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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법원, 위안부 판결에 경의... 전범이 무슨 염치로 주권 면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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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韓법원, 위안부 판결에 경의... 전범이 무슨 염치로 주권 면제를?”

입력
2021.01.25 04:30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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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단독인터뷰] 中 위안부 소송 캉젠 변호사
"한국 법원이 공정·정의로 가해자 단호 응징
국제법은 평화 수호, 국제질서 안정 위한 것
일본은 전쟁 책임 부인하고 피해 배상 외면
한일 양국의 정치적 합의가 판결 구속 못해"

중국에서 강제동원, 위안부 피해자 관련 소송의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캉젠 변호사. 캉 변호사는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일본이 주권 면제를 주장하기에 앞서 전쟁 책임과 피해자 배상이 먼저"라고 일갈했다. 본인 제공

중국에서 강제동원, 위안부 피해자 관련 소송의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캉젠 변호사. 캉 변호사는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일본이 주권 면제를 주장하기에 앞서 전쟁 책임과 피해자 배상이 먼저"라고 일갈했다. 본인 제공

위안부 피해자에게 일본 정부가 배상하라는 한국 법원의 판결에 대해 중국을 대표하는 대일 소송 전문변호사가 경의를 표했다. 그러면서 "한국 법원은 강제적으로 판결을 집행할 수 있다"며 일본 정부 자산을 압류해 배상금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8일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처음 승소했다. 이에 대해 중국 캉젠(康健) 변호사는 24일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공정과 정의라는 법의 기본이념을 구현한 것”이라며 “전통적 국제법을 차용해 법적 책임을 회피하려는 가해자를 단호하게 응징했다”고 극찬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한국 법원의 판결 이행을 거부하며 ‘주권 면제’ 원칙을 내세우고 있다. 캉 변호사는 “국제법은 어디까지나 세계 평화를 수호하고 국제질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전쟁 책임을 부인하고 피해자 배상을 외면한 일본이 대체 무슨 염치로 주권 면제를 주장할 수 있느냐”고 일갈했다. 그는 2015년 위안부 합의와 관련, “한일 양국의 과거 정치적 합의가 법원의 판결을 구속하지 않는다”며 “한국과 중국 정부는 일본을 상대로 피해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캉 변호사와의 인터뷰는 2019년 7월에 이어 두 번째다. 당시 일본이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판결을 빌미로 반도체 소재 수출을 규제해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을 때였다. 1년 6개월이 지났지만 한일은 다시 위안부 판결을 둘러싼 갈등으로 대립하고 있다. 강제징용과 위안부 피해자 배상은 한중 양국이 공통적으로 해결해야 할 오랜 과제이기에 이번에도 그의 견해가 궁금했다. 캉 변호사는 법조인 생활 39년 가운데 26년간 일제 강점기 피해자를 위한 무료 변론에 앞장서며 중국에서 ‘정의의 인물’로도 선정된 양심적 지식인으로 꼽힌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처음 승소한 8일 서울중앙지법에서 할머니 측 소송대리인 김강원 변호사가 공판을 마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처음 승소한 8일 서울중앙지법에서 할머니 측 소송대리인 김강원 변호사가 공판을 마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_한국 법원 판결의 의미를 평가한다면.

“판결문에 패기와 박력이 넘친다. 국제인도법 측면에서 볼 때 심각한 불법행위로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을 강력하게 보호해준 것이다. 이번 판결은 인류사회가 마땅히 보호해야 하는 평화와 발전의 진보적 추세에 순응하고 있다. 저는 중국 변호사로서 한국일보 인터뷰를 빌어 판결을 내린 서울중앙지법 판사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또 이번 사건의 원고 측과 담당 변호사에게 동종 업계 종사자로서 진심으로 축하의 말씀을 전한다.”

_한국 법원은 “원고 1인당 1억원씩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피고는 일본 정부인데, 어떻게 판결을 집행하나.

“이건 매우 현실적인 문제다. 통상 소송 상대방이 합의를 하지 않고 법원 판결에 따르지도 않는다면 법원은 한쪽 당사자의 신청에 따라 강제적으로 판결을 집행할 수 있다. 일본 정부가 항소하지 않는다면 1심 판결로 효력이 발생한다. 법원은 피고의 재산 상태에 따라 판결을 집행하기 마련이다. 다만 만약 실제로 이런 강제 조치를 이행한다면 일본 정부나 다른 여러 곳으로부터 한국 법원은 상당한 압력을 받을 것이다.”

(※모테기 도시미쓰(茂木敏充) 일본 외무장관이 22일 항소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1심 판결이 확정됐다.)

-일본 정부는 주권 면제를 주장하는데, 타당한가.

“주권 면제는 전통 국제법의 원칙에서 유래한 것이다. 안정적인 국제질서를 유지하는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뉘른베르크와 극동(도쿄) 국제군사재판에서 침략전쟁을 일으킨 독일과 일본의 전범을 처벌했다. 알다시피 독일 정부는 전쟁에 대해 충분히 반성하고 사죄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았고, 전쟁 피해자들이 입은 손해를 무시하면서 법적 책임을 거부했다. 국제법이 범죄자가 책임을 모면하는 방패막이로 악용돼선 안 된다. 전쟁이 끝나고 70년도 더 지났는데도 일본 정부는 아직까지 침략을 당한 국가의 피해자들에게 배상을 하지 않고 있다.”

_한국 법원의 판결이 다른 국가 위안부 피해자 소송에도 영향을 줄까.

“법치사회의 중요한 지표는 인권을 존중하고 공평과 정의를 지키는 것이다. 한국 법원은 판결을 통해 법치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여줬다. 반드시 국제사회에도 중요하고 건설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_일본 정부가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제소하면 어떻게 되나.

“ICJ의 소송 관할 규칙에 따르면, 한국 정부가 수용하지 않는 한 ICJ는 이를 강제적으로 관할하는 권한이 없다.”

캉젠 변호사가 2019년 7월 한국일보와 인터뷰한 내용을 실은 기사. 당시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을 빌미로 일본이 반도체 소재 수출을 일방적으로 규제해 한일 양국 갈등이 최고조로 치달았다. 지면 캡처

캉젠 변호사가 2019년 7월 한국일보와 인터뷰한 내용을 실은 기사. 당시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 판결을 빌미로 일본이 반도체 소재 수출을 일방적으로 규제해 한일 양국 갈등이 최고조로 치달았다. 지면 캡처


_한일 양국은 1965년 청구권 협정, 2015년 위안부 합의를 체결했다. 하지만 법원 판결이 기존 합의를 뒤집고 있다. 정치와 법적 판단의 간극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나.

“최근 수년 간 한국 법원은 65년 청구권 협정의 효력과 범위가 제한적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또 2015년 위안부 합의는 일부 당사자들이 반대하면서 지원기금(화해ㆍ치유재단)을 해산했다. 따라서 이번 판결이 기존 합의를 뒤집었다고 할 수 없다. 즉, 구두로 맺은 위안부 합의가 이미 한쪽에 의해 일방적으로 무효화된 사실에 기초해 내린 판결이다. 정치적 결정은 총체적인 상황을 고려한 이익을 더 중요시하는 반면, 사법 재판은 당사자의 합법적 권익을 더 중시한다. 법치사회 구현을 위해 한가지 당부한다. 정치인들이 거시적 관점에서 결정을 내리기 전에 당사자 개개인부터 살펴봐달라.”

_중국 피해자들은 일본 정부의 불법행위에 대해 어떻게 배상 책임을 묻고 있나.

“1995년부터 도쿄지방법원에 일본 정부를 기소했다. 2010년 마지막 판결이 나왔다. 일본 법원은 중국인 원고들이 피해를 입은 사실을 인정했지만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을 면제했다. 이후 주중일본대사관에 서류를 제출하는 방식으로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배상을 요구하고 있다.”

_중국에서 진행된 위안부 소송의 성과는 없나.

“중국 법원은 위안부 관련 소송에서 기소를 하지 않았다.”

_위안부 피해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일본군이 정신적ㆍ신체적으로 씻을 수 없는 피해를 입혔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으로 인해 평생 고통스럽게 지낼 수밖에 없다. 이들은 불법행위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강렬히 요구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응당 따라야 한다.”

-한국과 중국 정부는 일본을 상대로 무엇을 해야 하나.

“양국 정부는 위안부 피해자들의 합법적인 권익을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한다. 중국 정부는 주도적으로 일본 정부와 협의해 책임지도록 촉구해야 한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중국도 위안부 피해자들이 잇따라 세상을 떠나고 있다. 생존자가 이제 겨우 10여명 남았다. 시간이 매우 촉박하다. 더 이상 기다리기만 할 수 없다.”

베이징= 김광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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