 술을 권하는 장면. 방송 캡처


미디어 노출 많을수록 음주 더 빨리, 더 많이 한다

최근 몇 년 새 TV 속 술 광고는 더 빈번해졌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에 따르면 TV를 통한 주류광고 송출 횟수는 2012년 21만1,136회에서 2019년 68만5,791회로 3배 이상 늘었다. 술과 함께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가 정한 1군 발암물질인 담배가 2004년 일찌감치 방송에서 퇴출된 것과 비교하면 술에는 사실상 제한이 없는 셈이다. 여전히 술에는 관대한 문화도 한몫한다. 이를 미디어가 조장한다는 게 전문가 지적이다.

실제로 미디어로부터 음주 노출이 잦을수록 음주 시작 연령이 빠르고, 빈도도 증가한다는 수많은 연구 결과가 있다. 주류 광고 비용이 늘수록 알코올 소비량이 늘고, 무엇보다 청소년과 여성의 경우 영향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당장 음주를 하게 만들지 않더라도 음주에 대한 긍정적 기대를 심어줘 성인이 됐을 때 음주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도 있다.

주류 광고 규제가 국내외 추세인데... "음주 장면도 제한해야"

주류 광고 규제를 강화하는 건 세계적 흐름이다. 더 나아가 주류 광고에는 연예인의 출연을 금지(독일, 이탈리아 등)하거나 소셜미디어에서의 주류 광고를 금지(핀란드)하는 나라도 있다. WHO는 매체를 통한 간접 마케팅 등 주류 마케팅 전반에 대한 국가 차원의 규제를 마련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주류 광고뿐 아니라 음주 장면에 대해서도 규제하라는 게 국내 전문가들의 요구다. 반드시 필요한 장면이 아니라면 음주 장면을 넣지 않고, 음주를 긍정적으로 묘사하지 않는 등 내용의 가이드라인이 2017년 마련됐지만 유명무실한 탓이다.

이상규 한림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중독포럼 공동대표)는 "우리나라는 주류 광고에 대한 규제가 명확치 않을 뿐더러 효과적이지 않아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게 그간 학계와 정책당국의 방향이었는데 방통위가 찬물을 끼얹었다"며 "주류 광고뿐 아니라 음주 장면에 대한 제도적 개입 역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개정안은 다음달 3일까지 의견 접수를 받는다. 법제처 심사와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이르면 6월 시행된다.

권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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