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한파’ 여파로 430만 가구를 암흑으로 몰아 넣었던 미국 텍사스주(州)의 정전 사태가 조금씩 잦아들고 있다. 후유증은 여전하지만 전기 공급이 재개되면서 복구 작업이 빠르게 진행 중이다. 그러나 지난해 여름 캘리포니아와 올 겨울 텍사스, 반년을 두고 발생한 대규모 정전 사태는 재생에너지와 화석에너지 모두 변화무쌍한 기후위기에 얼마나 취약한지를 여실히 드러냈다는 평가다. 미국의 허술한 전력 인프라가 노출되면서 친(親)환경 에너지 전환을 선언한 조 바이든 행정부의 고민도 깊어지게 됐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21일(현지시간) “텍사스와 캘리포니아는 20년간 막대한 비용을 쏟아 부어 서로 다른 전력망을 구축했지만, 어느 쪽도 기후 변화에 맞설 수 없었다”고 단언했다. 이번엔 텍사스가 한파에 전기가 동 났으나, 지난해 8월엔 캘리포니아가 무더위에 당했다. 캘리포니아는 당시 40도까지 치솟는 폭염으로 냉방 수요가 급증하면서 전력 시스템에 과부하가 걸렸다. 급기야 주 당국은 ‘블랙아웃(대정전)’을 막기 위해 강제로 전기를 끊는, 순환정전까지 실시했고, 같은 달 14,15일 이틀 동안 74만 가구가 어둠 속에서 냉방 장치의 도움 없이 더위와 싸워야 했다.
혹한과 폭염이란 정전 원인뿐 아니라 두 지역은 미국 내 기후정책에서 정확히 대척점에 있다. 캘리포니아는 친환경 선두주자다. 2030년까지 태양광, 풍력 등의 공급 비중을 60%로 높이고 2045년부터는 재생에너지만으로 전력 수요를 감당한다는 방침을 법제화했다. 지난해 수치만 봐도 지역 전체 전력 공급의 4분의1이 태양광에서 나왔다. 하지만 친환경도 예상치 못한 기후변화에는 속수무책이었다. 작년 폭염 당시 주 전력 관리ㆍ감독기관이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저녁이 돼도 기온이 내려가지 않아 냉방 수요는 여전한데, (해가 떨어지면서) 태양광 발전량이 갑자기 줄어 전력 공급에 문제가 생겼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전력의 25%를 변동성이 큰 태양광에 의존하면서도 단점을 보완해 줄 시스템을 전혀 구비하지 못한 탓이다.
그렇다고 화석에너지가 기후변화에 더 강한 것도 아니다. 텍사스는 겨울 평균기온이 영상권에 머무는 지역이지만, 올해는 영하 20도 가까이 떨어지면서 정유 공장과 가스 수송관로 등이 꽁꽁 얼었다. 여기에 원자력발전소 4곳 중 1곳도 맹추위에 가동을 중단해 극심한 전력난을 불렀다. 주 전력망을 운영하는 전기신뢰성위원회(ERCOT)는 “정전 사태 주원인은 천연가스ㆍ석탄ㆍ원자력발전소 고장에 있다”고 결론 내린 상태다. 결국 어떤 에너지원을 사용하느냐도 중요하나, 비상 사태를 감안한 기간망의 효율성을 높이고, 예비 전력을 확보하는 일이 보다 시급한 해결과제라는 의미다.
바이든 행정부도 임기 초반 돌발 숙제를 떠안게 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기후변화 대응책의 하나로 2035년까지 미국 내 탄소 배출 ‘제로(0)’를 선언한 상태다. 그러나 정전 대란으로 이어진 두 사례에서 보듯, 에너지 공급망을 다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제시 젠킨스 미 프리스턴대 교수는 CNN방송에 “통상 여러 에너지원을 이용하는 시스템이 보다 탄력적”이라며 “한 가지 에너지에 매몰되거나, 무작정 버리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