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염재생산지수’(감염자가 평균적으로 감염시킬 수 있는 2차 감염자 수). ‘R값’으로도 불리는 이 말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매일 발표되는 코로나19 정부 브리핑을 들으며, 사람들은 R값이 1보다 높은가, 낮은가에 촉각을 세우며 팬데믹 확산세를 예측한다. 우리 일상을 좌우하는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 조정, 집단면역이 형성되는 백신 접종 규모를 판단하는 데도 R값은 필수적인 지표다.
R값의 뿌리는 수학이다. 영국 의학자 로널드 로스가 말라리아의 원인인 모기 개체 수를 어느 정도만 줄여도 전염을 꺾을 수 있다는 가설을 내놓은 게 시작이었다. 이후 수학적 사고와 모델은 인류의 감염병을 제어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기 시작한다. 팬데믹뿐이랴. 금융시장, 연쇄 폭력 사건, 가짜뉴스 등 세상만사를 전염의 원리로 설명하는 데도 수학이 동원된다고 책은 말한다.
전염의 원리에 대입하니 뻔한 분석도 흥미롭게 다가온다. 사람들은 금융시장에서 가격이 오르면 무조건 좋다고 믿는다. 하지만 수학 모델은 금융 자산의 상승과 몰락 역시 전염병의 전형적 성쇠와 똑같다고 본다. 전염병 유행이 나쁜 소식이듯, 주가의 급등 역시 ‘좋지 않은’ 버블의 신호로 볼 수 있다는 해석이다.
미국 시카고에선 연쇄 폭력 사건을 해결하는 데 ‘천연두 퇴치 메커니즘’을 썼다. 질병이든 폭력이든 노출된 뒤 증상이 나타날 때까지 잠복기가 있다는 점에 착안해, 폭력 용의자들 주변의 인물들을 집중 관리하는 ‘포위 접종’ 방식을 통해 폭력 사건 확산을 막은 경우다. 저자는 가짜뉴스를 퍼트리는 사람을 개별적으로 추적해 해로운 콘텐츠를 차단하는 것 역시 일종의 예방접종에 빗댈 수 있다고 설명한다.
수학 모델이 완벽하더라도 현실은 그걸 훌쩍 뛰어넘을 만큼 복잡하다. 예외는 언제나 발생한다. 저자 역시 공통된 패턴과 법칙을 찾아낼 수는 있지만, 매몰돼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럼에도 전염의 원리로, 세상을 새롭게 해석하는 틀을 찾아낸 건 이 책의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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