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기증 유가족에 연하상자 "남편이 보낸 선물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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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장기기증 유가족에 연하상자 "남편이 보낸 선물 같아요"

입력
2021.02.17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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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선 최초로 선보인 연하상자
마스크·감사편지·떡국떡 등 동봉
"기증인이 전한 선물 같아" 감동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 김일만(76)씨, 강호(67)씨가 지난 설 연휴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로부터 연하상자를 받고 활짝 웃고 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명절이면 하늘나라에 계신 아빠가 더욱 생각나요."

2012년 갑작스럽게 쓰러져 뇌사 상태에 빠진 고(故) 이현규씨. 깨어날 가망성이 없다는 의료진 이야기에 가족들은 장기기증을 결정했고, 그는 생의 마지막 순간 신장, 간, 각막 등을 기증하면서 5명에게 생명을 나눴다. 당시 초등학교에 갓 입학했던 이씨의 첫째 딸 이규린양은 이제 18세가 됐다. 학창시절 대부분을 아버지 없이 보낸 이양은 "졸업식 같은 가족행사나 설날, 추석과 같은 명절에 아버지 빈 자리가 크게 느껴진다"고 했다.

허전한 명절... 연하상자로 빈자리 채워

민족의 대명절인 설날, 먼저 떠난 가족의 빈자리를 크게 느낀 사람은 이양뿐만이 아니다. 많은 장기기증 유가족들이 명절이면 기증인의 부재를 더욱 크게 느낀다. 예전엔 떠나간 기증인을 함께 추억할 친척이라도 만날 수 있었지만,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그것마저도 어려웠다.

이에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는 유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작은 선물을 준비했다. 새해 맞이 연하상자다. 연하상자는 떡국떡, 종합 비타민제, 핫팩과 마스크 등으로 채워졌고, 장기기증을 통해 새 생명을 얻은 이식인들의 감사편지도 동봉됐다. 이는 국내에선 처음으로 선보이는 행사였다.

남편 그리운 박미정씨 "하늘나라서 온 선물"

첫번째 연하상자를 받은 주인공은 2004년 남편을 떠나보낸 박미정(59)씨다. 박씨의 남편인 고(故) 오철환씨는 뇌사로 세상을 떠나면서 신장, 간, 췌장 등을 기증해 4명의 생명을 살렸다. 박씨는 뜻밖의 선물을 받자마자 눈물을 훔치며 본부에 감사의 뜻을 전했다.

박씨에게 연하상자는 단순한 선물 그 이상의 의미로 다가왔다. 하늘나라에서 남편이 보내준 선물 같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박씨는 "남편이 떠날 당시 초등학생이던 아이가 벌써 서른이 됐지만 그리움은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남편이 나한테 설 잘 보내라고 보내준 선물 같아 감동을 받았다"고 밝혔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에서 뇌사 장기기증 유가족을 위해 보낸 연하상자 키트. 감사 편지와 함께 마스크, 떡국떡, 종합 비타민제 등이 들어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아들 떠나보낸 김일만씨 "온기 느껴져"

연하상자는 아들을 일찍 떠나보낸 아버지에게도 도착했다. 2007년 2월 9일, 설 연휴를 한 주 앞두고 보석세공사였던 29세 김광호씨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마지막 순간 장기를 기증하며 장기이식 대기 환자 4명의 목숨을 살렸다. 아들과 단둘이 의지하며 살던 김씨의 아버지 김일만(76)씨는 이후 홀로 남겨졌다.

그런 김씨에게 연하상자는 아들을 추억할 수 있는 소중한 선물이 됐다. 김씨는 "설 연휴쯤이 아들 기일이라 항상 설날이면 아들이 사무치게 그리웠다"며 "연하상자와 편지 덕분에 오랜만에 온기를 느꼈다"고 전했다. 특히 김씨는 "요즘은 코로나19 때문에 다른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들과도 만날 수 없어 외로웠다"며 "아들의 나눔을 기억해주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 위로가 된다"고 말했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측은 "장기기증인 유가족 예우를 위해 연하상자 프로그램 같은 다양한 사업들을 지속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최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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