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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진 택배기사에 고객들 안타까움 "그렇게 오래 일하는 줄 몰랐어요"

입력
2021.01.06 12:00
수정
2021.01.06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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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40세, 살인적 노동에 배송 중 쓰러져
자정 넘어 '배송 완료' 메시지 받던 고객들?
안타까운 소식에 쾌차 기원 '릴레이 문자'

편집자주

택배기사와 경비원, 청소노동자가 스러질 때마다 정부·국회·기업들은 개선책을 쏟아냈다. 금방이라도 해결될 듯 보였지만 그들의 삶이 한 뼘이라도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한국일보가 고달픈 현장 노동자들의 삶을 심층 취재했다.

한진택배 기사 김중연씨의 배송구역 중 한 곳인 서울 동작구 고층아파트. 김씨가 지난 해 12월 22일,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진 뒤 미처 주인에게 배송되지 못한 택배상자들이 보관함에 들어 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한진택배 기사 김중연씨의 배송구역 중 한 곳인 서울 동작구 고층아파트. 김씨가 지난 해 12월 22일,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진 뒤 미처 주인에게 배송되지 못한 택배상자들이 보관함에 들어 있다.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오빠는 착하고 성실하게 일했거든요. 열심히 일만 하다가 이런 일을 당한 것 같아요."

지난해 12월 28일 서울 동작구 대학병원 앞에서 만난 김미연(39·가명)씨는 오빠 이야기를 하다가 끝내 울먹였다. 김미연씨의 오빠 김중연(41·가명)씨는 지금 병원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다. 한진택배 기사인 김중연씨는 지난해 성탄절을 사흘 앞둔 12월 22일, 동작구 흑석동에서 배송을 하다가 뇌출혈로 쓰러졌다. 그는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져 수술을 받았지만 아직 의식이 없다. 평소 술이랑 담배도 멀리했고 지병도 없었던 김중연씨가 갑작스럽게 사고를 당한 원인으로는 살인적인 장시간 노동이 꼽힌다.

그는 지난해 11월과 12월 두 달 내내 매일 17시간 안팎으로 일했다. 휴일인 일요일과 택배 물량이 적은 월요일을 제외하고도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주 평균 87시간 가까이 물건을 고르고 날랐다. 김미연씨는 오빠 휴대폰을 확인하다가 이런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휴대폰에는 자정을 넘어 새벽까지 김씨가 고객에게 보낸 '배송완료' 메시지가 가득했다.

김씨는 화요일인 지난해 11월 10일 오전 4시51분에 퇴근한 뒤 그 주 내내 오전 1시8분, 오전 3시4분, 오전 2시21분, 오전 1시51분까지 물건을 배송했다. 11월 27일 출근해선 다음날 오전 6시1분에 배송을 끝내고, 당일 오후 11시54분까지 또 일했다. 이틀간 꼬박 40시간 동안 일한 셈이다. 12월에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다. 마지막 배송시간을 살펴보면 자정을 넘기지 않은 날이 손에 꼽힐 정도였다.

그는 성탄절 1주일 전인 12월 17일 오후 11시39분에 퇴근한 뒤 18일과 19일에는 모두 자정을 넘겼다. 12월 20일 오전 0시33분 고객에게 보낸 '한진택배입니다. 택배 배송 완료하고 갑니다'란 메시지가 그가 남긴 마지막 배송완료 문자였다. 그리고 이틀 뒤인 12월 22일 김씨는 배송구역인 흑석시장 정육점에서 고기를 나르다가 쓰러졌다.

현재 병상에 누워 있는 김중연씨는 더 이상 고객에게 문자를 보내지 못한다. 반대로 그의 휴대폰으로 고객들의 문자가 쇄도하고 있다.


한진택배 기사 김중연씨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은 뒤 고객들이 보낸 위로, 격려 문자. 김중연씨 가족 제공

한진택배 기사 김중연씨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은 뒤 고객들이 보낸 위로, 격려 문자. 김중연씨 가족 제공


'기사님 제발 아무 일 없길 간절히 기도해 봅니다.'

'기사님 제발 쾌차해주세요.'

'기사님 뉴스보고 문자드립니다. 혹시 아니시죠? 걱정되어 연락드려 봅니다.'

'꼭 깨어나셔서 건강 되찾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다음에 방문할 때면 몸에 좋은 것들 챙겨드릴게요. 그렇게 오래 일하실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택배기사들이 오래 배송을 하다보면 고객들과 친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한여름 고객들이 건네는 시원한 음료수 또는 한겨울 손에 쥐어주는 따뜻한 손난로 하나에 택배기사들은 힘을 낸다. 그러나 이웃 간에도 인사 한 번 하기 힘든 요즘, 일하다 쓰러진 택배기사에게 고객들이 쾌차를 기원하는 격려 문자를 보내는 모습은 흔치 않다. 누구보다 김중연씨가 성실했다는 것을 고객들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김중연씨의 동료기사는 "중연씨는 고객이 물건이 급하다고 하면 일부러 시간을 내서 갖다주던 친구였다"고 말했다. 택배기사들은 동선이 흐트러지면 배송 순서가 엉켜 일이 늦게 끝나기 때문에 웬만하면 순서를 바꾸지 않는다. 그러나 김씨는 다급한 고객의 'SOS'를 늘 외면하지 않았다.

한국일보가 김씨의 평소 배송구역을 돌아보며 만난 사람들도 그를 한결같이 부지런한 택배기사로 기억하고 있었다. 흑석동 뉴타운구역의 슈퍼마켓 주인 김희자(43)씨는 "정말 착하고 부지런하던 사람이 어쩌다가…"라며 자기 일처럼 발을 동동 굴렀다. 고층아파트 경비원 김명길(67)씨도 "김씨는 정말 차분하고 성실했다"며 친자식 일처럼 안타까워했다.

동생 김미연씨는 "고객들 문자를 보니 오빠가 얼마나 열심히 살았는지 와닿는다. 그래서 더 가슴이 아프다"며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그는 "이런 응원을 받아 오빠가 꼭 병을 이겨내길 바란다"고 말했다.

윤태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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