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살 여가부, 여성마저 70% "잘못 운영되고 있다" 애증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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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살 여가부, 여성마저 70% "잘못 운영되고 있다" 애증의 시선

입력
2021.01.27 04:30
수정
2021.01.27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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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못' 낙인 찍힌 여가부

편집자주

2021년 1월 29일은 여성가족부 출범 20년이 되는 날입니다. 2001년 출범한 여성가족부는 21세기의 상징이지만, 그 상징성 때문에 무용론, 폐지론에도 시달려 왔습니다. 여성가족부의 미래를 전망해봅니다.

서울시장위력성폭력사건공동행동 관계자들이 25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고 박원순 전 시장의 성폭력 사건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2021.01.25 이한호 기자 han@hankookilbo.com


지난 25일 국가인권위원회는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건에 대해 "성희롱에 해당한다"는 결론을 발표했다. 지난해 7월 발생 이래 반년 넘게 한국 사회를 충격과 혼돈에 빠뜨렸던 사안에 대해 국가기관 최초로 성폭력을 인정하는 입장 표명이었다. 하지만 "여성·아동·청소년에 대한 폭력피해 예방 및 보호"를 설립목적으로 내걸고 있는 여성가족부의 자리는 흐릿하다.

사건 당시 이틀간 서울시를 현장 점검하고 서울시에 "재발방지 대책에 지적사항을 반영해 제출하라"고 요청한 것이 그나마 가장 직접적인 대응이었다. 아니 그게 전부였으면 차라리 나았을지 모른다. 박 전 시장 사건 등으로 인해 치러지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두고 "국민 전체가 성인지 감수성에 대해 집단학습할 수 있는 기회"라 일컬음으로써 엄청난 비판과 질타를 받았다.

29일로 여가부는 출범 20년을 맞는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2001년 1월 29일 102명 규모로 여성부를 만든 게 출발점이었다. 여가부로, 여성부로 이름을 바꿔달기도 했지만 20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제대로 자리를 잡았다는 평가는 드물다. 그보다 툭하면 '무용론' '폐지론'에 휩싸였다.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과 2018년 미투 운동을 거치며 ‘페미니즘 리부트’란 말이 나올 정도로 한국 사회에서 젠더 이슈가 폭발적으로 터져나왔지만, 여성가족부가 이 문제들을 제대로 끌어안았다고 여기는 이들은 드물다. 그러다 보니 '마초 남성'보다 2030 여성들이 오히려 여가부에 더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있다. 한 마디로 '일못(일 못하는)' 여가부라는 것이다.


2018년 7월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역 일대에서 진행된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에서 한 참가자가 피켓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이혜미 기자


'일못' 여가부 ... "이래서 나는 실망했다"

그래서 여성계 전문가들에게 여가부의 최근 행보 중 가장 실망스러웠던 일에 대해 물었다.

장지유 여성의당 공동대표는 '정현백 전 장관 경질'을 꼽았다. 정 전 장관은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자처한 문재인 정부의 첫 여가부 장관이었다. 어찌 보면 정권 초 뭔가 힘을 발휘할 수 있을 위치였다.

하지만 장관 취임 초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 경질을 요구한 뒤 오히려 정 전 장관이 경질 압박을 받았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여성계가 거세게 반발했을 때, 여가부가 논평을 내고 피해자 편에 서는 데는 사흘이란 시간이 걸렸다. 보름쯤 뒤 정 전 장관은 경질됐다.

장 대표는 "여성들의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에도 참여하는 등 정 전 장관은 나름 적극적으로 움직였으나 뚜렷한 이유 없이 물러났다"며 "이후 현 정부에서 여가부는 제 목소리를 사실상 잃어버렸다"고 꼬집었다. 그간 숱한 비판의 대상이 됐던 박원순·오거돈 전 시장 사건 당시 여가부의 어정쩡한 행보는, 정 전 장관 경질 때 이미 예고됐다는 얘기다.

권김현영 여성주의 연구자는 '나다움어린이책' 회수 사건을 골랐다. 이 사업은 그간 발간된 어린이용 도서들 중 성 역할 고정관념 개선을 통해 남자다움과 여자다움이 아닌 '나다움'을 찾아가도록 돕는 책을 골라 보급하는 사업이다. 하지만 지난해 8월 국민의힘 의원이 문제제기하자 하루 만에 사업을 접었다. 그는 "방향이나 내용상 아무런 잘못이 없는데 일부 특정 세력이 반대한다는 이유로 너무 손쉽게 책을 회수하고 정책을 철회했다"며 “정치권 눈치를 보는 여가부가 논란이 두려워 기존 정책 방향대로 추진을 못하고 앞서기는커녕 평균에도 못 미치는 행보를 보여줬다”고 말했다.

신지예 한국여성정치네트워크 대표(전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는 '비전 없음'을 꼽았다. 신 대표는 "2030 여성들은 경력이 단절된 채 가부장적인 결혼제도에 편입되는 것을 원치 않을 뿐더러, 직장 내 성희롱과 차별은 여전히 견뎌내야 하고, 온라인 성폭력 문제에 대한 불안감도 크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20대 여성들의 자살률 급증은 그 징표인데, 여가부가 이런 2030 여성들의 고민과 걱정에 대해 어떤 방향성을 보여주는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성별 여성가족부 운영 평가 및 향후 운영 방향. 그래픽=김문중 기자


'일못' , 그래도 너밖에 ... 애증의 시선

박 전 시장 사건이 발생했던 지난해 7월 '여가부 폐지'를 주장한 국회 국민청원도 등장했다. 국회 국민청원은 1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은 사안에 대해 답변토록 하고 있다. 이 때 여가부는 “일부 폐지 의견은 역할과 정책에 대한 큰 기대감에서 출발했다”고 대답했지만, 스스로 기대를 채워주지 못하고 있음을 실토한 군색한 답이었을 뿐이었다. '일못' 여가부라는 평가는 여성계 전문가들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도 똑같이 느끼고 있다.

지난해 12월 22일 김정재 국민의힘 의원실이 여론조사기관 더 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성인남녀 99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여가부가 매우 잘못 운영되고 있다'는 의견에 응답자의 45.6%가, '잘못 운영되고 있다'는 의견에는 26.7%가 동의했다. 부정적 응답이 무려 72.3%에 이른다.

더 눈길을 끄는 점은 남성(71.4%)보다 여성(74.3%)들이 여가부 운영에 대해 더 부정적으로 응답했다는 사실이다. 여성 응답자의 40.4%가 '여가부가 매우 잘못 운영되고 있다'고, 33.9%가 '잘못 운영되고 있다'고 대답했다.

여가부의 향후 운영방향에 대해서는 남녀 모두 '폐지 후 타 부처로 편입해야 한다'는 응답이 남성 48.7%, 여성 33.3%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포인트는 조금 다르긴 했다. 여성의 경우 응답자 5명 중 1명(21.1%)은 '여가부의 권한·예산·조직을 확대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폐지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응답이었다. 반대로 '여가부 확대'에 찬성한 남성 응답자는 9.1%로 가장 낮은 응답률을 보였다.

김은주 한국여성정치연구소장은 “여가부의 존재 자체가 남성에 대한 역차별이어서 폐지돼야 한다는 주장은 시대적 흐름을 거꾸로 돌리려는 움직임에 불과하다"며 "똑같은 여가부 폐지론이라 해도 여가부가 여성 권익 증진과 성평등 실현을 위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폐지돼야 한다는 주장은 오히려 여가부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하라는 강력한 요청이기 때문에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일부 남성에게 여가부는 그저 마냥 싫은 부처라면, 여성들에게 여가부는 '애증'의 부처인 셈이다. 격렬한 비판과 부정의 한켠에는 그래도 여가부라도 제 역할 해주길 바라는 일말의 기대가 있다는 얘기다.



박소영 기자
이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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