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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영과 유승현, 두 배우 이야기

입력
2021.01.25 04:3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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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대학로 블루칩’ 극작가 겸 연출가 오세혁이 공간, 사람, 사물 등을 키워드로 무대 뒤 이야기를 격주 월요일자에 들려드립니다.


배우. 다른 길을 통해 같은 길을 가는 두 사람.

공연을 통해 수많은 배우를 만났고 이들은 서로 다른 이유로 훌륭하다. 넓고 깊은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가 있고, 밝고 맑은 인품을 뿜어내는 배우가 있으며, 진중하고 성실한 태도로 연습에 임하는 배우가 있다. 공연의 색깔에 따라 떠오르는 배우가 다르다. 그 중에서 새로운 창작공연을 준비할 때, 나는 언제나 이 두 배우를 떠올린다.

배우 안재영과 유승현. 두 사람은 내가 극단 바깥에서 만난 최초의 배우들이며, 최초의 공연 작업을 가장 많이 했다. 두 사람은 모르는 길을 떠나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다. 대본 초고에 새겨진 최초의 말과 행동을 지도 삼아 새롭게 펼쳐질 세계의 곳곳을 뚜벅뚜벅 걸어간다. 여행하듯 연습하는 두 배우의 연습방식은 서로 다르다.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사내 역을 맡은 배우 안재영.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제공

뮤지컬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사내 역을 맡은 배우 안재영. 인사이트엔터테인먼트 제공


안재영은 직관과 본능에 따라 불쑥불쑥 뛰어든다. 새로운 장면마다 느껴지는 새로운 충동에 따라 몸을 내던지고, 그 부딪힘을 거울삼아 어두운 동굴 속 어딘가에서 비춰지는 빛을 비춰나간다. 예측이 아닌 예감으로, 해석이 아닌 해방으로, 맨몸과 맨발에만 의지한 채 활어처럼 뛰어다니는 그의 연기를 보고 있으면 때때로 어두운 밤하늘 아래에서 별빛을 향해 노래하고 춤추었을 원시인의 최초의 연극이 떠오른다.

유승현은 감각과 사색을 나침반 삼아 차근차근 둘러본다. 바로 어제까지 느끼고 접하고 쌓아올린 모든 역량을 든든하게 배낭처럼 둘러메고, 오늘 펼쳐지는 새로운 세상의 길을 천천히, 확고하게 걸어간다. 그는 늘 앞을 향해 걸어가지만 종종 뒤를 돌아보며 힘들어하는 동료들이 없는지 살핀다. 함께 걷는 이들이 고민하고 망설이고 불안할 때마다 그는 망설임 없이 배낭을 열어 영감과 격려와 사랑을 나눠준다. 그가 앞장서서 바람을 맞기 때문에 동료들이 느끼는 온도는 늘 따뜻하다.


창작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에서 배우 유승현(사진)은 안재영과 함께 이반 역을 맡았다. 과수원뮤지컬컴퍼니 제공

창작 뮤지컬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에서 배우 유승현(사진)은 안재영과 함께 이반 역을 맡았다. 과수원뮤지컬컴퍼니 제공


두 사람은 서로 다른 길을 떠났지만 같은 목적지에서 만난다. 안재영의 직관과 본능이 무대 아래 깊은 곳에 뿌리내린 본질을 이끌어낸다면, 유승현의 감각과 사색은 무대 위 높은 곳으로 뻗어있는 진실에 당도한다. 작은 씨앗 같은 가능성으로 시작한 연습은 어느덧 한그루의 나무가 된다. 두 배우는 그 나무의 그늘에서 마음껏 공연을 펼친 후, 다시 눈부신 햇빛을 향해 걸어 나간다. 힘겹게 창조해낸 세상 너머로 또 다른 창조를 향해 떠나는 그들의 등을 보고 있으면 다시 한 번 새로운 세상의 지도를 써나갈 용기를 얻는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서 처음으로 같은 역할을 맡았던 안재영과 유승현은 '브라더스 까라마조프'에서도 같은 역할로 만났다. 두 사람은 역시나 같으면서 다르다. 같은 슬픔에 잠겨있지만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웃는다. 같은 운명에 눌려있지만 누군가는 저항하고 누군가는 감싸안는다. 같은 사랑에 빠져있지만 누군가는 절망하고 누군가는 희망한다. 두 배우가 하나의 무대에서 펼치는 ‘같은 상태의 다른 표현’을 보며 나는 늘 행복한 자극을 받는다. 이들이 오래오래 무대에서 함께 하기를, 마음껏 다른 길을 가며 무수한 부딪힘과 바람을 만끽하기를, 그리고 다시 한 번 같은 목적지의 그늘 아래에서 쉴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극작가 겸 연출가 오세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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