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움 가득한 1년, 잘 버텨냈다" 코로나 학번의 씁쓸한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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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아쉬움 가득한 1년, 잘 버텨냈다" 코로나 학번의 씁쓸한 성장

입력
2021.02.22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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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자연대 20학번 코로나 극복수기 모집
"코로나 틀에 날 가두지 말고 발전하려 했다"
"주어진 환경 적응, 그게 가져야 할 자세였다"

15일 이화여대 정문에 외부인 출입금지 안내문이 놓여있다. 연합뉴스

"인생은 파도인 것 같습니다. 자기가 뭘 한다고 생각하잖아요. 내가 뭔가를 이룬다고 생각하지만, 생각해 보면 파도 위에 떠있는 쪽에 가까운 것 같지 않나요."

예능 프로그램을 시청하던 서울대 20학번 김지수(가명)씨는 싱어송라이터 장기하의 이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지수씨는 2021년이 오는 게 반갑지 않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송두리째 망가진 지난해 대학교 1학년 생활 때문이었다. 대학 합격통지서를 받았을 때만 해도, 아기자기한 캠퍼스 구경과 지루하기로 소문난 축제까지 여러 모습을 상상했는데 1년간 현실이 된 건 하나도 없었다. 우울했던 지수씨에게 장기하의 말은 위로로 다가왔다. 그리고 이렇게 자신을 평가했다.

"그래,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파도가 그렇게 쳤을 뿐이고, 나는 파도에 따라 흔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무너지지도 포기하지도 않고 2020년을 버텨냈다."

21일 서울대 자연과학대학(학장 이준호)은 20학번을 대상으로 진행한 '코로나19 극복 수기 공모전'에 선정된 6편의 당선작 일부를 공개했다. 공모전은 이달 들어 두 차례 치러진 '2020학번의 날' 행사에서 사전 공모 방식으로 진행됐다. 자연대는 코로나19 영향으로 학교를 찾지 못한 예비 2학년생을 위해 이달 16일과 19일 대면 오리엔테이션(OT) 행사를 개최했다(관련기사 ☞ "코로나 학번을 구하라"... 서울대, 20학번 '대면 OT' 추진, '새내기' 못 누린 20학번 위해 '헌내기' OT 열어준 서울대).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이 16일 오후 온라인 수업으로 신입생 시절을 보낸 20학번 2학년 재학생들을 위한 OT 행사(20학번의 날)를 개최했다. 재학생들이 행사의 첫 순서로 계획된 성격기질 검사를 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꿈에 그리던 대학 입학, 그러나 현실은 '집콕'

수기에는 지난해 1년간 20학번들이 경험한 실망감이 뚝뚝 묻어 나온다. 20학번 조영욱(가명)씨는 대학 합격 소식을 듣곤 하늘을 나는 것만 같았다. 동기랑 선배들을 처음 만나는 새내기 배움터(새터)부터 캠퍼스 라이프, 대학 축제, 동아리 활동은 물론 설레는 미팅과 캠퍼스 커플(CC)까지. 상상만으로도 웃음이 만개해 잇몸이 마를 정도였다. 하지만 새터 취소를 시작으로 개강 연기, 전면 비대면 수업이 연이어 닥쳤다. 영욱씨는 "새터 취소는 악몽의 시작에 불과했다. 수많은 로망들이 어느 하나도 보장할 수 없게 됐다"고 회상했다.

처음 접해 보는 비대면 수업의 혼란스러움도 고스란히 담겼다. 프로그램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몰라 자질구레한 문제들이 계속 발생했고, 수업 흐름은 수시로 끊겨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 비대면 수업이 익숙해질 때쯤 강지우(가명)씨에겐 또 다른 위기가 찾아왔다. 집에 틀어박혀 수업 듣고, 과제 수행하고, 시험 공부하는 쳇바퀴를 돌다 보니 정신과 육체가 점점 지쳐갔다. 지우씨는 21학번 후배들을 향해 "나처럼 투철한 집콕 생활을 계획할 사람이 있다면, 꼭 산책이라도 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변함 없는 환경, 결국 적응은 사람의 몫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이 16일 오후 온라인 수업으로 신입생 시절을 보낸 20학번 2학년 재학생들을 위한 OT 행사(20학번의 날)를 개최했다. 행사에 참석한 재학생들이 손 소독을 하고 있다. 이한호 기자

그러나 20학번들이 코로나19와 현실을 탓하며 낙담만 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변화한 환경에 적응하려고 애썼다. 이성희(가명)씨는 코로나19 확진자가 감소 추세를 보이던 지난해 여름, 탐조동아리원들과 함께 섬으로 야생조류 탐사를 떠났다. 같은 꿈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며 오랜만에 삶의 동력을 얻었다. 확진자가 다시 치솟으며 활동은 멈췄지만, 여름에 얻은 소중한 경험을 바탕으로 삶의 자세를 바꿔 나갔다. 성희씨는 "코로나 상황이란 틀에 나를 가두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며 "혼자서 새로운 것을 공부할 기회라 생각하고, 비대면 수업 때도 적극적으로 질문하며 생각을 행동으로 옮겼다"고 했다.

영욱씨도 어색한 비대면 상황을 일상으로 녹이려 했다. 그는 "환경이 내가 원하는 대로 바뀌지 않으니, 결국 현재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라고 생각한다"며 "시도조차 해보지 않고 포기하기 위해 대학에 온 건 아니지 않는가"라고 결론 내렸다. 씁쓸한 현실이 만들어낸 한 뼘의 성장이었다.

이들은 담담한 말투로 자신의 2020년 스토리를 풀어냈지만, 하나같이 '코로나가 사라진 세상'을 간절히 꿈꿨다. 지수씨는 "올해 1학기도 비대면으로 치러질 테지만, 조금만 더 버텨내면 캠퍼스에서 수업 듣고 사람을 만나는 날이 오지 않겠는가"라며 "그 날이 돌아온다면 모든 것들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오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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